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첫 창업
폐업증 부자. 들어본 적이나 있는가? 36살이지만 무려 5개의 폐업증이 존재한다. 그중의 두 개는 카페다. 실질적으로 운영했고 실패를 맛보았던 사업체다.
그런데도 아직 커피가 좋다. 맛있는 커피가 있는 카페를 찾아다니고 주변에 좋은 카페가 새로 생겼다고 하면 꼭 가봐야 직성이 풀린다. 마케팅이 살리는 인스타용 카페 말고 진짜 커피가 맛있고 장소로 여유를 제공하는 카페. 그런 카페가 좋다.
처음 커피에 발을 들이게 된 것은 여성 자립 시설 겸 교육 시설로 쓰이는 동인천의 차우베라는 곳이었다. 수완 좋은 복지원장님이 요양원 안에 얻은 것이었지만 장사는 썩 되질 않았다. 이제야 장애인이 스타벅스 직원으로 일하는게 당연하게도 됐지만 약 15년 전엔 생소한 일이었다. 두 명의 지적장애인과 수습하기 위한 요령으로 앉아있었던 나. 내가 그들을 이끄는 리더가 되는 그림을 상상했겠지만 천만의 말씀, 나는 오히려 그들에게 많은 것을 배웠다. 나보다 많은 것이 부족하면 그것을 채우기 위해 몇 배로 노력하는 그들의 모습에 감동했다.
게다가 원장님의 커피에 대한 열정과 지식은 생각보다 대단했고 옆에서 교육을 돕던 나도 엉겁결에 빠져들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길을 잘 못 들어도 단단히 잘 못 들었다. 뮤지컬만큼이나 나는 커피가 좋다.
취지는 좋았지만 운영은 영 별로였던 차우베는 곧 문을 닫았다. 그러나 커피에 대한 열정은 식지 않았고 배운걸 써먹어 보고 싶어 하는 심보는 어딜가지 않았다. 2012년 운 좋게 교회 오빠의 도움으로 교회 근처에서 카페를 운영할 기회가 생겼다. 어렸던 26살 여자아이는 그저 신이 났지만 30살을 꽉 채운 당시 남편의 걱정은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카페는 6층이었고 1층에는 스타벅스가 커다랗게 자리 잡고 있었다. 그래도 병원 앞이 아니냐고 자위했건만 병원 종목마저 내과였다. 장이나 속이 좋지 않아 내원하시는 분들이 대부분이어서 커피를 팔기는 어려웠다.
자연히 매출이 나지 않아 운영이 어려울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젊었기 때문일까? 왜 그저 즐거운 기억만 있는지 모르겠다. 당시 숙명여고 학생들에게 토스트에 누텔라 잼이나 카야잼을 만들어 팔면 어떨까 해서 정문 앞에서 호객행위를 한 적도 있다. 실제로 학생 중 몇 명은 단골이 되었다. 장이 아픈 분들을 위해 수프도 팔았다. 슈퍼에서 사 온 크림 수프였지만 내가 만든 고급 수프인 줄 알고 거의 매번 시켜 드셨던 어르신도 계셨다.
무엇보다 잊을 수 없는 것은 과일청과 더치커피를 판매하게 된 일일 것이다. 여러 가지 악조건에 접근성이 떨어지는 6층이었지만 인터넷이라는 것이 존재했기에 블로그로 과일청과 더치커피를 판매하기 시작했고 꽤 주문이 많았다. 플리마켓에 두어 번 참가했는데 두어 번 다 전 상품 매진되었다. 먹을 것이라 수량을 적게 준비한 것도 있었지만 그만큼 인기가 많고 호평이 많은 편이었다.
남편은 못되게 굴었던 병원 원장님이나 우리 사정을 봐주지 않고 냉정하게 쫓아낸 원주인에 대한 상처가 컸던 모양이지만 나는 그 안에서의 추억들이 더 컸던 모양이다.
결국 임신 + 지독한 입덧 + 남편의 신학 입학 예정 등등 여러 가지 사정으로 엉성하게 가게를 마무리했다.
아이가 크고 어린이집에 가서 적응되자 또다시 카페를 하고 싶은 마음이 스멀스멀 올라왔다. 로망이라면 로망인데, 어린이집 바로 옆에서 카페를 하는 엄마가 되어보고 싶었다. 초등학교 바로 옆에서 카페를 한다거나. 근데 이건 굉장한 정신력의 보유자가 아니라면 할 수 없는 것이었다. 장사수완이 좋아도 보통 좋은게 아닌 이상 힘든 일이다. 성격도 나처럼 내성적이어선 영 안 될 일이었다.
시작부터 좌충우돌이었지만 다 제쳐두고 결국 아이와 일 사이에서 애매하게 줄타기를 하다가 아이를 선택하고 많은 부분에서 카페를 방치했던 내 탓으로 한 번 더 폐업하게 되었다.
친아빠의 장례식, 인테리어문제, 주차문제, 엄마와 금전적으로 얽혔던 문제 등등 더 이상 견딜 수가 없는 와중에 코로나까지 터졌다. 가게는 문을 열다말다 하다가 운 좋게 권리금을 받고 넘길 수 있었다. 그 와중에 권리금을 받다니, 서울 사람들이 들으면 눈이 뒤집힐 일이지만 인천이어서 가능한 이야기였다. 나중에 들은 이야기지만 나에게 인수 받은 사람이 되팔았을 땐 가격이 두 배로 뛰었다고 한다. 매출은 별 변화도 없었는데 말이다.
아무튼. 이 와중에도 나는 커피를 사랑한다. 스페셜티 커피로 추출을 신경 써주는 커피 바가 있다고 하면 신나서 달려간다. 그 한 모금에 세상을 다 가진 것 같이 행복해진다. 물질적으론 늘 고통을 행사하지만 마약 같은 마음의 평안과 즐거움을 선사하는 그것. 악마의 음료 커피!!
그 검은 물이 좋다. 외람된 말이지만 나중에 돈을 많이 벌게 된다면 더 추출과 마케팅에 신경 쓴 제대로 된 커피를 하는 카페를 운영해보고 싶다.
좋아하는 인테리어와 가구로 가득한 공간에 취향의 음악이 흐르고 맛있는 커피를 매일 아침 맛보는 그 기쁨을 언젠간 다시 나누고 싶다. 변태적인 취향이 있는지 심사숙고해서 추천한 커피가 극찬을 받으면 그 기쁨은 책갈피처럼 꼽혀 좀 오래가는 편인지라.
아직도 상처보단 기쁨이 더 많은지라. 똥 밭에 구를 각오하고 우리나라 포화상태라는 커피 업계에 자본과 기술력으로 왕창 떡칠 된 카페 한번 차려봤으면!
망하고, 또 망했지만 커피를 마시러 다니면 다닐수록 아무래도 카페는 다시 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