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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요 Jan 17. 2021

카운트다운

3,2,1 새해 복 많이 받아

Photo by zhenzhong liu on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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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운트다운을 하고 나면, 어쩐지 앞선 모든 것들이 사라지는 기분이야.




안녕, 잘 지내고 있니. 사람들과 대화를 하다 그게 벌써 작년이야-,라는 말을 듣고 깜짝 놀라는 새해의 초입에서 편지를 쓴다. 고심해서 고른 다이어리는 마음에 들지 않고, 낭비라는 생각에 다시 살 엄두도 내지 못한 채 물끄러미 빈 종이만 바라보는 요즘이다. 아이러니하지. 3개월이나 미리 사두고선, 정작 한 글자도 쓰지 않는다는 게. 21년의 일기를 시작하지 않은 탓일까, 올해가 여전히 2020년으로 느껴진다.


네모난 칸들을 바라보며 지나가 버린 날들을 채울까, 지금이라도 채워낼까-. 하다가 또 채우기를 관뒀다. 떠나 버린 날을 채우는 일에 얽매여서 무엇하겠니. 대신, 작년의 다이어리를 읽어봤다. 작년 1월 2일에는 몸에 난 여드름과 사투를 벌였다고 적혀있는데, 마침 올해 1월 3일에는 블랙 헤드와의 사투를 벌였다. 이런 걸 보고 있자니, 나는 엇비슷한 삶을 살고 있구나 싶어. 별거 있니. 세상 사람들이 2020년은 없었던 해로 쳐야 하는 거 아니냐는 말을 입 모아 말했지. 많은 것들이 변했지만, 그런데도 다를 건 없다고 생각하다가 일본의 유명한 다이어트 제품인 '없었던 일로'를 떠올렸다. 그걸 하나 사서 먹을까. 그러면, 한 해가 없어질까. 내 과식도 없애주고, 코로나도 없애주고. 우울과 슬픔도.


세상에 없었던 일이 되는 건 뭐가 있을까. 너는 그 답을 아니? 얼마 전에는 타일러 라쉬의 '두 번째 지구는 없다'를 읽었다. 우리에게는 플랜 B의 행성도 없고, 지구를 리셋할 수도 없는데 어째서 이렇게 대책 없이 살아가는 걸까. 그래놓고 없었던 일로 되돌릴 수 있다고 생각하는 건 어떤 자만이고 어떤 속임수니. 공기 청정기와 예쁘게 정돈된 분리수거함, 마트에 널린 식자재 탓일까. 소모품은 금방 채워지고, 단종되는 것들은 새로운 것으로 대체되는 비결여의 세상 속에서 살아가는 탓일까. 코로나의 시작에는 기후 위기가 있다는데, 내가 할 수 있는 것들을 가늠해봤다. 소모품을 더욱더 줄이기로 마음먹었고, 샴푸 바 뿐만 아니라 다른 샤워용품들도 고체 비누로 바꿔볼까해. 최소한의 도리를 할 때가 아닌 최선의 행동을 해야 할 때니까. 코로나 이후의 세계는 리셋되지 않을 테고, 너와 내가 쌓아온 생애도 마찬가지 일 테지. 이전의 우리와 이후의 우리는 엇비슷할 테지마는, 그렇기에 언제고 사투를 벌이며 살아가고 있을 거라는 생각을 하니... 잘 지내고 있니? 너도 무언가와 충돌하며 버텨내고 있겠지.


제야의 종소리가 없던 20년의 마지막 목요일과 21년의 첫 번째 금요일을 생각하며, 너에게 복을 빌어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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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해 복 많이 받아.




- 올해의 첫 카운트다운을 외치며, K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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