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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셀라 Aug 04. 2023

꿈을 이루는 건 좌절이야

나의 꿈

 

실패 없는 성공이 있다면 좋겠다. 그리고 그 주인공이 나라면 정말정말 좋겠다. 이번 주 로또는 제발 실패 없기를.


막상 글을 쓰려고 살펴보니 내가 이뤄낸 것들은 작고 보잘것없어 영 자신 있는 문체로 말하기가 힘들다. 이 문제로 남편과 이야기하며 실패했거나 거절당한 것들을 나열하다 보니 목소리가 커졌다. 본데없는 자신감이 드러났다. 실패만큼은 자신 있게 해본 모양이다.


돈 벌고 싶어서 카페 했다가 폐업했고 지금은 운동인을 꿈꾸며 공부하고 있지만 궁극적인 내 꿈은 내가 쓴 대본으로 직접 연출해 공연을 올리는 것이다. 직접 연출하지 않아도 좋다. 글로 표현한 세계가 다른 사람의 관점으로 무대에서 펼쳐지는 황홀경을 한 번쯤은 겪어보고 싶다.


그래서 쓴 대본이 생각보다 꽤 된다. 아쉽게도 젊은 시절 여기저기 돌아다니며 작업을 했던 탓에 메일에 저장한 미완성본들 뿐이다. 글쓰기 전 자료들을 정리하다 보니 예전에 완성했다가 까였던 작품 몇 개의 완성본은 도저히 찾을 수 없었지만 완성된 대본도 네다섯 개 정도 있다.


그중 한 개는 남편에게 주었던 대본이었다. 아주 우울한 한 남자와 여자의 만남에 관한 내용이었다. 지금 세대라면 이해할 수 없는 9개월이라는 긴 썸의 끝자락에서 서로의 감정을 확인했으면서도 현실 때문에 머뭇거리던 그에게 보낸 폭탄 같은 거였다. 짧은 단편영화라면 만들 수 있을 것 같아서 주변에 연기하는 몇 명을 찾아갔지만 모두 거절당했다. 하긴 자본도 없고 영화를 만든다는 것에 지식도 없었으니.


대본을 독학했기 때문인지 특유의 광적인 집착이 대놓고 드러나는 문체 때문인지 내 작품에 고개를 끄덕여준 사람은 당시 남편뿐이었다. 그와 나는 결국 이렇게 살 부대끼고 살 수밖에 없는 운명이었나보다.


본래 뮤지컬과 졸업생이지만 전공은 기획과 제작. 하지만 늘 연출이나 극의 흐름에 더 관심이 많았다. 어느 날은 수업 중 한 교수님께서 동화를 비틀어 설정을 다시 부여해주셨는데 그 날밤 그 이야기가 생각나 잠이 오지 않았다. 이야기가 꼬리에 꼬리를 물고 계속 생각나 밤새 글을 썼다. 다 쓰고 나니 20장 남짓의 소설이 되었고 교수님께 언질을 드렸더니 흥미롭게 봐주셔서 다음 학기에 교수님께서 연출하시는 공연의 조연출로 일할 수 있게 되었다. 그 글이 공연되진 못 했지만 호감을 샀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기뻤던 기억이 난다.


열정적이었지만 약지 못하고 인간관계에 서툴렀던 어린 소녀에겐 인생에 거의 유일한 빛나는 조각이다. 이 기억 덕에 아직도 글을 쓰고 꿈을 꾸는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시나리오와 글쓰기에 관해 혼자 책을 찾아 공부하고 생각나는 대로 이야기를 써보았다. 언젠가는 내가 쓴 글로 공연을 올리고 말리라. 조금 늦더라도 말이다.


한번은 졸업 후에 동기와 만나 밥을 먹으며 내 꿈에 관해 이야기하니 그 아이가 비웃었던 것이 생각난다. “네가?”라는 단어를 제일 처음 들었던가. 그 이후에 늘어놓은 이야기는 기억나지 않는다. 동기는 지금 뮤지컬을 하지 않고 IT 계열의 회사에 들어갔다고 한다. 아주 현실적인 친구였던 것이다.


맞다. 이 꿈은 아주 이상적이다. 밥 먹여 주지도 않고 돈도 떨어지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실로 이뤄졌을 때를 상상하면 가슴이 떨리고 자연스럽게 미소가 지어진다.


카페를 폐업하고 친아빠 죽음의 후폭풍으로 힘들어하고 있을 때 그 대본을 다시 만났다. 그래서 현재 사회문제와 연관해 다시 대본을 써서 영화로 제작하고 싶어졌다.


친구와 대화만 나눴던 차에 운 좋게 동네에서 단편 영화제작단이라는 것을 모집했다. 혼자는 할 수 없을 것 같았는데 함께라면 할 수 있을 것 같아서 지원했다. 다행히 내 직감은 적중했다.


단편 영화제작단을 이끌어주신 김진열 감독님의 도움으로 영화제작에 대해 배웠고 함께 배우는 수강생들의 적극적인 지지와 응원 덕에 힘을 얻었다. 평생 거절당했던 설움을 씻겨내리는 시간이었달까. 물론 내 작품이 완벽하지 않았을 테지만, 그 긍정과 기쁨의 에너지가 나에게 몰려왔고 결국 완성품을 만들어냈다.


어설프지만 10분에 달하는 초단편영화를 만들었다. 미추홀구에서 진행하는 사업이라 지역방송과 지역 버스 광고에서도 방영되었다. 거기서 멈추지 않고 작은 유튜브 영화제에도 출품했다. 수상은 못 했지만 무려 출품작을 만들어 놓았다는 데에 의를 둔다. 어설픈 대본에 연기하며 함께 폼을 맞춰준 동기에게도 감사하다.


이후에 탄력을 받아 연극도 올려보려고 1인극 대본을 써서 완성했는데 급하면 탈 난다고 서로 욕심부리다 친구와 틀어졌다. 무엇에 대한 욕심이었는지는 정확하겐 모르겠지만 아마 그 친구는 내 꿈을 정확하게 이해하지 못했던 것 같다. 아니, 더 좌절이 필요한 인생이었는지도.


그 대본은 또 묻혀있다. 하지만 이젠 알 것 같다. 어쨌든 완성을 해놓으면 이 이야기가 가만히 있지 않을 것이라는 걸. 나의 필요에 상관없이 세상이 필요할 때 세상이 원하는 방식으로 어느 날 실현되어있겠지.


번갯불에 콩 굽듯 하는 걸 좋아하는 조급한 당나귀 같은 사람이라 좋게, 빨리 결과가 나왔으면 하는 바람으로 젊음을 보내온 덕에 이제야 여유라는 것을 좀 알게 되었다. 한낮에는 더운 초여름에도 그늘에 앉아있다 보면 살랑 바람이 분다. 아직은 초여름이라는 것이다. 가만히 그늘에 앉아 아무 생각하지 않아야 알 수 있는 사실이다. 너무 많은 생각과 행동은 때로 독이다. 때와 시라는 것이 있으니, 한 걸음 천천히 가도 무리는 없다.


아마 이 꿈을 꾸지 않았다면 누군가에게 “네가?” 따위의 하찮은 소리는 듣지 않아도 되었을지도. 수많은 찌푸리는 표정과 거절을 당하지 않았을지도. 그래도 그 덕에 얻은 황금 같은 지지와 팬도 있다. 아주 작고 사소한 반응이라도 그것에 감사할 줄 안다. 나를 잃지 않고 누구에게 휘둘리지 않으면서 작은 이상들을 펼쳐나간다. 좌절하지 않았다면 이 작은 꿈도 이룰 수 없었다는 것을 알기에 앞으로 펼쳐질 좌절들을 기다린다. 그렇다. 도전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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