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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셀라 Jul 28. 2023

happily ever after ?!

나의 결혼

결혼 전 우리의 카페를 마감하며. 어린 우리.


사랑이라는 동화. 수없이 소비되는 짧은 설레임의 순간들. 나이를 막론하고 서로의 존재로 인해 도파민이 발생하고 상대방을 짝으로 인식하기 때문에 생기는 감정의 충돌들이 있다. 사건이라고 부르기 적합한 그것. 짧은 시간들과 우연으로 점철된 운명 같은 만남. 그것이 나에겐 없을 줄 알았다.


물론 실제로 겪는 감정의 그것들은 생각보다 더 가슴 아프고 일생에서 겪는 것 중 흔치 않은 쓰나미 같은 일들이었다.


엄마의 첫 번째 남자가 엄마의 인생을 얼마나 불행으로 집어넣었는지 똑똑히 보았고 두 번째 남자가 남은 부스러기마저 파멸시키는 것을 보았다. 엄마는 입이 부르트도록 자신의 불행에 관해 이야기했다. 자신의 선택이 어떤 일들을 초래했는지. 나는 자연스럽게 독신주의자가 되었다. 당시엔 사랑이 그렇게 무서운 줄 몰랐다.


결혼생활 곧 10년 차, 나는 아직도 로맨스를 잘 쓰지 못한다. 한번 불타오른 마음이 그다지도 단순 무식하고 무조건적인 직진형이 되어서 나를 이렇게 딴 사람으로 만들어버린 것을 아직도 이해하지 못해서 인지도.


해보니 그렇다. 가족과 가족 간의 결합. 얽히고설킨 이해관계. 한편으론 아주 세속적인 사회의 이벤트. 어렸을 적부터 웨딩드레스나 사랑하는 사람과의 성대한 결혼식 같은 건 꿈도 꿔보지 않아서 현실적인 문제 앞에서 더 회의적이었을까?


호텔 그랜드볼룸에서 성대한 프러포즈를 받을 때도 당사자인 나보다 꽃을 전해주고 함께 계획했던 사람들이 더 눈물을 글썽거렸다. 결혼식 땐 사람 잘 챙기는 남편을 만나 드래곤볼 마지막 회 정도의 단체 사진을 찍기도 했다. 사진 속 어린 신부는 웃고 있지만 정작 결혼식을 떠올리면 준비하며 겪었던 웃지 못할 일들만 생각난다. 어린 시절부터 불행을 라디오 삼아 살았던 탓에 생각 회로가 이 모양인지 그저 원래 결혼이라는 것이 이렇게나 힘든 것인지는 아직도 잘 모르겠다.


확신하는 것은 어차피 인생은 끊임없이 파도가 몰려오는 해변가 같은 것이고 어떻게 맞이하느냐에 따라 각자의 인생이 다르게 받아들여진다는 것이다. 어떤 일이 생기든 이 남자가 없는 나머지 인생은 생각하고 싶지 않아서 짊어진 여러 불행에서 오히려 행복을 배우는 것이 사랑이었다고 이제는 고백한다.



인간의 밑바닥은 늘 추악하다. 나는 성악설 쪽이다. 선할 수 없는 인간이 본성을 거스르는 선택을 할 때 사람은 경외심을 갖게 된다. 으레 사회면을 훈훈하게 하는 작은 영웅들을 보며 자아내는 탄성 같은 것이랄까.


남편의 가장 나약한 모습 속에서 보인 최선들이 한 사람의 나머지의 삶을 변화시켰다. 내 추악함을 때론 웃어넘기며 때론 고집스럽게 끌어안으며 어떤 하루건 간에 매일매일 살아와 준 한 남자의 꾸준함 덕에 난생처음으로 누군가로부터 수용되는 안정감을 느꼈다.


모든 행복의 시작은 사실 이 안정감이다. 의존하는 것과는 다르다. 그럼에도 우울감이 덮쳐올 때도 있고 삶 앞에 마음이 나약해질 때도 있지만 이제는 알기에 이겨내기가 조금 더 수월하다. 서로의 눈을 바라보며 눈빛 속에서 진실함과 따뜻함을 느낄 때의 행복한 찰나, 미워죽겠다가도 예상치 못한 순간 느끼는 작은 사랑의 마음 같은 소중한 것들을 더욱 귀히 여기며 살아야 한다.


가족이 된다는 것은 어렵지 않지만 어렵고 불행하지만 행복하다. 하지만 단언하고 후회하지 않는 것은 함께했기 때문에 느낀 수많은 행복이 분명 존재하기 때문일 것이다.



엄마와 나는 다르다. 남편은 아빠와 다른 사람이다. 우린 다른 선택을 할 수 있고 이미 충분한 행보를 보여주었다고 생각한다.



사람은 모두 각자의 악이 있다. 그렇기 때문에 서로를 위한 작은 배려들이 귀하게 느껴진다. 작은 말도 사실 그가 절대로 할 수 없었을 엄청난 용기이자 배려일 수도 있다.


시대가 변하고 핵가족화가 되었음에도 결혼은 여전히 상대방에 대해 많은 짐을 짊어져야 하는 일이다. 드라마가 포장하는 엄청난 세기의 설레임들은 결혼이라는 덫으로 스스로 걸어 들어가는 어리석음을 납득하게한다.


한 여자와 한 남자가 내 아이의 엄마 아빠가 되어도 되겠다고 믿음이 가는 그 순간은 왜 이리 설레는 걸까? 연애의 과정에서 나의 작은 영웅이 되어 순간순간 경외심을 주었던 남자는 여전한데도, 작은 행복들이 쌓이는 불행한 일상들도 여전한데도 앞으로 이것이 계속될 것인가? 라는 불안함이 여전함을 고백한다. 천성이 태평하지 못하고 걱정을 사서 하는 편이라 그런 모양이다.


이 불안함에 남편을 미워할 때가 있다. 믿지 못하고 확신을 얻고 싶어서 말이다. 그럴 땐 다시 사랑하기로 작정한다. 내 선택을 상기한다. 나도 그도 억지로 여기까지 오지 않았다. 많은 것을 이겨내며 많은 순간 최선을 다해 서로를 선택하며 여기까지 왔다.


우리의 앞날은 어떨까? 결혼이라는 것이 깊어지면 어떤 결말을 보게 될까? 마지막 날 떳떳하게 그의 손을 잡고 눈감게 되기를. 연약하고 조금 추한 나라는 사람이 실수하지 않기를. 하나님에게 지금보다 조금만 더 운 좋게 살게 해 달라 졸라본다.


아 만약 이 글을 읽는 분 중 아직 미혼인 분들이 있다면 이 고통을 나만 겪을 순 없으니 지금 고민하는 그 결혼 꼭 하시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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