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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셀라 Jul 21. 2023

우리 엄마처럼 살고 싶지 않아서

이 말이 꼭 나쁜건 아니다.

이렇게 써놓고 보니 참 잔인한 문장이다. 자신의 자서전을 언젠가는 꼭 써달라고 말했던 우리 김여사의 인생은 과연 책 한 권엔 담지도 못할 정도로 파란만장하다. 삶의 면면을 담은 이야기를 좋아하는 것은 어렸을 적부터 고생했던 엄마와 할머니, 어른들의 이야기를 듣는 것을 좋아해서인지도 모르겠다.


엄마와 나. 이 어린 것도 알것 다 알았을 것이다.


두 번의 이혼과 20년간의 암 치료. 성이 두개인 4명의 자녀와 출산마다 겪었던 곡절을 들으면 ‘아이고’ 소리가 절로 나온다. 딸은 엄마 팔자 닮는다는데. 22살 어린 나이에 출산한 엄마의 젊음과 사연들을 구구절절 지켜봐 온 나로서는 삶이 공포나 다름없었다. 앞으로 펼쳐질 것들은 어렵고 괴로운 것이라고 생각 했다.


그래서인지 도피성으로 책도 닥치는 대로 읽곤 했는데 분별력 없는 때에 허무주의에 빠져 어린 시절 꿈은 20살에 죽는 천재 예술가였다. 20살 이전엔 무언가 남기고 죽으리라. 그래서 그 시절의 나는 늘 초조했고 나의 부족함과 환경을 뚫고 나가지 못 하는 나약함에 늘 분노했다. 참으로, 열정적이었다. 그렇게 불태우고 싶었지만 생각보다 삶은 소소했고 아주 작은 일에도 격렬하게 흔들리곤 했다.


매일 아침 일어나 도시락을 싸던 중학교 시절. 내 단골 반찬은 고춧잎 무침과 총각김치 지짐이었다. 아무도 일어나지 않는 그 시간에 고요히 일어나 엉성하게 빨아 목에 땟자국이 그대로 남은 교복을 입고 학교에 나섰다. 아빠 없이 혼자 정육점을 마감하고 집에 들어와 새벽까지 아빠의 끝나지 않는 술주정을 들었던 엄마는 늘 잠에 취해있었고 할머니는 일어나서도 문을 열고 나와 보지 않았다. 참으로 외롭고 비참했던 시절이었다. 집에 사람이 많아도 외로울 수 있으며, 수많은 사람이 자신의 이야기를 털어놓고 나에게 다가와도 죽고 싶을 수 있다. 그런 인생의 아이러니를 이해하기엔 뇌가 조금 작았던 탓인지 쉽게 감정에 매몰되던 폭풍의 시절.


그래도 엄마 속 한번 안 썩인 일명 사춘기 없는 딸이었다. 만약에 딸이 있으시다면 이 단어를 제발 두려워하시길 바란다. 속을 썩이고 백날 싸우더라도 자기 의견을 피력해 독립해 나가는 성인이 되는 그 단계를 건너뛴다는 것은 언젠가 후폭풍을 몰고 온다는 뜻이니까.


19살 초 진로를 정해야 할 시기가 왔을 때 나는 정해야 했다. 이대로 아무것도 남기지 못했어도 죽음으로 비루했던 삶을 혼자 자축할지 끝없이 이어질 소소하고 격렬한 삶을 견디며 살아내야 할지. 커터칼을 들고도 막상 손목 한번 제대로 그어본 적 없을 정도로 삶에 열정적이었던 주제에 왜 그렇게 커다란 고민을 했던 것인지 아직도 의문이지만. 결국, 나는 낙관을 택했다.


어쩌면 태생이 낙관적인 주제에 비관적이고 화려한 귀족들의 삶을 닮고 싶었는지도. 그러기엔 집은 너무 좁았고 된장과 고추장 냄새가 났으며 섬유유연제를 아까워하는 할머니 덕에 옷에서는 이차성징의 냄새가 고스란히 나곤 했던 비루한 나의 사춘기는 결국 아무에게도 독립하지 못한 채 앞으로의 미래에 기대는 열린 결말로 끝을 보았다.


열린 결말! 이 얼마나 답답한 일인지. 물론 show must go on이다. 아무리 happily ever after로 끝나는 동화라도 그들의 삶은 이어지고 또 다른 사건들이 벌어질 테니까. 그래서 죽지 못해 살게 된 내 20대는 어땠느냐. 우습게도 나름 괜찮았다.


몇 번의 평생 흑역사를 만들었고 온몸을 불사를 정도로 열정적으로 하고 싶은 일을 해보기도 했으며 가난 속에서 일생일대의 남자를 만났고 한 푼도 없이 결혼에 골인해 아이까지 낳았다. 그때 죽어버렸다면 만나지 못했을 행복도 잔뜩 만났고 슬픔과 절망도 맛봤으며 그 안에서 꽤 인생과 친해졌다. 물론 그렇다고 아직 능숙하진 못 하다.


엄마의 중학교 시절과 나의 중학교 시절 또한 달랐다. 엄마는 사랑받는 막내딸에 학교에서 인기인이었다고 한다.



20대가 지나 이제 마흔을 앞두고 있다. 그동안 어떻게 살아왔나. 딸은 엄마 팔자 닮는다는데. 심지어 손금도 유전이다. 손을 쓰는 습관이 비슷하니 손금도 비슷할 수밖에. 감정회로가 비슷하다 보니 짓는 표정도 비슷해서 관상도 비슷하다. 그렇지만 나는 엄마가 아니다. 그 시대의 김여사가 아니며 김여사의 부모님과 나의 부모는 다르고 그의 꿈과 가치관도 나와 같지 않다. 나는 김여사와 다른 사람이다. 내가 정씨라서 다른게 아니라 엄마 뱃속에서 나왔어도 어쩔 수 없는 결괏값이다.


기독교라서 팔자라는 말을 극혐하며 살기도 했지만 돌이켜보면 어느 정도는 사람의 삶에서 정해진 환경이 있기에 팔자라는 것이 정말 있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러나 팔자가 있어도 내가 원하는 것을 찾고 변화하고 이뤄가는 과정에서 내가 이겨내야 할 장애물 정도일 뿐 그것이 삶 전체를 휘두른다고 생각하진 않는다.

성장하며 지켜보았던 엄마의 여자, 엄마, 아내. 그것은 지금의 나와 다르다. 엄마의 남편과 내 남편이 같지도 않다.


엄마에게 대못을 박는 말이겠지만 참 자주 했던 말이다. 나는 엄마처럼 살지 않을 거야. 물론 상처받았겠지만 한편으론 엄마에게 희망을 주었다고 생각한다. 맞아, 내 딸은 나처럼 살지 않을 거야. 엄마도 낙관에 기대어 세월을 여기까지 흘려보낸 것은 아닐까.


암치료 하던 10년 전. 엄마도 나도 어렸다.


엄마의 암이 완치되고 나의 공황장애가 생활이 되기까지 우리의 고군분투를 그저 흘려보냈다는 말로 표현하긴 억울하지만 시간이 지나고 보니 우리는 미래를 기대하며 애써 흘려보냈고 여기까지 올 수 있었던 것 같다.


저출산의 시대. 아이를 낳지 않고 결혼하지 않는 시대. IMF와 현대에 적응하지 못한 가부장적인 가족의 모습을 보고 가족에 희망을 잃어버린 많은 청춘에게 낙관을 선물하고 싶다. 당신은 당신의 엄마·아빠가 아니며 당신의 인생을 개척할 수도 있다고.


엄마·아빠에게 받았던 상처가 있었을지언정 당신의 아이에겐 사랑을 줄 수도, 당신이 받지 못했던 사랑까지도 줄 수 있을지도 모른다고. 무책임하지만 정말로 일어날 수도 있는 낙관에 대해서 겪었던 사람으로서 알려야 할 의무감을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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