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셀라 Jul 27. 2023

행복

주말의 오후. 저녁을 기다리며 거실에 온가족이 뒹굴거리며 대화하고 있었다. 평소처럼 의식의 흐름대로 대화하다가 문득 행복에 관해 이야기하게 됐다. 아들이 물었다. 행복이 뭘까? 꽤나 철학적인 질문이다. 우리 부부가 대답을 망설이는 사이 아들이 자랑스럽고 큰 목소리로 이야기해주었다.      


“나는 엄마가 나를 안아줄 때가 제일 행복해!
그게 내 행복이야!
9살 인생 살면서 내가 내린 결론이야.”     

9년 인생의 결과가 이렇게 통찰력이 뛰어날 줄이야. 그러고 보니 나도 아들을 안아주며 참 행복했다. 나의 행복 그 자체라고 설명할 수 있을 정도다.


다 큰 9살 근데 아직 애기다


나와 남편은 서로를 바라보며 미소지었다. 행복. 그것이 도대체 뭐라고. 나와 남편은 도대체 얼마나 형이상학적인 것을 바랬기에 이렇게 냉큼 당당하게 이야기하지 못했던 걸까.


머릿속을 스치고 간 짤막한 것들은 사실 행복이라고 말하기엔 조금 힘들었다. 많은 것을 이뤘고 또 많은 것에 도전했지만 사랑하는 사람과 지내는 이 시간보다 행복한 것이 또 있을까.


인생을 살아가며 우리는 많은 것을 성취하고 이뤄내야 한다. 인간으로서 사회적인 존재로서 끊임없이 성취하지 않으면 살아갈 수가 없다. 그렇기에 우리의 결과물들은 그저 그런 것들로 치부되기 일쑤고 그것을 이룬 스스로에게도 인정이 없다. 세상이 빨라지고 화려해질수록 이런 현상들은 더 심해진다.


사실 행복은 아주 간단하다. 사랑하는 사람과 맛있는 것을 먹고 집에서 편안한 잠을 자는 것. 이것만 한 행복이 또 있을까? 나는 아주 복 받은 사람이다. 이 평범한 것이 너무나 어려운 요즘이다.


남들처럼 번듯한 직장도 없고 평범한 가정에서 자라지도 못했지만 나는 지금 사랑하는 사람과 살며 아이의 사랑을 받고 있다. 출근하면 집에 오고 싶고 퇴근할 때 행복하다.


어렸을 때는 학교에 가기도 싫었지만 집에 오는 것도 싫었다. 집을 떠올리면 슬퍼졌다. 그 기간이 길어졌기 때문인지 나는 기분 부전증이라는 것에 걸렸다. 우울증의 일종인데 약을 먹으며 아주 좋아졌지만 약을 먹어도 힘든 일이 생기면 다시 되돌아와 나아지는 속도가 아주 더디다. 그런데도 아이의 볼을 부비며 끌어안을 때의 행복감은 나의 모든 과거와 상처를 뚫고 내 인생을 행복하게 한다. 가진 것이 많은 부자로 만든다.





이런 기초적이고 기본적인 행복을 가졌음에도 나와 남편은 아직도 행복에 대해 고민한다. 인간의 욕심은 끝이 없기 때문일까?


매슬로우가 욕구 5단계에서 설명했듯이 인간에겐 가장 높은 단계의 욕구인 자아성취의 단계가 있다. 나와 남편은 서로가 개인의 자아성취로 인해 행복해지길 바란다. 물론 우리 아들이 자아성취를 하도록 우리를 희생하고 갈아 넣을 수도 있겠지만 결코 건강한 삶은 아니라고 확신하기에 우리의 자아성취에 대해서도 깊게 고민하고 있다.


이렇게 된 데에는 아버님의 장례식도 한몫했다. 마지막 아버님과 했던 대화가 뇌리에서 떠나지 않기 때문이다. ‘나는 무엇이든 될 수 있었는데 행동하지 않았다. 그것이 너무나 후회스럽다.’ 평생 자신을 뒷전에 두었던 남편도 그 말을 듣고는 신선한 충격으로 다가왔는지 최근까지 고민하고 있다.



남편은 원래 밴드를 했던 사람이고 노래를 했던 사람이다. 지금도 노래를 하고 싶어한다. 하지만 앨범을 내고 가수로서 활동하는 것보다 친한 친구들과 밴드 합주를 하는 게 행복하다고 하다. 그 취미를 위해 돈을 벌고 직업을 얻기로 했다.



나는 그가 원하는 일을 직업으로 삼지 않아도 행복할 수 있다는 사실에 감사했다. 모르겠다. 훗날 꼭 방송 활동을 해야겠다며 돌변할지도 모르겠지만 평생 엄마 아빠의 그늘에 가려 자신의 인생을 뒤로하고 살았던 남편이 큰 발걸음을 내디뎠다.


나의 개인적인 행복은 무엇일까? 사실 나는 이것을 오래 고민했다. 어떤 일을 할 때 가장 행복한가. 벌써 햇수로 4년이 지났지만 대답하기 쉽지 않다.


사실 운동을 할 때 엄청 행복하진 않다. 몸은 아프고 고통스럽다. 하지만 끝나고 나면 뿌듯하고 가라앉아있던 마음을 일으켜 세울 체력도 생긴다. 바디프로필을 찍고 나서 집에 오는 길엔 아주 울적한 마음이 들었다.



예상컨대 과한 식이조절로 체력이 아주 바닥을 친 상태였고 통장 잔액이 부족한데 큰 지출을 한 것을 뒤늦게 후회했기 때문이었던 것 같다. 다음에 바디 프로필을 찍는다면 더 자기효능감을 높일 수 있도록 적금으로 돈을 모으고 식이조절도 더 천천히 하고 싶다.


여전히 운동은 힘들다. 운동을 전하기 위해 매일 잠깐이라도 명맥을 이어오는 인스타도 나를 참 힘들게 한다. 그럼에도 운동은 분명 내 삶을 일으켰다. 매번 땀을 뻘뻘 흘리고 도저히 못 하겠다 싶으면서도 할 수 있다! 를 속으로 되세기게 했다. 나도 할 수 있으면 정말 누구나 할 수 있겠다 싶었다. 나처럼 우울감을 겪는 많은 사람에게 이 희망을 전하고 싶다.


운동과 별개로 살면서 가장 행복하게 만들어준 일은 사실 공연을 하는 것이다. 인생을 살며 가장 행복한 일이다. 배우가 극을 연습하고 무대를 꾸미고 공연을 홍보해 사람들을 끌어모아 그 앞에서 결과물을 보인다. 연극이 아니라 영화나 드라마도 마찬가지의 일이다. 나는 이야기 하는 것을 좋아하고 이야기를 만들어가는 과정을 사랑한다.


그래서 묻어질 글을 혼자 몇번이고 쓰고, 또 다듬는다.


나와 남편에게 재능이 있느냐? 그건 잘 모르겠다. 그러나 장례식에서 만난 많은 사람이 남편이 다시 노래 부르길 바라고 내가 다시 공연을 기획하고 무대를 꾸미길 바라는 것을 보면 우리는 그 일을 할 때 참 행복하고 다른 사람들에게 그 행복감을 전할 수 있는 것 같다.


나와 남편은 즉흥적이고 무책임한 면이 있다. 그만큼 원하는 일을 할 때 집중감이 높다. 우리 아들은 이런 부부의 단점을 가려주고 가야 할 길을 채찍질하며 우리를 다듬는다. 엄마와 아빠라는 책임감이 우리를 정상적으로 살게 해주는 방패막이인 셈이다. 때때로 짐처럼 여겨져 어깨가 무거워질 때도 있지만 그에 상응하는 행복을 느끼게 해주는 아빠 엄마라는 이름.


나는 절대 이것을 놓지 않을 것이다. 그렇다고 내 인생을 포기하지도 않을 것이다. 왜 그렇게 욕심이 많으냐고 누군가 묻는다면 이렇게 되물어줄 것이다. 안될 것 뭐 있냐고. 하지만 무엇이 우선순위냐 묻는다면 당연히 우리 가족이다. 어쩌면 나는 이제야 진정으로 행복해질 준비가 되었다.


만약 가정이 없는 상태에서 내 행복만을 좇아갔다면 나는 결국 공연에 의존해 살다가 공연이 끝날 때마다 외로움에 허덕이며 살았을 것이다. 공연을 준비하는 것을 정말 행복하지만, 그 끝은 늘 엄청난 허무다. 매일 보던 배우들은 이제 다른 곳으로 출연하고 나의 이름도 이제 없다. 다음 공연을 하기 전까진 말이다. 공연을 그렇게 바라면서도 선뜻 나가지 못하는 데에는 그 허무가 무서워서일지도 모르겠다.


빛이 있다면 그림자도 있다. 그림자마저 없애는 환한 빛은 오직 우리 가족뿐이다. 그렇기에 사람들에게 이 가족이 얼마나 소중한지 알리고 싶다.


젊은 청춘들의 마음을 이해하지만 한켠으론 서로 이해할 수 있는 가족이라는 울타리를 만드는 것에 부정적인 시선을 가진 것이 너무 안타깝다. 그저 동화로 끝나더라도 어딘가엔 실재할 가정의 행복에 대해 알리고 싶다. 좌충우돌 늘 부딪히며 문제가 가득하기도 하지만 그만한 가치가 있다. 언젠간 앞에 나서서 이야기 할 때도 오겠지.



그 이전에 통통한 우리 아들의 뱃살과 볼살을 맘껏 느껴야겠다. 이 충족감이 나에게 어떤 아웃풋을 배출하게 할지 기대하면서 오늘은 그저 행복하자.

이전 11화 그가 남기고 싶으셨던 것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