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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셀라 Jul 19. 2023

2019년 5월의 앙헬레스 -2

그날이 준 후폭풍

원수 같은 둘째 놈과 남편과 나. 기묘한 조합의 여행이 시작되었다. 사실 동생과 남편은 그닥 친하지 않아서 데면데면했고 그 당시의 동생은 나에게 쌓인 게 많아 술만 먹으면 ‘누나는’무새가 되어 어렸을 적 젖병 뺏어 먹던 얘기부터 중학교 때 얻어맞던 이야기까지 해댔기 때문에 우리는 사이가 그닥 좋지 않았다. 게다가 여행이나 새로운 곳을 싫어하는 남편과 나는 해외여행이 처음이었다. 사귀고 나서 처음 갔던 해외여행이 아빠의 시신을 수습하기 위해 범죄드라마 배경지가 되었던 곳을 간 거라니. 그나마 다행이었던 건 내 돈으로 떠난게 아니었다는 사실이려나.


우리는 야밤에 클락공항에 떨어져 우버를 타고 급하게 예약한 현지 숙소로 갔다. 한인회에서 숙소를 예약해주겠다고 했는데 영 믿음직스럽지가 않아서였다. 사진과 같이 야외 풀이 있는 풀빌라였다. 현지인 중 영어를 할 수 있는 사람이 없어 서로 많이 당황했지만 겨우 예약을 확인하고 방은 안내받았다.

물은 푸르지만 저 물에 들어갈 자신이 없었다


한국에서 출발하기 전 시신인도 관련 서류를 준비하기 위해 종일 비를 맞았던 나는 호텔에 도착해서 샤워해야겠다는 생각으로 씻지도 못하고 비행기에 올라 호텔에 도착하기만을 기다렸다. 남편에게 짐을 넘기고 나는 화장실부터 들어갔다. 근데 이게 웬걸. 녹물이 나온다.


컴플레인을 걸어 방을 옮겼다. 근데 웬걸. 또 나온다. 항의했더니 필리핀 직원이 이해할 수 없다는 듯한 손짓으로 여기는 다 이렇단다. 검색해보니 정말이었다. 필리핀의 수도는 아주 노후되어 있고 섬이고 강도 없어 식수원이 엉망인 곳이었다. 외국 프랜차이즈 호텔이나 한인이 하는 곳에 가야 연수기가 있어 샤워할 수 있지만, 그 물도 믿을 수는 없다고 한다. 결국 찜찜하게 잠을 청하고 옷만 갈아입었다.


다음 날 아침 일어나 바로 시신이 보관된 곳으로 향했다. 이때 한인회에서 고생해주셨다. 장의사와 사망 사인과 날짜 등등을 이야기하는데 웬 필리핀 가족이 와있다. 그 중엔 임신한 어린 소녀도 있었다. 이런 곳에 임신한 어린 여자라니. 장의사의 가족인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아빠의 필리핀 가족이라고 한다. 어린 여자의 뱃속에 내 동생이 있다고 한다.


페이스북을 도배했던 아빠와 필리핀 술집 여자들. 그중에 한 명이구나 생각이 들며 소름이 돋았다. 동정심도 들었다. 그녀도 아빠를 보고 싶어 했다. 아이에게 좋지 않을 거라고 했지만 듣지 않았다. 나는 될 대로 되라는 심정으로 허락했다.


그리고 락스냄새가 나는 안치실로 들어갔다. 시신의 냄새는 락스냄새보다 짙다. 생전 처음으로 보는 죽은 사람이었다. 3주는 지났을 시체. 필리핀의 장의사 기술이 좋은 건지 아빠의 눈은 곱게 감겨있고 피부도 화장되어 혈색이 도는 것처럼 보였다. 키가 커서 안치 침대에서 머리가 살짝 튀어 나왔다. 마지막 페이스북에 올렸던 사진처럼 금발을 한 아빠가 누워있었다. 목에는 선명한 줄 자국. 속을 어지럽게 한 시신의 냄새도 힘들었지만 숨을 쉬지 않는 아빠가 너무 무서워 손만 부들부들 떨다가 뛰쳐나왔다. 눈물도 나지 않고 분노만 치밀어 올랐다.


언젠간 잘 되면 필리핀에 놀러 가야지. 잘돼서 언젠간 만나야지. 그때가 되면 속상한 이야기도 하고 내가 낳은 아이도 보여주며 당신과 달리 잘 키우고 있다고 유세도 떨어야지. 어렸을 때처럼 찍소리도 못하고 혼나는 일은 이제 없을 거다. 아빠가 떠오를 때마다 했던 ‘나중에’에 대한 모든 생각이 무너졌다. 자살이라는 방식으로 나의 나중에를 무너뜨려 버린 아빠가 정말 너무 미웠다. 그럴 자격이 없는 사람이었다. 나의 슬픔과 애도를 받을 자격이 없는 사람이었다.


나와 동생 모두 울지 않았다. 그리고 한인회에서 소개해준 한인타운의 모텔로 숙소를 옮겼다. 그곳에도 야외 풀장이 있었는데 웬 늙고 뚱뚱한 백인과 비키니를 입은 젊은 필리핀 여자 둘이 물놀이를 즐기고 있었다. 아이를 데려오지 않길 정말 잘했다고 생각했다.


조금 쉬었다가 경찰서로 향했다. 경찰서에서 영사관 직원을 만났다. 그들의 부탁에도 아빠의 소지품을 내어주지 않았다. 필리핀 경찰의 부정부패는 옵션이 아닌 기본이어서 돈을 얼마 쥐여주어도 쉽지 않았다. 3~4시간을 기다리니 그들이 검은 봉투에 아무렇게나 담은 아빠의 소지품을 바닥에 던져주었다. 증거가 될 만한 핸드폰과 노트북, 지갑 그리고 무언가 잔뜩 적혀있는 노트를 챙겼다. 가방과 옷가지도 챙겼다. 무얼 사던 백화점에서 명품만 사던 아빠는 머리부터 발끝까지 천만 원은 넘겨야 하는 사람이었고 시계부터 가방 모두 이니셜이 각인된 좋은 물건이었다.


숙소에 돌아오자마자 노트북을 열었다. 노트북엔 유서와 함께 아빠에게 사기를 친 사람에 대한 정보와 증거들이 들어있었다. 현지에서도 잡히지 않을 교묘한 방법으로 클락의 땅을 모두 명의 이전 해놓았다. 필리핀 클락은 국토이고 소유하기 위해 현지 회사를 만들고 회사 명의로 땅을 사들였는데 동업자로 들인 한국인 한 명이 이사로 선정해놓은 필리핀 사람들을 포섭해서 회사 대표를 바꿨고 아빠는 해고되어버렸다. 아빠는 평생 그랬듯 남의 재산을 가지고 필리핀으로 도주했지만, 사업이 잘돼서 금의환향하기를 원했던 것 같다. 조카에게 돈을 불려주겠다며 사기를 치고 가져온 돈으로 사기를 당했으니 아빠가 좋아하던 사필귀정이라는 글귀에 걸맞은 결말 아니었을까.


여러 사람에게 구구절절이 쓴 유서 중에 신기하게도 나와 내 동생의 이름도 있었다. 꼴랑 한 줄이었지만 이름은 있었다. 괜히 통쾌함이 느껴졌다. 아빠가 사랑하고 소중히 여겼던 사람이 아니라 평생 피하고 싶었던 우리가 와서 이렇게 아빠의 밑바닥을 모두 보게 될 줄 몰랐겠지. 남들은 그저 바보 같다고 손가락질할지 몰라도 나는 이게 복수처럼 여겨졌다. 만약 한국에서 평안하게 장례를 치렀다면 나와 내 동생은 소식만 듣고 장례절차엔 참여할 수도 없었을 텐데 아빠가 사랑하고 애정을 주었던 사람들은 와보지도 못하고 뒷수습을 해주지도 못한다. 우리의 배려 없고 감정 없는 마무리가 최선이기에 아빠가 사랑하고 평생 아꼈던 그 딸은 아빠의 장례도 치르지 못할 것이다. 그러니까 평생을 마무리하며 내 이름이 딱 한 번 언급되었어도 괜찮았다. 그래도 둘째 놈은 아들이라고 몇 줄 더 적어놓았다.


노트북을 접어놓고 맨정신으로 있기 힘들어 숙소를 벗어나 독한 술을 샀다. 이상한 현지 가게에 가서 칼라만시도 샀다. 당시는 칼라만시가 아주 유행이어서 카페 신메뉴로도 종종 나왔기에 현지 칼라만시를 먹어보고 싶었다.


저 빵집 빵은 그냥 밀기루 맛이었다


필리핀은 총기 소지가 가능해서 외국인이 나다니면 정말 위험하다는 데 무슨 용기였는지. 독한 술을 찾았는데 맘에 드는게 없어서 결국 비싼 돈 주고 소주를 샀다. 그리고 숙소로 돌아와 칼라만시 한 팩을 다 먹었다. 술에 한참 취했는데도 무서워하는 동생 놈 때문에 불을 다 켜놓고 셋이서 한 침대에서 잠들었다.


모든 과정이 그냥 시트콤 같았다. 슬퍼할 건더기도 추억도 없었다. 너무 웃겨서 배가 아프게 웃었는데 그 덕에 상황에 좀 부합하게 눈물이 찔끔 나기도 했다.


어렸을 때 명탐정 코난을 너무 많이 봐서인지 아빠의 죽음이 자살이라는 점도 석연치 않다며 같잖은 추리를 하기도 했다. 그 당시 필리핀 내에 한국인의 자살 사건이 굉장히 많아서 함께 했던 한인회에선 그냥 자살이라며 손사래를 쳤지만 후에 귀국하고 나서는 자살처럼 위장해주는 청부업자가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으니 아예 공상 같은 추측은 아니었던 모양이다. 그저 아빠가 자살했다는 사실이 싫어서 인정할 수 없었는지도 모르겠다.


보라색 노트 가득히 아빠는 새엄마에게 편지를 보냈다. 죽지 못하는 자신에 대해 한탄도 했다. 유전자라는 게 정말 무서운 게 필체도 문장의 흐름도 비슷했다. 어쩌면 이 우울도 아빠에게서 온건인지도 모르겠다. 소설을 쓰고 싶어 했던 아빠. 어렸을 적 엄마가 차마 버리지 못한 아빠의 노트 속 캐릭터 설정과 구상 중이던 소설들이 떠 올랐다. 더 이상 아빠처럼 구상만 하고 있지 말아야겠다고 생각했고 언젠간 이 기묘한 여행에 대한 소설을 써야겠다고 생각했다. 아빠 딸로 살지 않겠다는 의미에서 절대로 소설을 써낼 거라고 다짐했는데 결국 아직도 써내지 못했다. 돌아와서 한편의 단편영화를 만들긴 했지만. 소설은 여전히 구상만 하고 있다.


새엄마가 미워서인지, 나에 대해 한 줌 생각도 없었던 아빠가 미워서인지 그 보라색 노트는 아직도 가지고 있다. 물론 그 이후로 한번도 들여다보지 못했지만.  (이 글을 읽고 생각나 한번 들여다보았다. 괜히 그랬다 싶다.)


아빠의 시신을 겨우 돌려받아 화장터로 보내고 한인회에서 보내준 sm몰을 돌아다니면서도 나는 아무 생각이 없었다. 곱게 빻은 유골을 받고 한국에 돌아가기 위해 대기하던 클락공항에서 조금 더 빨리 아빠를 만나러 왔었다면 아빠가 이렇게 되진 않았을까? 하는 후회도 했던 것 같다. 유서에 이름 한 줄 적을 정도의 사람이라면 그 정도 영향력은 있지 않았을까? 어찌 됐든 지난 일. 모든 후회는 접어두었다.


삶이란게 뭘까. 아빠가 살아왔던 인생과 아빠와 겹쳐진 내 인생을 되돌이켜 봤다. 접점 사이 아빠가 느꼈을 감정과 내가 느꼈던 감정을 대조해보기도 했다. 그러나 이제 모든 게 상상일 뿐이다. 평생 끌어안고 살아야 할 미스터리가 하나 생겼다. 그게 아직 버겁다.


우리 아들은 참 수다쟁이다. 그리고 참 사랑스럽다. 우리는 자기 전에 가장 수다스럽다. 서로의 살 냄새를 맡으며 보내는 그 시간은 행복의 극치다. 아들은 항상 내게 묻곤 한다. ‘나는 그때 이런 감정이 들었는데, 엄만 어땠어?’. ‘엄만 그때 무슨 생각 했어?’ 신나게 수다를 떨고 잠든 아들을 토닥이며 얼굴을 쓰다듬다 보면 마음속에서 이런 질문들이 솟아오르는 걸 느낀다.


‘그때 아빠는 어땠어?’ ‘아빠는 그때 무슨 생각이었어?’ 아직 자라지 못한 어린아이 같은 내 마음속에 해결되지 못할 질문이 있다.


2019년 5월 앙헬레스에선 느끼진 못 했던 질문의 폭풍은 아마 눈감기 전까지 이어질 것 같다. 우리 아들은 이런 폭풍 속에서 살지 않길 바라면서 오늘도 정답게 대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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