웹진 취향껏 12호 <취향껏>
음, 그러니까 나는 조금 촌스러운 구석이 있다.
우선 옷을 사는 취향이 그렇다. 기본 티를 사자고 마음을 먹었다가도 꽃무늬 원피스를 집어 든다. 펀칭이 들어간 니트를 보면 정신을 놓아버렸다. 어느새 쇼핑백을 들고 있는 나 자신을 보며, 훌륭한 소비라며 토닥토닥하기 일쑤였다.
사진을 고르는 취향도 그렇다. 수평도 잘 못 맞추고, 셀카도 잘 못 찍으면서 소위 ‘감성 사진’에는 목을 맨다. 노출을 한껏 낮추고 채도를 살짝 낮춘다. 거기에 그레인을 잔뜩 집어넣으면서 아주 흡족해하고, 막상 남에게 보여주기는 부끄러워 비밀 계정에만 살짝 올려두곤 했다.
책을 읽는 취향도 그렇다. 새 책보다는 누군가의 손이 탄 중고 책에 애정을 쏟았다. 알라딘 매장을 보면 사지도 않을 거면서 그렇게 들어가 본다. 이리저리 둘러보고 굿즈도 한 번씩 만져보고 나와야 직성이 풀렸다. 이북은 도대체가 읽을 수가 없다며 고개를 내젓고 종이책을 고집하는 것도 촌스럽기 짝이 없다. 좋아하는 문장에는 꼭 색연필로, 혹은 연필로만 밑줄을 그을 수 있는데 볼펜은 도저히 용납할 수가 없다.
사람을 보고 좋아하는 취향도 그렇다. 동백꽃 필 무렵 용식이를 보고 까마귀 소리를 내던 것이 그 때문이다. 아주 우직하고 단단하고, 한 곳을 향하는 사랑이 아름답다고 느낀다. 땅 속 깊이 뿌리를 내린 사람들이 아주 작은 실바람에도 흔들리는 나를 잡아줄 거라고 믿는 걸까.
또, 누군가에게 마음을 전하는 취향이 그렇다. 닿지도 않을 마음을 끊임없이 꾹꾹 눌러 글에 담아낸다. 8월의 크리스마스처럼 오지도 않을 사람을 기다리곤 했다. 좋아한다고 말할 용기도 없는 주제에 창문을 깰 용기는 어디서 나는 건지. 보고 싶은 사람에게 전화를 거는 삶보다 달려가는 삶이 무척 부럽다고 생각했다.
언젠가, 나도 촌스럽지 않게 될까. 유행에 민감한 옷을 사고, 노출과 채도를 한껏 높인 쨍한 사진을 좋아하고, 지하철에서 이북을 읽으며, 도시적인 사람들을 사랑하고, 더 이상 글을 쓰지 않는 날이 올까. 그렇다면 그건 또 나일까. 그런 날이 온다면 어쩐지 슬플 것 같다.
꽃무늬 원피스를 입는 나, 자글자글한 필름을 좋아하는 나, 종이책 향기를 좋아하는 나, 단단하고 씩씩한 마음을 애정 하는 나, 보고 싶은 사람들에게 언제나 진심을 향해 부딪히는 나. 나는 촌스러운 것들을 사랑하는 일이 퍽 마음에 든다.
그러니까, 음. 촌스러운 구석이 있는 나를 사랑하는 모양이다.
취향이 닿는 데까지는, 계속 촌스럽게 굴어보기로 했다.
웹진 취향껏에서 발행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