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한 생활 예쁜 몸! 그 전에 건강한 정신
트레이너로 살게 된지도 3년 가까이 되었다.
다이어터로 살게 된지는 어언 5년차. 쪘다 빠졌다를 반복하며 여전히 어떻게 살아야할지 갈피를 못잡고 있다.
건강을 위한 다이어트 정석과 정답은 아주 잘 알고 있는 편. 장내미생물부터 시작해서 나이와 호르몬 변화 각종 체형과 각자의 처한 환경과 기질 등 여러가지 요인들에 대책도 잘 내려주는 편.
그런데 중이 제 머리 못 깎는다 했던가. 먹을 것을 좋아하고 탐닉하는 나는 여전히 건강한 절제하는 삶과 허랑방탕한 삶 사이에서 외줄타기 하듯 산다. 완전히 바닥으로 떨어져버릴 때도 있다.
최근의 내가 그렇다.
거의 30kg 가까이 감량하고 바디프로필을 찍고 난 후 트레이너가 되기까지 내 삶은 참 험난했다.
코로나에 카페를 폐업하고 시작한 헬스. 30kg를 감량하고 바디프로필을 찍은 후 운동강사로써의 삶을 꿈꾸게 됐다. 트레이너가 아닌 필라테스 강사로 먼저 시작하고 싶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내 원래 골격자체가 보통 필라테스 강사하면 떠오르는 마른 몸이 아니었으니 아섰어야 하는데, 나는 이 길에 들어서버렸고.
그 순간 시아버님의 암 소식을 들었다. 집안의 유일한 수입원이던 시부모님과 함께 하던 가게를 정리하고 어머님 아버님을 인천으로 모셔왔다. 그 과정에서 온라인 클래스도 열고 생활스포츠지도사 자격증도 땄다.
바로 트레이너를 할 수 있을 것 같았지만 남편은 졸지에 백수가 되었고 시아버님은 언제 돌아가실 지 모르는 상황이었다. 나는 공사장부터 공장까지 안 해본 일이 없이 생계를 위해 일했다. 남편도 마찬가지였다.
우리의 삶은 불안과 불투명함으로 가득 차서 어떻게 살아야할지 도저히 알 수 없었다. 남편은 다른 일은 해본 적 없이 노래하며 밴드로 데뷔를 준비하다가 시부모님 가게에서 10년을 일한 사람이었다. 나는 이미 나이가 서른 중반을 넘은 애엄마여서 트레이너로 새로 시작하기가 쉽지 않았다.
그 때 무너진 식단과 삶에 대한 절망감은 아무리 노력해도 세워지지 않는다. 그땐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우리는 하루종일 아버님 일로 걱정하며 준비하고 뛰어다니다가 먹을 수 있을 때 먹었고 잘 수 있을 때 잤다. 걱정에 짓눌린 밤은 잠을 쫓아냈다. 잠을 잘 수 있는 때는 흔하지 않았다. 새벽까지 남편과 울며 술을 마셨다. 가족 안에서 트러블도 있어 여러모로 소용돌이에 휘말렸던 때였다.
아버님이 돌아가신 이후에도 우리는 해야할 일을 해야했다. 남편은 세상에 던져졌고 나도 일을 해야만 했다. 그 전에 쌓여있던 앙금들도 곪아터져있었다. 다이어트라니, 할 수 없었다.
평온하고 평범하게 직장생활하는 사람들이 부럽다. 우리 아들도 그런 사람이 되었으면.
여러가지 일들을 처리하고 난 뒤에야 나는 곪아터지듯 쓰러졌다. 한달 가까이 병원에 입원해있었다. 이때 시어머니와 다시 화해했다. 우리는 서로를 품고 용서했다. 살이 5키로나 빠졌다. 먹고 자기만 했다.
퇴원한지 일주일이 채 안되어 트레이너로써 첫 출근을 하게 되었다. 일을 하며 매일 운동을 했다. 하지만 건강과 정신은 이미 무너진 상태였다. 하루하루 버티듯 살았다. 하늘도 알았는지 달콤한 보상들을 주었다. 운이 좋았고 매일매일 배움의 즐거움에 흠뻑 빠졌다. 중간중간 다이어트도 시도했고 다시 성공하기도 했으나, 멘탈 이슈로 술먹고 폭식하고 다 때려침. 사내정치의 희생양이 된 것을 견딜만큼 멘탈이 좋진 못한 유약한 인간인지라. 그래도 매일 운동하니 몸이 나쁘진 않았었다.
버티고 버티다가 결국 회사를 퇴사했다. 퇴사하며 트레이너의 미래에 대해 생각해봤다. 나는 나이가 있고 재취업이 쉽지 않은 중고신입이었다. 회원님들 반응이 좋은 편이었지만 아직 경력이 더 쌓여야 한다고 생각했다. 수업하는 것과 회원님들의 결과를 만들어 드리는 것은 행복한 일이었다. 하지만 헬스장의 오너가 되거나 관리직이 되는 것은 너무 끔찍한 미래였다.
그래서 1인 기업이라는 비전을 받아들이고 교육을 신청했다. 현재 있는 곳을 정리하는 동시에 1인 기업을 시작하며 새로운 곳에 출근 했다. 매출에 대해 겪어보지 못 했기에 당연한 일이었다.
하지만 금새 후회하게 됐다. 내가 생각했던 급여와 너무 달랐다. 첫달 이후부턴 항상 1인 기업의 매출이 더욱 높았다. 그러다보니 작은 것도 넘어갈 수 없게 되었다. 물론 너무 작은 걸로 갈구기도 했으나. 예전같았으면 참고 넘어갔을 일들이 참아지지 않았다. 여러가지 스트레스가 누적된 결과일지도. 그래서 몇개월 되지 않아 퇴사 엔딩을 맞았다.
완전하게 인수인계가 마무리 된 것이 바로 이번주! 그래서 인지 이제야 다이어트에 대한 생각이 고개를 들었다. 이미 전 직장에서부터 갑상선이 의심 될 정도로 심한 피로감과 무기력함을 겪었었는데 최근엔 피로감이 더 극심해졌다. 한 가지 일을 집중해서 하기가 힘들었다. (하지만 해냄. 그것도 꾸역꾸역. 생각보다 많은 일들을 해냄.)
처음 다이어트에 대한 스트레스는 나의 직업으로부터 왔다. 보여지는 직업이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이쯤되니 당뇨나 인슐린 저항성이 의심되는 상황에서 건강을 먼저 챙겨야 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퇴사하는 과정에서 완전 운동을 놓진 않았으나, 원하는 만큼 양껏 운동을 하진 못한 지라 체중이 늘어있었다. 활동량 자체도 줄었다. 먹는 것에 대한 이야기도 빼놓을 수 없다. 하루 10-12시간을 일하며 살림을 함께 할 수 없었기에 시어머니께서 함께 기거해주셨다. 우리 어머님의 음식솜씨는 대단하고 굉장히 고칼로리의 음식을 과하게 맛있게 하시는 편이시다. 퇴사 후 나는 배부름의 맥스를 찍어도 먹고 또 먹었으며, 먹은 뒤엔 누웠다. 혈당 문제 였는지 어지러워서 앉아서 집중하는 일들을 해낼 수 없었다. 그때 컨텐츠는 지피티가 없었다면 업로드가 힘들었을 것이다.
인정하자. 나는 이제야 여유로워 졌다. 그전에 내 삶은 방치되어 있었다. 나 자신을 위한 시간을 보낸 적이 얼마나 있던 가. 출퇴근 하는 시간 동안엔 수업 내용을 복기하고 회원님들의 체중과 식단들을 정리하고, 업무 중엔 홍보와 센터 생각만 했다. 퇴근 후엔 칼 귀가. 잠깐 이라도 앉아 내 시간을 누렸던 적이 단 한번도 없었다.
일기도 참으로 오랜만에 쓰는 것 같다. 내 감정을 들여다보는 여유가 이제야 생겼다. (1인 기업 만세....)
그래. 급하게 마음먹지 말고 지금의 내 상태를 인정하자. 60kg. 허리라인도 완전 무너짐. 그도 그럴것이 너무 누워있었음. 이제는 나이도 어느새 40을 바라보고 있다. 몸이 예전같지 않다.
다만 지금부터 회복을 시작해야 한다. 지금부터 매일을 쌓아가야 한다. 연휴가 있고 대구 여행도 있고 일이 아주 바쁘지만... 적당하게 절제하는 두끼와 충분한 수분 섭취. 운동이 아닌 활동량과 삶의 에너지에 집중할 것. 삶을 바로 세워보자.
사실 이 문제로 지피티에게 오랜 기간 상담을 받았었다. 그는 멋진 네이밍을 주었지만 결국 이 길을 걸어가고 완성시켜야 하는 사람은 나다. 절제 하고 운동하는 것도ㅡ 오늘 맥주를 먹지 않는 것도 나의 의지.
이제부턴 시간이 없다. 2-3개월 뒤를 기대 해본다. 정신건강과 신체 건강을 위해서라도 술과 알코올을 완전히 끊어내보자. 커피는... 하루 한잔까지만 허용... 그것까지 없으면 죽을 듯... 아직도 위가 아프다. 이놈의 위염은 도대체 무엇이 문제인가. 하지만 커피를 끊을 순 없지. 그간 식사량이 너무 많아서였을 수도 있으니 우선 커피는 보류!
오늘은 2시간 넘게 부평을 걸어다녔다. 내일은 일어나자마자 헬스장에 갈테다. (라기엔 9시에 무료상담이 잡힘) 정신건강을 위해 오랜기간 내원하지 않았던 병원도 내원해볼까 한다. 아마 신경안정제 등을 처방 받으면 들쭉날쭉한 수면 패턴도 잡힐 것이다. 매일 밤 신경안정제를 먹고 감정일기를 쓰고 자야지.
이렇게 나의 회복이 시작된다.
이 글은 나의 루틴 리추얼- 하나의 의식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