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 나의 이야기
말이 많은 편은 아니지만 살며 느끼는 것들을 쏟아내고 싶어하는 욕구는 좀 강한 편이다. 작가는 결국 수다쟁이일 뿐이라는 어느 작가의 문구가 생각난다. 아멜리 노통이었던가. 그녀의 말에 작게 고개를 끄덕였던 어느 날부터 앉아서 수다를 떨기 위해 애를 썼다. 작가가 되고 싶었다. 물론 험난한 길이었다.
대본을 쓰고 댓 번의 거절을 겪으며 작가라는 타이틀에 대한 탐욕이 강해진 것일까. 그저 이야기를 세상에 남기고 싶은 인간의 본능인가. 잘 모르겠지만 어렸을 적부터 작가가 되고 싶었다. 한 번쯤은 책이란 것을 내고 싶었다.
가나다라마바사 한글은 참 쉬운데 감정과 상황을 글로 남에게 이해시키는 데에는 많은 에너지를 요한다. 정말 어렵다. 그런데도 결국 써냈다. 헤밍웨이는 말했다. 글을 잘 쓰는 비결은 없다. 타자기 앞에 앉아 코피를 흘리는 것뿐이다, 코피 대신 콧물을 흘리며 엉덩이 힘을 길러 나갔다.
이렇게 된 데에는 확언의 도움이 컸다. 부정적인 데다 수줍음을 많이 타는 내가 어떻게 작가라는 확언을 사람들 앞에 공공연히 할 수 있었냐면, 바로 꿈을 찾는 엄마만이 꿈을 꾸는 아이를 키운다의 저자 김미영 작가님이 진행하신 나를 행복하게 만드는 말들이라는 커뮤니티 덕분이었다.
작가님이 올려주신 글감에 맞춰 매일 글을 쓰는 습관을 들이는 것이 커뮤니티의 목적이었다. 책상 앞에 앉아 뭐라도 써야겠다고 생각했던 나에겐 안성맞춤이었던 셈이다. 일전엔 다른 글감으로도 글을 많이 썼던 것 같은데, 내가 시작한 달부턴 유난히 책을 내는 작가가 되는 것에 관한 내용이 많았다.
당시엔 구색에 맞춰서 썼던 내용이 많았는데 이야기를 엮어 출간제의서를 내기 위해 목차를 쓰고 써놓은 글들을 돌이켜보니 당시의 확언들이 얼추 이루어져 있어 당황스러울 따름이다.
아직 작가라는 호칭이 어색하지만 그래 작가가 별것인가 이야기를 쓰고 누군가가 그것을 읽어준다면 그것이 작가이지.
아버님의 장례준비로 힘들었던 시기 공황장애와 각종 악상황에서 공적인 커뮤니티에서 더 이상 글을 쓸 수 없었다. 그래도 글을 놓고 싶지 않았다. 고민 끝에 작가님께 양해를 구하고 개인적으로 글을 제출했던 것들이 이제 한 권의 책으로 엮이게 되었다.
작가님이 커뮤니티에 참여한 모두가 작가가 될 것이라 확신했던 것처럼, 내가 어설프게 베스트셀러 작가가 되고 싶다고 욕망을 드러냈던 것처럼 톱니바퀴가 돌 듯이 무언가 맞아떨어져 가고 있다.
그동안 많은 글을 썼고 지웠고 묻었지만, 이 글만은 세상의 누군가에게 읽혀야 할 것 같다. 그렇기에 이렇게 등 떠밀리듯 타자를 치고 있으리라 믿는다.
어렸을 적의 나는 활자중독처럼 책을 읽는 것을 좋아했다. 어느 학교의 교장 선생님이 쓰신 어린 시절 바탕의 소설이나 유명하지 않은 얇은 책자도 어린 세상을 울릴 정도로 좋은 책인 경우가 왕왕 있었다. 누구에게나 그렇지 않았을지도 모르겠으나, 나에게만은 세상을 넓혀준 좋은 책이었다. 그리고 이젠 나의 이야기가 나의 방법이 아닌 이 이야기를 읽는 사람의 방법대로 세상을 밝혀나갈 차례일 테다.
그렇다. 나는 작가다. 이야기를 세상에 내놓아야겠다고 다짐했던 순간부터 김미영 작가님께선 늘 나를 작가님이라고 불러주셨다. 너무 부끄럽고 민망해 무의식중에 모른척해 왔지만 꼬박꼬박 그 호칭을 불러주신 이유가 그녀의 확신임을 안다. 작가님은 선한 것을 흘려보내는 분이다.
작가(作家)의 작(作)이 글을 짓는다는 뜻이기 때문에 작가는 글을 쓰는 사람이라고 1차원적으로 흔히 불리지만 오늘날 작가는 포괄적인 단어로 창작활동을 하는 모두를 뜻한다고 한다.
내가 작가라면, 따뜻한 이야기를 창작하는 사람이라고 말하고 싶다. 이 이야기는 모두 직접 겪은 것으로 어찌 보면 평범한 삶에 불과하다. 아니 오히려 불행한 축에 속한다. 그럴 수 없는 상황이었음에도 따뜻한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그런 작가가 되고 싶다.
지금까지 읽어오신 분들이라면 알겠지만 내 삶은 거칠고 예외적이다. 그럼에도 따뜻하게 세상을 바라볼 수 있었다. 생존할 수 있었다. 여러분도 그럴 것이다. 인간 모두에게 그런 힘이 있다. 그것을 일깨우는 것이 작가이리라.
10년 전 젊은 날 심리상담을 해주던 상담사님이 물었다. “만약 혜린님을 꽃으로 설명한다면 어떤 꽃으로 설명하고 싶어요?”라고. 내 대답은. 아주 길었다. 아주 예전부터 작가의 기질이 다분했던 모양이다.
길을 걷다 보면 콘크리트나 시멘트 사이를 뚫고 핀 작은 꽃들이 있어요. 다큐멘터리도 좋아하고 산길도 좋아하는데 걷다 보면 돌에 뿌리내린 꽃이나 나무들도 보여요. 저는 그런 나무에요. 도시라면 민들레. 흔히 발에 채이지만 사실 피워내기 위해 아주 노력한 꽃이요.
눈가에 눈물이 고이던 그 크고 맑은 눈이 생각난다. 멀리 있던 내 손을 끌어와 토닥여주던 따뜻함도. 그녀는 오랜 기다림 끝에 최근 엄마가 되었다. 책을 아주 좋아하는 데 이 이야기를 분명 무척 기뻐해 줄 것 같다.
인생은 참 신기하다. 모두가 나를 버려서 사랑받기 위해 나마저도 나를 버렸던 어둠의 시절도 분명 있었는데, 어느 날 흔적 없이 사라졌다. 그런 날이 있었나 싶다. 이야기로 남기지 않았다면 내 앞에 모래처럼 쌓여있었을 일들. 맞다. 그런 일들이 있었다.
이야기들은 당신 마음에 쌓여있는 먼지를 털어낸다. 그것이 고통스러울 수도, 후련할 수도 있겠으나 그로 인해 주어진 삶을 조금 더 품어볼 힘을 내기를. 작게나마 응원을 보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