오랜만에 커밍아웃을 했다.
한때 프로 커밍아웃러였기에,
이제는 주변에 내 정체성을 모르는 사람이 드물다.
그래서일까.
나의 꽃 동료이자 친구인 ‘원’에게 아직 커밍아웃을 하지 않은 건, 그동안 우리 대화에 ‘연애’가 등장한 적이 없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그런데 이번에도 연애 이야기는 아니었다.
“우리 나이면 노산이다, 난자 얼려야 한다.”
그런 이야기가 나왔다.
남자와의 결혼, 임신, 육아 같은 것들을
마치 나의 미래인 양 이야기하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커밍아웃을 하기로 했다.
“저기… 그게… 너한테 말 못 한 게 있어…”
“무난자증이야 뭐야.”
“아니 난자는 있는데요…”
“애를 가진겨?”
하여튼 웃기는 녀석이다.
“그게 아니라… 제가요… 그러니까…”
“왜. 취향이 저짝이여?”
하여튼 눈치 빠른 녀석이다.
“예… 이짝이여요…”
“그럴 수도 있제. 이쁜 여자 최고야.”
“최고지…”
“알고 있어. 언니가 아름답고 무용한 걸 좋아한다는 거.
저 그렇게 꽉 막힌 사람 아닙니다?”
예상 못한 정체성 고백에도
원은 다정하고, 유쾌하고, 사려 깊었다.
“그래도 아는 낳을 수 있거든?
당장 난자 얼리자.”
편견도 없고, 눈치도 빠르고,
그래서 더 고마운 녀석이다.
⸻
모든 커밍아웃이 이렇게 다정했던 건 아니다.
나의 첫 커밍아웃은 스무 살이었다.
가장 친한 친구에게 전화를 걸어, 엉엉 울며 말했다.
“나, 사실 여자 좋아해.”
전화기 너머, 친구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 침묵은 길고, 날카로웠다.
그 이후로 나도 그 친구도 서로 연락하지 않았고,
그렇게 멀어졌다.
그게 나의 첫 커밍아웃이자, 첫 실패였다.
두 번째는 학교 선배였다.
그 선배는 나를 어떤 여자 어른에게 데려갔다.
그곳에서 나는 기도를 받았다.
“동성애의 영이 너를 조종하고 있다.”는 말을 들으면서.
그 이후에도 나는 계속 커밍아웃을 해왔다.
다행히도, 지금까지는 대부분 성공적이었다.
많은 친구들이
이미 눈치채고 있었다고 했다.
어렵게 말을 꺼낸 나에게
“그동안 힘들었겠다”고,
“말해줘서 고맙다”고 말해주는 이들도 있었다.
위로받고 싶어서 말한 건 아니었는데,
막상 그런 말을 들으면 울컥했다.
“나, 여자 좋아해.”
엄청난 고해성사를 하듯
이 사실을 털어놓는 일.
이 고백이 어떤 엄청난 파장을 불러올지
한 치 앞도 예상할 수 없는 상태로
상대의 처분을 기다리는 일.
그럼에도 계속할 수밖에 없는 일이다.
소중한 사람들에게 솔직하고 싶고,
무엇보다 나 자신에게 솔직하고 싶으니까.
she를 he로 바꾸는 일도,
여자친구를 남자친구로 속이는 일도,
아무도 없는 척, 혼자인 척하는 일도
이제 그만하고 싶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조금씩
나를 있는 그대로 말한다.
그리고 아마,
앞으로도 나는 계속 말하게 될 것이다.
“나, 여자 좋아해.”
이 말이 더는
무겁지 않은 날이 오기를 바라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