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셀라 Aug 01. 2023

비루한 인생에 찾아온 구원자

나의 육아

결혼식을 정신없이 끝내고 일주일 후 새벽에 급작스레 찾아온 고통에 응급실을 방문했다. 으레 하는 질문이겠지만, 임신 가능성이 있느냐, 마지막 관계는 언제냐는 간호사의 질문에 물색없이 이렇게 대답했다. “네. 방금도 하고….” 남편이 내 입을 틀어막지 않았다면 끝까지 말해버렸을 것이다. 


증상은 신우신염이었다. 처방은 간단했지만 임신여부가 문제였다. 소변검사로는 임신이 아니라고 했는데 혹시 몰라 진행한 피검사에서 임신이 확정되었다. 그래서 항생제도 처방받지 못한 채 수액만 맞고 산부인과에 곧장 입원하게 되었다. 



약 10일 후 초음파를 통해 남의 자궁에 자신의 존재를 드러낸 작은 인간을 만났다. 


이 작은 점은 이미 인간인 것이다. 


초산의 경우 이렇게 몸이 아픈 경우가 종종 있다나. 아마 생각 없이 몸이 안 좋다며 독한 약이라도 먹고 못 만나게 될까 봐 이 녀석이 손을 쓴 게 틀림없다고 생각한다. 본인도 인정한 사실이다.


임신이 아닐 수도 있다고 했을 때 왜 그렇게 실망했는지, 임신이 맞는다는 말을 들었을 땐 또 왜 그리 두려웠는지 지금도 정확하게 설명하긴 어렵다. 


남편은 당시 뒤늦게 목사의 길을 걷겠다 어렵게 결심하고 학교에 지원해 합격한 상황이었고 어려워도 이 한 몸 바쳐 뒷바라지할 각오도 나름 했는데 갑자기 찾아온 아기에 나도 남편도 당황했다. 누군가는 우리의 나약함을 지탄하며 손가락질하겠지만 나도 남편도 아이를 위해 우리가 세웠던 계획을 접었다. 쉬운 일은 아니었다. 위에서 보고 계실 그분도 우리를 다른 방향으로 이끌고 싶었던 것이 분명하다고 믿는다.



우리 부부는 k-장남, k-장녀로서 가부장적이며 유교적이다. 라떼 꼰대랄까. 못난 사람들을 보면 흔히 상처가 많지 않은가. 우리 부부가 그렇다. 그래서인지 이상적인 가정에 대한 큰 꿈이 있었다. 어떤 일이 있어도 서로를 사랑하는 엄마 아빠야말로 아이에게 가장 든든한 자산이지 않은가. 남편은 좋은 아빠와 좋은 남편이 되는 길을 택했다. 그의 다짐은 ing다. 안타깝지만 덕분에 나도 팔자에 없는 좋은 엄마가 되려고 발악하며 살고 있다. 



좋은 엄마란 뭘까? 적절한 훈육을 하면서도 끊임없이 사랑과 관심을 주는 엄마. 아빠를 사랑하는 아내와 엄마의 균형을 잘 지키는 사람. 가장 이상적인 표현이겠지. 어떤 직업과 환경 성향을 가졌건 간에 말이다. 


김창옥 강사님의 책과 강의를 좋아하는 편인데 그분이 강의에 자주 하시는 말씀 중에 좋은 가정을 꾸리기 위해선 좋은 언어를 물려받아야 한다는 표현이 있다. 아버님이 청각장애인이셨고 젊은 시절 많은 사랑보단 무뚝뚝한 대우를 받다 보니 소통 강사인 본인조차도 아들들에게 같은 방식으로 육아하고 있다는 걸 깨달은 순간 크게 당황하셨다는 에피소드다. 


80년대 생 장녀로 태어나 부모님의 이혼을 두 번이나 겪으며 나도 썩 좋은 언어를 물려받은 교양있는 엄마는 되지 못한다. 그래서 늘 무섭다. 아이는 나조차도 몰랐던 내 속의 상처와 불안함을 꺼내놓았다. 


예전 우리는 희생적인 엄마를 보며 흔히 엄마의 사랑은 위대하다고 말했다. 많은 매체와 소설들 속의 엄마들은 늘 헌신적이었다. 5남매 중 막내로 태어난 우리 김여사는 자신이 할 수 있는 한 최선을 다했겠지만 나는 늘 엄마의 보호자이자 대리자로서 살아왔다. 미안하지만 엄마가 헌신적인 편이라고 말하긴 힘들다. 


아이를 낳고 알았다. 사실은 아이의 조건 없는 사랑, 엄마를 향한 애타는 사랑과 의존이야말로 숭고하다는 것을. 원치 않은 채로 세상에 떠밀려와 작은 울음을 울어대던 아이는 이해할 수 없는 여러 가지 공포들을 엄마에게 의지한 채로 이겨나간다.


잠을 자는 것, 먹는 것, 심지어 싸는 것. 이것이 당연한가? 아기에겐 그렇지 않다. 우스운 말이지만 엄마에게 받지 못했던 무조건적인 그 사랑을 나는 아이에게 받았다. 


아들은 똥 싸는 걸 무서워해서 작년까지도 고생을 시켰지만, 나를 온전히 의지해주었다.


자신의 손이 자궁이 아닌 허공에 떠도는 것만으로도 느꼈을 공포와 두려움 속에서도 내 품을 찾는 아이의 사랑엔 이유가 없다. 그저 살아있기 때문에, 내가 자신을 낳았기 때문에 나를 사랑한다. 


우리는 많이 가난했고 젊음은 상처투성이였지만 내 손가락을 꽉 쥔 채로 새액거리던 숨소리에 나는 구원받았다. 그 시절은 우리 삶에 가장 소중한 기억이다. 


돌이켜보면 연년생으로 동생을 낳고 육아와 생활에 치여 불행했을 엄마가 불쌍하게 여겨진다. 내가 하도 아이를 예뻐하니 엄마도 그 시절이 조금씩 다르게 기억되는지 저주 같았다던 나의 어린 시절이 참 좋기도 했다는 거짓말 같은 말을 하기도 한다. 그런 엄마가 생소하지만 싫진 않다. 아이가 나에게 와주었기 때문에 일어난 작은 기적이기도 하다. 


아이를 키울 수 없는 고슴도치 같은 사람. 나도 상처투성이인 주제에 남 상처 줄 줄만 알았던 어리석은 어린 시절의 나를 매일 구원해내는 나의 아가. 아이의 이름은 완벽한 길이라는 뜻이다. 사랑이야 말로 완벽한 길일테다. 


작고 크게 투덕거리며 떡볶이 한입에 행복해지는 매일의 구원. 누군가는 가보지 않은 길을 뒤 돌아볼지도 모르겠으나 나는 죽을 때까지 돌아보지 못할 것이다. 지금의 행복이 너무 아름답기 때문이다.


곧 아이의 사춘기가 찾아온다. 이미 키는 내 어깨까지 커서 업어줄 수 없게 된 지 한참 되었다. 아이를 조금씩 독립시키며 우리는 많이 싸우고 서로 미워하게 될 수도 있겠지만 그것마저 구원이 될 것을 나는 믿는다. 아니, 지금까지의 시간이 있기에 당연히 그렇게 될 것이라 기대해본다. 




이전 13화 happily ever after ?!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