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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셀라 Jul 22. 2023

사랑하기 위해 홀로서야한다

둘이 함께 하기위해 혼자일 줄 알아야한다는 아이러니

사람은 연약한 존재다. 이제 막 세상에 태어났던 연약한 존재로 자신을 인식한 생명체는 자궁을 탈출했을 때의 충격을 잊는데 평생이 걸린다. 예전엔 14살이면 시집장가도 갔다지만 현재 대한민국 법상 미성년자가 20까지, 청년이 만 39세까지로 지정된 것은 단지 고령화된 사회분위기 때문만은 아니다. 뇌와 심리에 대한 연구가 깊어지면서 이해의 폭이 넓어진 덕에 수많았던 인류의 여러 실패를 조합하여 나온 합리적인 추론이다.


나도 사람이다. 너무 연약하다.


최근엔 예전에 시청률 고공행진했던 로맨스 드라마들을 정주행 중이다. 그 당시엔 그 오글거리는 대사들만 봐도 채널을 돌려버리곤 했는데 나이 들어 보는 그 대사 하나하나가 심금을 울린다. 요즘 좀, 외롭다. 사람은 물론 늘 외로운 존재이지만 여자로써 외롭다. 버젓이 남편이 있는데 조금 실례되는 말일지 모르지만. 그가 나를 채워주지 못 한지 오래되었다.


저번 주엔 세기의 모임이 있었다. 근 7~8년 남편과의 연애시절 만났던 친우들이다. 뭐라 설명하기 어려운데 인생을 살며 가장 어려웠던 비참한 밑바닥시절을 함께한 전우들이랄까. 그들의 기억 속에 우린 세기의 커플일 것이다. 근 10년간 우리는 많은 일을 겪었지만 사람들 눈엔 여전히 그렇게 보이는 모양이다.


연애가 금지된 교회에서 당당히 목사님 허락을 받고 교제를 시작해서 손잡고 예배드렸던 유일한 청년커플. 한푼도 없었지만 맥도날드에서 300원짜리 아이스크림 나눠먹고 버스비가 없어 집까지 걸어가는 순간마저도 달콤했던 사랑의 나날들. 지금 생각하면 어떻게 그렇게 용감하게 결혼을 꿈꿨는가 싶기도 하다. 교회에선 100명이 넘는 청년이 동원되어서 프로포즈를 도와주었고 그 큰 교회를 하객으로 가득 메우기도 했지만 우리 현실은 늘 어려웠다.


거짓말이 아니다.


젊은 나이에 피터지게 싸워도보았고 삶의 가장 깊은 부분까지 공유하고 털어놓았다. 서로에게 약점이라는 칼자루를 믿고 쥐어주었다고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걸 뭐라고 하더라. 11년의 연애 후 단어가 생각안나는 노화를 겪고 있지만 여전히 내 곁을 지키며 코를 드르렁 고는 저 남자는 이제 가족이 되었다.


평온하게 음악을 틀어놓고 글을 쓰고 있지만 마음만 먹으면 지금 저 남자를 일으켜 세상을 살 의욕을 잃어버리게 만들 정도의 악랄한 말들을 쏟아낼 수도 있다. 그럴만큼 서로에게 상처를 주기도 했던 10년 이란 세월. 그러나 이제 그러지 않는다. 나는 그를 사랑한다. 그런 악랄한 말보단 허무맹랑하다고 할지라도 누군가의 비웃음거리가 될 지라도 내 세상의 최고인 그를 있는 힘껏 치켜세운다. 가진 것 없고 약해서 밑받침이 되어주기엔 부족한 사람이지만 말이다.


남편을 만나기 전 나는 비혼주의자였다. 가족에 대한 상처가 가득해서 사람을 혐오했고 썸같은 기분이 들어도 철벽을 처내기 일쑤, 사람을 사귀면 사랑이라는 감정은 알지도 못 해서 선을 넘어오면 할 수 있는 한 악랄하게 상대를 내쳤다. 지금보면 참 예의가 없었다. 그런데 말도 안되게 교회를 다니면서 처음으로 알았다. 나는 사랑받고 싶었다. 그리고 사랑받을 수도 있는 존재였다. 초등학교 때 교회를 뛰쳐나와 십수년을 예수욕하고 살았던 사람으로써 예수님께 참 죄송한 발언이지만 그가 나에게 준 사랑으로 겨우 숨어있던 내 상처를 치유하고 내가 진정으로 바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어렸을 적 꿈은 무려 세계적인 만화가이자 소싯적에 연애만화 좀 털어본 사람으로써 남자는 잘 몰랐지만 운명적이고 거부할 수 없는 진짜 사랑이라는 것이 존재한다는 것은 은연 중에 믿었다. 아니. 그렇다기보단 만약 사랑이 있다면 그래야만한다! 라는 어떤 신념이 있었던 것 같다.


몇 번의 연애를 거치며 깨달았다. 젊은 시절의 연애는 생각보다 삼겹살 냄새가 밴 새옷 같고, 키스 한 후 상대방의 침을 몰래 쓱 닦아내야 하는 멋쩍음 같다는 것을. 이상과 현실은 달랐다. 드라마 속의 설레는 데이트 같은 건 사실 구질구질한 하이에나들의 구애처럼 별로 질이 좋지 않았다. 그런 연애가 훨씬 많았다. 그래서 그런 연애를 멈추기로 했다. 사랑을 하기로 결심했다.


막상 사랑을 하려고 보니 사랑 받으려고 갈구한 적은 많았는데 누군가에게 제대로 사랑을 준 적은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지금도 남편에게 완벽하고 좋은 사랑을 주고있지는 못 할 것이다. 많이 서툴렀던 사람이 10년을 배웠다고 해도 중학교 3학년 수준 정도 되었을테니? 그래도 그나마 중등과정을 겪을 수 있었던 것은 진짜 사랑을 하는 사람은 스스로 홀로 서 자신을 사랑할 수 있는 사람임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어떤 갈등의 핵심은 사실 상황이나, 상대방의 문제가 아니고 나에게 있다는 것을.


덕분에 나는 적당히 약고 적당히 태만하지만 열렬하고 진심으로 사람을 대하는 것에 최고 가치를 둔 남자를 만났다. 뭐 그런 남자가 누구에게나 최고는 아니겠으나 나에게만은 최고임이 분명하다.



거짓말이 아니다 22


힘들게 결혼생활을 시작했다고 여기저기서 칭찬을 받기도 하지만 그다지 좋은 며느리인 편은 아니다. 나도 불만이 많고 약기도 약았다. 동서처럼 살고싶다고도 했는데 솔직히 머리가 나쁜 편은 아니라서 동서처럼 해볼 생각 나도 해보았다. 하지만 도저히 그렇게 할 수 없었던 것은 슬퍼할 남편의 얼굴이 어른거려서였다.


죽도록 밉기도하고 가끔 묵사발이 되도록 때리는 꿈을 꾸기도 할 정도로 열받게도 하지만 그가 그렇게 슬퍼하는 얼굴을 생각하면 가슴이 미어져서 나답지 않은 결정을 하며 살아왔을 뿐이다. 나를 최고라고 생각하시는 우리 아버님이 천국가셔서 이 못난 생각들을 다 보시면 어떻게하지, 하는 걱정이 들 정도로 남들이 보는 것 만큼 나는 썩 좋은 며느리가 못 된다.


남편은 아버님이 돌아가신 상실감에, 또 나이 마흔에 새로운 일에 정착하느라 정신이 없는데 나를 조금 더 여자로써 챙겨주었으면.. 하는 마음이 드는 걸 보면 나는 아직도 저 코골이에게 여자이고 싶은 모양이다.


오동통한 우리 아들은 9살에 벌써 키가 140. 어느새 나와 머리 하나밖에 차이나지 않는다. 아무리 더블싱글 침대를 샀다지만 함께 자기엔 침대가 너무 좁은데 아들은 꼭 내 살냄새를 맡으며 잠을 잔다. 하루 이틀 아빠와 잠들고난 다음 날이면 아주 의기양양해서 자기가 꼭 어른이라도 된 것 마냥 으스대곤 한다.


오늘도 아들이 만들어놓은 자장가 재생목록을 틀어놓으며 잠들기 전 꼭 하는 괜한 미운소리를 들으며 아이를 재웠다. 왜 그런지 모르겠는데 잠들기 전엔 ‘엄마 미워, 세상에서 제일 싫어, 엄마 내일 카톡 차단할거야’ 등등 미운 말을 쏟아낸다. 아마 그렇게 말해도 사랑한다고 말해주길 원하나보다. 아닌가 자기 전에 잔소리를 제일 많이 해서인가. 그렇게 말해도 이상하게 하나도 분이 나지 않는건 어차피 뒤 돌아 엄마 살 냄새 맡으며 잠들 아이 얼굴을 알기 때문 일 것이다.


나와 남편은 10년을 살았다. 우리는 서로를 잘 알기도 하지만 아직 모르기도하다. 나도 나를 잘 모르겠는걸. 이제야 알아가기도 하는 걸. 내가 이렇게 여성스럽다는 사실을. 숏컷과 청바지의 대명사였던 어린 시절은 사실 상처받지 않기위한 방어기제일 뿐이었고 지금도 그에게 너무도 여자이길 바란다는 사실을.


내 우울감과 번아웃은 남편도 오롯이 겪고 있을 터다. 지금은 응석보다는 조금 더 사랑에 대해 배워갈 시점인거겠지. 아이가 아직도 나를 밤마다 찾아주어서 너무 다행이다. 아직 아이에게 내가 너무 필요해서. 그렇지 않았다면 조금 위험한 주부가 되었을지도 모르겠다.


지금은 그를 조금 더 사랑해주어야 할 때. 사랑을 바라기만 할 때가 아니라 사랑 할 수 있는 사람이 될 수 있는 기회. 그렇게 생각하자.


홀로서는 방법을 평생 배워야하는 인간의 숙명이란, 그 길을 겪어갈 아이를 보면 조금 안쓰러울 정도로 쉬운 길은 아니지만. 어차피 해야하는 거라면 지금 이 남자와, 내가 낳은 이 아이와 함께 할 수 있어서 행복하고 감사한 밤이다.


그래, 이것이 사랑일테다. 20%든, 10%든 힘을 내서 최악의 인간인 내가 할 수 있는 배려를 쥐어짜내보는 것. 남녀의 사랑은 평생가지 못 해도 인간의 사랑은 평생 갈 수 있다. 이제 그는 나의 일부이고 가족이니까. 대신, 배신은 없다.


나는 오늘도 죄없는 남편의 귀에 속삭인다.


“바람피면 죽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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