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은 많은 것을 남긴다.
생은 많은 흔적을 남긴다. 사라진 한 사람의 삶을 정리하는 절차들은 사무적이고 소소하면서도 감정적이다.
돌아가신 친어머니가 남긴 반찬을 먹지 못해서 다 상한 것도 버리지 못했다는 어떤 딸의 이야기가 생각난다. 더는 함께할 수 없다는 슬픔, 죽음이라는 것은 생각보다 실질적으로 현존한다.
어머님께서 드디어 무릎 수술을 받으셨다. 40대부터 아프시기 시작해 이르게 수술했다가 더 고생하실까 봐 오랜 시간 아픈 무릎을 안고 장사를 하셨고, 아버님이 아프신 후엔 아버님 병간호로 잘못하면 시기를 놓칠 뻔하셨다. 드디어 5기로 넘어간다는 무릎을 안전하게 수술하셨고 똑바로 걸으신다는 소식을 들었을 땐 다리가 풀렸다. 하늘에서 아버님도 기뻐하고 계시겠지?
어머님이 급하게 수술부터 하시게 되어서 우리는 아직 많은 서류를 정리하지 못했다. 어머님께서는 아버님 명의로 핸드폰과 인터넷을 사용하셨는데 당장 해지를 하게 되면 어머님과 연락을 할 수 없고 수술로 본인이 매장에 가실 수 없으니 여러모로 유야무야 미뤄지고 있었다. 그런데 어제 남편이 우연히 부상으로 일을 하루 쉬게 되어 아버님 명의의 핸드폰과 인터넷을 해지했다.
돌아가시기 전 어느 날 가장 비싼 핸드폰을 사 들고 들어오셨던 아버님. 잘 관리하셔서 아직 번듯하고 할부도 24개월이나 남았는데 중고로 제값을 받기 어려울 만큼 또 금방 새로운 기종들이 나왔다. 남편은 아버님의 핸드폰을 볼 때마다 한숨을 쉬었지만 어쩐지 죽음을 앞두고 한 번쯤은 가장 좋은 핸드폰을 써보고 싶으셨을 마음도 이해가 되었다.
명의를 해지하고 돌아온 날 남편이 핸드폰을 초기화하기 위해 백업을 했다. 초여름의 더웠다 추웠다 알기 어려운 날씨 탓인지 연신 콧물 소리가 났다. 무슨 일인가 들여다 보았더니 남편이 핸드폰 화면 가득한 메모장의 글을 보여주었다. 아직도 더블화면이 낯설은 나는 그 글을 읽는 내내 어색했다. 또 아버님의 목소리로 들었던 진심과는 다른 결의 진심도. 조금은 어색했다.
아픈 것을 잘 티내지 않고 죽음 앞에서도 무감각해보이셨던 아버님은 역시 속으로 많이 초조하셨던 모양이다. 본인의 아픔과 고통에 대한 무력감을 생각나는 대로 써 내려가셨던 것 같다. 본래 가게 명부도 손으로 일일이 작성하실 정도로 아날로그가 익숙하신 분인데 아마 일어나 책상에 앉을 힘도 없을 때, 너무 외로워 털어놓을 곳이 없을 때 종종 메모장에 글을 남기셨던 것 같다.
사람은 누구나 자신의 인생을 남기고 싶어 하는 것일까? 우리 엄마가 나에게 언젠가 자신의 자서전을 꼭 남겨달라고 말했던 것처럼. 각종 드라마가 결국 사는 이야기에 불과한 것처럼. 우리의 삶을 통해 누군가 남기려고 하는 이야기를 찾으려 허우적거리는 것은 아마 죽을 때까지 계속되는 여정인가보다.
아버님은 메모장에 본인이 태어나셨던 시절부터 느끼셨던 결핍, 원했던 인생에 대해 많은 것을 남기셨고 그만큼 후회하셨다. 단 한 번도 들은 적 없던 원망도 많이 하셨던 것 같다. 다행히 뒤늦게 하나님을 알게 되신 것에 감사하셨고 닥쳐온 상황에 만족하려 노력하셨다.
타자가 어색하셨는지 꽤 오타가 잦은 메모를 읽으며 아버님과의 마지막 대화를 떠올렸다. 그리고 메모를 읽으며 직감했다. 만약 지금까지 살아온 그대로 나를 묻어놓은 채로, 내 이야기를 묻어놓은 채로 죽는 날이 다가온다면 회한 남아 사무치는 후회를 하게 될 것이란 것을.
누구나 자신의 인생에서 주인공이다. 남들의 평가를 두려워하며, 혹은 비교하며 살아가는 것으로 허송세월 보내기엔 이 짧은 인생이 너무 아깝다.
단어는 단순하고 표현은 평범하다. 그러나 내 삶은 나만이 살아왔고 이 이야기는 세상에 단 하나뿐이다.
도대체 어떻게 해야 특별해 보일 수 있을까? 도대체 어떤 점이 특별한 걸까? 몸부림치며 찾았던 많은 날이 있었지만 뒤늦은 이제야 보인다. 유일하고 고유한 것. 모두에게 존재하는 그것이 나에게도 있다는 것이.
나에겐 나의 유일함에 응원을 보내주는 많은 사람이 있다. 끝없는 응원을 받을 자격이 없는 사람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런 자격 없는 사람에게 보내는 그들의 값진 응원은 세상에 맞설 힘을 준다.
감당할 수 없을 만큼 기쁜 것, 갈망하기보다 넘치는 순간이 찾아오게 된다면 우리는 기억해야 한다. 그것을 받기에 이미 충분한 자격이 있으니 그런 날을 바라도 된다는 사실을. 너무 뒤늦게 깨닫지 않기를.
결국 나와 같은 것을 바라셨을 아버님의 마지막이 자꾸만 어른거린다. 그래서 앞으로 나가는 것을 멈출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