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셀라 Jul 26. 2023

누구에게나 꼬물이 시절이 있다.

당신도 꼬물거렸다.

주일 예배엔 신혼부부들을 위한 모임 발대식이 있었다. 발대식엔 막 100일이 된 계란후라이 인간도 참석했다. 나이가 어느 정도 있으면 발대식 동안 맡아주었지만, 두고 오기엔 너무 갓 태어난 생명이었기에 부모가 데리고 참석할 수밖에 없었던 모양이다.


요새 옷들은 어쩜 그리 귀여운지. 계란 후라이 머리띠에 계란후라이가 달린 양말, 계란 모양의 반소매 수트를 입고 꼼지락거리는 통통한 손을 보고 있자니 가슴이 벅차올랐다. 남편은 둘째를 볼 때가 되었나보다고 했다. 하지만 아들을 낳고 벌써 9년 차, 아이를 볼 때마다 들었던 이야기였다. 우리에겐 둘째는 오지 않으려나 보다.




남편과 나는 둘 다 장남, 장녀 커플이라 동생을 책임지게 하고 싶지 않다는 마음이 컸다. 누구보다 아이를 예뻐하고 돌보는 것을 좋아하지만 넉넉한 살림이라면 모를까, 지금은 한 명의 선물로도 충만해서 우리 인생에 둘째는 없을 것 같다. 100억 이상의 돈이라도 벌게 된다면 모를까.


20대엔 아기를 좋아하지 않았다. 아기는 왜인지 무섭고 꺼림칙했다. 세상에 나온 지 얼마 안 된 주제에 꿰뚫어 보는 눈빛을 하곤 힘 조절을 하지 못해 꼬물거리며 억척스럽게 살아내는 아기를 보면 왜인지 어색해져 자리를 피하곤 했다. 귀여운 아이 사진이나 강아지, 고양이도 마찬가지의 존재였다.


지금은 아기라면 사족을 못 씀



2남 2녀의 장녀로 태어나 10살 차이의 셋째를 포대기에 업어 키우고 17살 차이 막내 분유를 직접 먹이고 기저귀를 갈았던 장녀에는 걸맞지 않은 감성이지만 돌이켜보면 아기를 통해 바라본 나 자신 때문에 늘 겁이 났던 것 같다. 아기를 마주하기가.



나름 비혼, 독신주의자를 외쳤지만, 태생적으로 외로움이 많고 의지할 수 있는 존재에 대한 갈망이 컸던 나는 상상했던 것보다 좋은 남자를 만나 28살, 현대로 치자면 어린 나이에 아이를 낳았다. 아이가 내 뱃속에 찾아왔을 때부터 느꼈던 환희와 기쁨, 넘치는 사랑을 뭐라 표현할 수 있을까.




세상 사람들은 늘 내 사랑과 감정을 재단하고 통제하는데 나의 사랑과 감정을 온전히 쏟아부을 수 있는 존재를 만났다는 것을 직감했던 것 같다.



아이는 나의 웃음을 징그러워하거나 찌푸리지 않았고 상냥한 말에 팩하고 돌아서거나 “못된 년”이라는 나쁜 말을 쏟지도 않았다. 막 세상을 탐색하며 살기 위해 애쓰던 그 핏덩어리는 나를 온전하게 받아들여 주었고 그 자체로 치유받을 수 있었다. 아이에게 사랑은 생존 여부의 아주 중요한 요소다. 그것은 본능이고 절대적인 요소다.



책임이 막중한 장녀였고 늘 엄마에게 “엄마가 죽으면 네가 엄마가 되어야 한다. 동생들을 잘 돌봐야 한다.”라는 무시무시한 말을 들으며 자랐던 나. 도피성에 감수성이 짙은 내가 나도 책임 못 지는데 누굴 책임지라는 건지.




어쨌든 첫째로 태어났으니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하려는 마음가짐만은 마음속 어딘가에 늘 있었다. 무뚝뚝하고 동생 잘못에 회초리로 늘 두 배를 맞아야 했던 장녀. 늘 무섭고 무뚝뚝하고 나에게 관심이 없다고 생각했던 엄마도 내가 아이를 낳고 나니 조금 다르게 보였다. “네가 엄마가 되어도 엄마에겐 평생 애기야”라는 감동적인 말을 듣고도 솔직히 거짓말 같았다. 드라마 대사를 읊는 듯 현실감이 없었달까.



아들을 사랑하면서 또 성장을 바라보면서 엄마의 그 말이 진하게 와닿았다. 우리 아들이 커서 어떤 사람이 되던 태어나 온전히 엄마의 역할을 하게 해주었던 그 순간과 감동들을 나는 절대 잊지 못할 것이다.



만약 20대의 나처럼 자신을 싫어하는 사람이 있다면, 혹은 미움만 받아온 탓에 살 가치가 없다고 느껴진다면 말해주고 싶다. 당신이 당신을 사랑하는 부모를 만나든 만나지 못했든, 인생을 통틀어서 제대로 살았든 그렇지 못했든 존재 자체로 위대하고 아름다웠던 때가 당신도 있었다고. 신이 당신을 그 모습 그대로 사랑하고 있으며 갓 태어났던 그 순수함으로 자신에게 의존해주길 바란다고 말이다. 단언컨대 그것보다 큰 기쁨은 누구에게도 쉽게 찾아오지 못할 것이다.



아들이 하교해서 글에 온전히 집중하지 못하고 있다. 9살이 된 아이의 살결에선 여전히 싱그러운 우유 냄새가 난다. 때때로 엄마로서 부족할 때도, 30대 중반에도 사회에 적응하지 못하는 하등 쓸모없은 인간인 자신이 혐오스러울 때도 있다. 그럴 땐 사랑스러웠던 아이를 생각한다. 존재 자체로 사랑받을 자격이 충분했던 그 아이. 당신도 그 아이였던 적이 있었고, 여전히 그렇다.


그렇다. 우리는 모두 그 존재 자체로 사랑받을 자격이 이미 충분하다.

이전 09화 아버님, 나의 아버님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