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셀라 Jul 28. 2023

정신건강이라는 말이 있다.

현대에 아무리 의학이 발달했어도 뇌와 호르몬의 작용만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감정과 병세들. 인간은 정신에 지배를 당한다. 그런 의미에서 참 흥미로운 동물이다.


참을성 있게 이야기를 잘 들어주는 편인 정신과 담당 선생님께서 말씀하셨다. “지쳤네.”



맞다. 아무것도 절제하거나 계획하고 싶지 않다. 행동하는 것도 싫고 누군가와 이야기하는 것도 싫다.


나를 귀찮게 할 수 있는 유일한 존재는 우리 아들이다. 시리고 아픈 가운데 유일하게 따스하고 말랑거리는 존재. 독감에 걸려 땀을 뻘뻘 흘린 채로 3일을 씻지 않아도 사랑스러운 냄새에 무해한 생물. 9살 인생에 최악의 말을 내뱉어도 온갖 감정을 표출해도 괜찮은 존재.


약이 떨어져서 힘들었던 5일이었지만 약보다 효과 있었던 아이와의 하루하루 덕에 동굴에서 조금은 빨리 나올 수 있었다. 얼른 치료를 받아야지. 정신이 번쩍 들어도 아무것도 하기 싫었지만 1년 동안 배긴 습관은 무시 못 하는지 아이 등교 시간에 맞춰 눈을 떴다. 아주 오랜만의 아침 식사를 준비했다. 무거운 마음과 몸을 일으켜 아이의 채근에 못 이겨 겨우 집을 나섰던 한두 달. 씻은 듯은 아니어도 조금은 마음이 가벼워졌나 보다.



그래도 작년 11월까지는 다이어트를 가늘게라도 붙잡고 있었는데 올해 초부터 완전히 놓아버렸고, 아버님께서 돌아가실 것이라는 시한부 판정을 받고선 정신이 없어 떡볶이나 마라탕 등 자극적이고 간편한 배달음식으로 때운 지 한 달. 장례식 이후엔 원래의 패턴으로 도무지 삶이 돌아오지 않아 그대로 흘려보낸 지 한 달 남짓. 덧없이 시간만 흘러갔다.


이제야 조금은 절제해야겠다는 마음이 먹어졌다. 그러고 나니 지쳐서 숨이 넘어가는 자신을 발견했다. 공황장애와 우울증, 기분 부전 불안증 등등 각종 명목으로 약을 먹어온 지 벌써 4년 차. 피할 수 없는 고속도로에서 남편과 아이 앞에서 공황발작이 일어났다.


남편은 공황장애라는 진단은 들었어도 늘 밝고 열정적인 내가 우울증이라는 걸 별로 실감하지 못했고 아들은 엄마가 이렇게 아프다는 사실을 전혀 몰랐다. 그동안은 혼자 화장실로 도망갈 정신이라도 있었는데 이렇게 고속도로에서 심각한 상태까지 발작이 일어나니 나도 너무 당황스러웠다. 아이가 울며 채근하는 소리에 발작이 더 심해져 발작은 약 4~50분간 지속했다.


그 이후엔 남편도 조심스러워하는 눈치다. 여전히 아버님의 사망 관련한 서류와 어머님의 수발이 남아있지만. 사실 지금은 무엇도 손댈 자신이 없다. 원래대로라면 하루에도 몇 번씩 채근하는 건 나일 텐데 말이다.


머릿속에 가루처럼 휘돌아다니는 생각들을 입 밖으로 꺼내는 것이 싫다. 그 부정적이고 쓸데없는 생각을 입 밖으로 내뱉고 다시 듣고 되새기는 행위를 하기 싫다. 글로 쓰는 것도 싫다. 나는 괜찮다. 그리고 괜찮아질 것이다.


감성적이었던 중학생 시절보다 조금은 자란 것일까. 책임질 것이 있어서인지, 자꾸만 머리를 휘젓는 최악의 생각을 절대 입 밖으로 내뱉고 싶지 않다. 지고 싶지 않다. 해낼 것이다. 하나씩 다시 해내고 이뤄낼 것이다.


멘탈관리? 힘들어서 무너져 있는 사람들에겐 별 도움이 안 될 단어다. 그러나 일어나고 싶은 누군가가 있다면 이것도 전해야 할 것이다. 이제는 사람들이 많이 보는 게 별로 중요하지 않다. 누군가에게 도움이 될 수 있다면, 그걸로 되었다.

이전 18화 나는 작가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