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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셀라 Jul 18. 2023

담배를 버렸다.

새 삶을 위해 무언가는 버려야 할 때가 있다.

반 갑 이상 남아있었지만 굳이 몇 개비인지 세지 않았다. 몇 개비이든 상관없었다. 끊어내야겠다는 결심만 되새겼다. 


처음 담배를 접했을 적엔 한 갑에 1700원이나 했던가. 그런 담배가 이제는 4500원을 호가한다. 살아온 20년 동안 물가가 2배 이상 올랐다는 것이 그제사 실감 났다. 


돈이 없다, 없다 한탄하면서도 그 한숨 뱉어낼 생각에 머릿속 계산기가 멈추는 걸 보면 하루 대부분 머릿속에서 떠들어대는 ‘여유가 없다’라는 문장은 분명 틀린 가정일 테다. 


나와 담배의 역사는 꽤 오래되었다. 첫 만남에서부터 지금까지 19년? 20년 가까이 된 걸 생각하면 꽤나 서로를 잘 아는 친구 정도의 사이이려나. 시궁창 같았다고 표현했던 많은 시절 동안 간간이 위로가 되어줬던 좋은 친구.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은 속내를 한숨으로 털어낼 수 있도록 묵묵히 타들어 가며 시간을 내주었던. 어쩌면 아주 오래된 그 어떤 친구보다도 마음의 위로를 주었던 존재. 그것이 나에게 담배이려나. 


그런 담배를 끊게 된 건 시궁창 같았다- 라고 표현했던 절반 가까이의 인생보다 더한 지옥을 만났을 때였다. 여기가 삶의 밑바닥인가보다 싶을 정도로 심정적으로나 환경적으로나 바닥을 쳤을 때. 달라질 수 없을 것 같아 담배로 자위하던 삶을 그때 끊어내야겠다 처음으로 다짐했다. 그렇게 끊어내면 좋은 사람이 될 수 있을 것 같았고 새로운 삶을 살 수 있을 것 같았다. 


그 순간 그토록 갈망했던 새로운 삶. 그것의 정체는 무엇이었을까. 우습게도 지금에와서는 알 수 없게 되어버렸다. 아마 그렇기에 종종 견딜 수 없을 때 삶을 저주하며 한숨을 태우는 것이겠지. 


아무에게도 말할 수 없는 심연이 살다 보면 종종 생긴다. 그 마음의 구덩이는 누구에게나 있으며 각자의 방법으로 덮어두거나 해결하며 인생이 이어져가는 것일 테다. 부끄럽게도 그 심연을 해결하는 것조차도 자본주의에 갇혀있는 나를 발견한다. 


손아귀에 쥐어진 몇 푼의 돈과 여기저기 누군가의 생계를 위해 불을 반짝이고 있는 편의점. 그곳에서 나는 나의 심연을 정리하기 위해 돈을 지불하고 스스로 몸을 해치기에 가장 좋다는 가장 저렴한 마약을 산다. 니코틴은 누가 뭐래도 마약이다. 나라가 허용을 했건 어쨌건 말이다. 


우습게도 내가 원했던 새로운 삶의 구성원인 남편은 내가 담배 피우는 모습을 한 번도 본 적이 없다. 굳이 보여준 적도 없거니와 그 흔적조차 들킨 적이 없다. 왠지 그에게 그 모습을 들키는 순간 시궁창 같았던 그때의 삶이 쏟아져 들어올 것만 같은 불안감 때문이다. 


나는 좋은 아내. 좋은 엄마. 동화나 드라마 같진 않더라도 그들에게 안정감을 줄 수 있는 사람이길 바란다. 하나님이 좋은 기회를 주셔서 이 가정을 겨우 꾸려가고 있지만 속이 좁고 생각이 편협한 나는 종종 이 행복을 깨지 않기 위해 나 스스로를 태운다. 나를 위로한답시고. 모순적인 것은, 정말 모순 그 자체인 것은 한편으론 이 모습을 들킬까 전전긍긍하며 불안해하는 나 자신이다. 최근 자기혐오가 심해진 까닭에 한몫하고 있는 게 아닐까. 


그래, 나를 망치며 환경을 탓하고 세상을 탓하는 것을 멈추고 싶다. 지금의 내가 그런 모습이 아니라면 좋겠다. 누구에게나 찾아오는 인생의 큰 파도를 조금 더 의연하게 맞이할 수 있는 강한 사람이었다면, 하고 바란다. 



흙탕물이 시간이 지나 가라앉아 맑아 보인다 해도 진동이 오면 다시 불순물이 떠오르듯 여전히 불순물투성이인 자의식이 쏟아져나온다. 그것이 혐오스럽다. 제대로 바라볼 용기조차 없다. 여유가 없다는 좋은 핑계는 담배로 나를 도피하게 했는지도. 


하루에도 몇 번씩 굴뚝같은 마음을 세우고 계획을 세운다. 그리고 몇 번씩 흐지부지 넘어뜨리며 하루를 보낸다. 


분명 나아지고 있다. 미루기만 했던 강의안을 완성하고 촬영 일자를 잡았다. 생활 스포츠지도자 필기시험을 접수하고 3과목을 마쳤다. 초절식을 원하는 피티쌤과 이별했다. 성실하게 직장에 나가며 아이를 케어하고 집을 청소한다. 무엇보다 주변 환경이 깨끗해야 할 것 같아서 깨진 유리같이 날이선 마음 상태에서도 온 마음이 찔려가며 종일 집을 청소한다. 



고통 같은 불안감이 엄습한다. 이 불안감은 혼자 느끼는 것을 아닐 터다. 가깝게는 살을 맞대는 내 남편, 아이. 부모님과 가족. 친구들…. 모두가 겪는 불안일 거다. 그렇기에 스스로 체득해야 한다. 이 불안을 다스리는 법을. 


나를 파괴하며 잠시 도피하는 것보다 부서지는 것을 택하자. 죽도록 힘들어 보자. 


여름 해변가에서 만난 아름다운 초록 돌을 본 적이 있다. 사실 그 돌은 사이다병이 깨지고 마모되어 둥글게 된 유리 조각이었다. 내 마음속에 찌르는 듯한 통증의 유리 조각들이 굴러다닌다. 이것들도 아름다운 유리 조각이 되는 날이 올까? 마침, 내 태몽도 진주였다고 한다. 그래서인가 늘 숨겨져만 왔던 인생의 많은 순간, 언젠가는 완연한 모습으로 세상에 나가길 기대해봐도 될까? 


서른여섯. 많다면 많고 적다면 적은 나이. 나이에 대한 불안감이 없다면 거짓이겠지만…. 나의 때를 기다려본다. 나의 역량이 어떤 모습일지, 어떤 빛깔일지. 그건 지금의 나에게 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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