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면 글로도 다 풀어낼 수 없는 수많은 상념들을 굳이 내 사람들에게 나눌 필요를 느끼지 못한지도 오래되었다.
20대의 나는 감성과 혈기를 주체하지 못했고 남편과 끊임없이 소통할 수 있다는 사실에 기뻤다. 10년 뒤인 지금. 40대에 접어든 그의 체력은 아침에 일어나 직장으로 나갈 수 있는 것만으로 충분히 감사하고 30대 후반인 나 역시 아들에게 미소를 보일 수 있을 정도면 건강한 편이라고 생각한다.
육아는 한시도 아이에게서 나를 떼어놓을 수 없기 때문에 나에 대한 상념과 감성들에대해 생각할 시간이 별로 없다. 솔직히 말해 남편과 시어머니가 살아갈 수 있도록 현재 대한민국에서 허락한 많은 복지들을 알아보고 금융체계에 대해 이해시키는 것만으로도 조금 버겁다. 한편으론 어두운 상념에 사로잡히지 않을 수 있어서 다행이라고 생각하면서도 마음이 마모되어가는 기분이 든다.
이런 어두운 생각들도 지쳤기 때문에 드는 어리석은 감정이리라. 나약해지면 항상 누군가 탓을 하고픈 부족한 심리때문이리라.
어렸을 때는 거세게 하늘을 원망하기도 했다. 밀려드는 허탈감을 몸이 버티질 못 했고 한번씩은 발악하듯 기절할 때까지 펜을 들고 노트에 가득 글을 쓰거나 밖을 싸돌아다니며 나에게 허락된 일들을 미친 듯이 해내야만 이 허탈감에서 조금 벗어날 수 있었다. 그마저도 분노였고 복수였다.
참 조용하고 내 이야기를 떠드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 편인데, 삶에 대한 태도를 들여다보면 참으로 에너제틱한 것이 우습지도 않은 반전이다.
젊었을 적처럼 막무가내로 감정을 털어내기엔 마음이 늙어버렸다. 감정이 무디어졌고 그 감정을 쏟아낼 만큼의 두뇌회전이 되지 않는다. 막다른 골목의 끝. 멍청이같이 있는 힘껏 벽을 밀어내고 몸통으로 부딪혀내다가 만신창이가 된 것 같은 기분이다.
아들이 놀랄 정도로 심장박동은 느려졌지만 시간은 무섭도록 빠르게 지나간다. 정신이 늙어버렸나보다.
최근 유투브를 보다가 말도 안되는 영상을 접했다. 늙은 쥐에게 무언가 주입했더니 젋어졌다나. 앞으로의 인류는 늙지 않을 것이란다. 주사 한방으로 몸이 젊어질 수 있다면 이 늙어버린 마음도 다시 생기로 가득찰 수 있을까?
삶의 굴곡에서 찾아오는 시련들은 유익하기도 하지만 재해처럼 큰 상처를 남긴다. 회복엔 많은 시간이 필요하다. 특히나 나처럼 회복탄력성이 좋지 않고 미련하게 밑바닥의 밑바닥까지 드러내고야 겨우 고통을 인정하는 사람에겐 말이다.
절제. 셀프컨트롤. 계획과 실행. 자기효능감을 느낄 수 있는 일들을 조금씩 해나가는 중이다. 꾸역꾸역. 또 꾸역꾸역. 도대체 무엇에 목이 마른지 모르겠지만 사막에 떨어진 것처럼 갈증이 느껴진다. 몸과 마음이 퍼석거린다.
집안일에 카페와 주방 알바. 손이 퍼석거린지는 이미 오래고 건성인 피부는 요새 특히나 퍼석 거린다. 이제는 마음마저 퍼석거린다. 마음이 털어내는 부스러기들을 치우고 멀쩡한체하는 것도 질렸다.
그만. 그만하자. 이까짓 호르몬 문제쯤은 열심히 치료해줄테다. 이겨내줄테다. 그렇게 다짐하고 오늘을 살아가기로 결심한다. 올바르게 쌓이는 하루야 말로 나를 치료해줄테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