웹진 취향껏 14호 <부럼>
먼저 들어가겠습니다.
퇴근 인사를 하고 부리나케 지하철을 타러 갔다. 공모 때문에 슬슬 바빠지기 시작했는데 마감이 코 앞까지 다가왔다. 마음이 초조해졌다. 두 개의 지하철을 환승하고도 버스를 타야 집에 도착할 수 있다. 그 시간 동안에는 취향껏을 생각해야 한다. 주제에 맞는 내용을 정리하고 집에 가서 글을 써야 마감을 맞출 수 있다. 이번 호 주제는 부럼인데, 너무 막막하다.
우선 명절이라는 것을 챙긴 지가 꽤 오래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다 보니 절기에 맞는 음식이라는 개념도 거의 잊고 살았다. 더군다나 부럼? 단어도 낯설다. 국어사전에 검색을 해보니 대보름에 깨물어 먹는 딱딱한 음식을 말한단다. 우리 집에서도 부럼을 깨 먹었었나? 전혀 기억이 나지 않았다. 엄마에게 물었더니 어렸을 적엔 대보름마다 부럼을 깨 먹었다고 한다. 아니 그런데 왜 나는 전혀 기억이 안 날까. 마치 지우개로 지운 것처럼.
이제 마지막으로 이 버스만 타면 집에 도착할 수 있다. 2대의 버스를 보내고서야 안쪽 자리에 앉을 수 있었다. 이게 집에 가는 건가, 아니면 실려가는 건가. 아. 쓸데없는 생각은 그만 하자. 창가에 머리를 기대고 내내 부럼, 부럼, 부럼을 생각했다. 그때 무슨 소리가 떠올랐다.
잘그락 잘그락
딱딱한 껍질이 마주치는, 호두 두 알이 손 안에서 마주치는 소리였다. 나는 버스를 벗어나 소리를 따라 걷기 시작했다. 아주 오랜 길을 돌아 참으로 그리웠던 시절을 마주했다. 치매 예방에 좋다며 호두 두 알을 손 안에서 데굴데굴 굴리던 할머니의 주름진 손, 그곳에 도착했다.
할머니 껌딱지라고 불렸던 나는 어릴 때부터 할머니와 같은 방을 썼다. 언제부터였는지는 몰라도 기억이라는 게 생겼을 즈음부터 우리는 늘 함께였다. 할머니는 잘 때마다 드르렁드르렁, 컥! 지구가 떠나가도록 코를 골았다. 나는 어쩐지 그게 자장가 같았다. 할머니의 코골이를 들으며 팔뚝에 찹쌀떡처럼 딱 붙어서 자는 것이 참 좋았다. 할머니는 내가 자꾸 더듬어서 잠을 못 자겠다며 아침마다 잔소리로 나를 깨웠다. 그러면 나는 할머니가 코골이가 얼마나 심한 줄 아냐며, 아주 잘 주무시더라, 하는 이야기로 침을 튀겼다. 그렇게 투닥거리며 아침을 먹던 것이 우리의 평범한 아침 일과였다. 그러면서도 그녀는 늘 내 이부자리에 신경을 썼다. 드르렁 코를 골다가도 악몽을 꾼 손녀의 기척에는 벌떡 일어나 이불을 덮어주었다.
나는 아침잠이 무척 많았으나, 할머니는 참으로 부지런한 사람이었다. ‘사부작사부작’이라는 의성어가 참 잘 어울리는 사람. 잠시도 쉬는 법이 없었다. 새벽 기도도 잊지 않으셨고, 수요일 저녁마다 저녁 예배에 참석하셨다. 작은 카트를 끌고 자주 시장에 들러 장을 보셨고, 한아름 음식 재료를 사서 돌아오셨다. 그 재료들은 설에는 떡국이, 복날에는 삼계탕이, 동지에는 팥죽이 되곤 했다. 음식을 보면 오늘이 무슨 날인지 알 수 있을 정도였다. 워낙 다양한 음식을 먹고 자란 덕분에 나는 가리는 음식 하나 없이 자랐다. 그런 나를 보며 할머니는 늘 말했다. 으메, 저것을 누가 데려갈꼬. 게을러갖고는 먹는 건 무쟈게 먹는디. 우짜쓰까잉. 그러면서도 맛있는 참이 생기면 늘 나를 먼저 챙기셨다. 아야 일로와봐, 하면서.
저녁 쯤 되면 아빠는 부스럭부스럭 소리를 내며 집에 돌아오셨다. 여섯 식구나 되는 대가족이 한 집에 살았으니 늘 집에는 먹을 것이 떨어질 날이 없었다. 이맘때쯤이면 아빠는 어떤 말도 없이 거실에 모여 있는 우리에게 검정 비닐봉지를 툭 던져놓고 갔다. 맛있는 게 들어있나 살펴보고 잔뜩 들어있는 땅콩에 실망했던 기억이 난다. 그러면 할머니는 다가와 갈색 다라이*을 챙겨 비닐봉지 옆에 앉았다. 또각또각 소리를 내며 땅콩을 부러뜨려 그 안에 알맹이를 다라이에 담았다. 그러면 나는 실망한 게 언제인 듯 할머니 곁에 붙어서 함께 또각또각 소리를 내며 땅콩을 부러뜨렸다. 그럼 동생들도 다가와, 공장마냥 땅콩 알맹이를 꺼냈더랬다. 온 가족이 도란도란 모여서 잔뜩 쌓인 땅콩 알맹이를 하나씩 까먹는 것이, 그 별 것도 아닌 시간이 무척이나 행복했다.
*다라이 : 할머니는 작은 '대야'를 다라이라고 불렀다. 현대식으로 생각하면 보울(bowl) 정도 될 것 같음.
새해부터 연말까지. 아침부터 저녁까지. 나의 입에 들어가는 것에는 할머니의 손길이 닿지 않는 것이 없었다. 문득 떠오른 기억들에 그 소리들이 참 그리워졌다. 잘그락 잘그락. 사부자 사부작. 부스럭부스럭. 드르렁드르렁, 코 고는 소리까지도. 아니 정확히는 나의 절기를 지켜주던 할머니가 그리워졌다.
할머니가 떠난 이후로는 오늘이 며칠인지, 무슨 날인지 생각할 겨를이 없었다. 그 이후로는 우리 집에는 명절이라는 단어가 사라졌고, 남아있는 사람들은 사는 것이 급급해 그런 것들이 중요하지 않았으니까. 아빠와 나는 복날 정도에만 삼계탕 먹을까? 하며 운을 띄웠을 뿐 부럼은 생각도 못해봤다. 생각해보니 일부러 다 지워버렸는지도 모른다. 할머니와 함께 하던 시절. 온 가족이 모이던 호시절은, 이제는 영영 돌아오지 않을 테니까.
정신을 차리니 어느새 집 근처였다. 버스카드를 찍고 내려서 부지런히 걸었다. 하늘을 올려다보니 달이 핼쑥하다. 보름은 조금 남았나. 여전히 바쁘긴 하지만 이번 대보름 때에는 가득 찬 달을 한 번 구경해볼까 싶다. 또각또각, 땅콩을 한 번 까먹어 볼까. 잘그락 잘그락, 호두도 괜찮겠다. 스물여섯 번을 꼬박 깨물고 할머니한테 소원을 빌어야지. 2021년에도 나를 잘 부탁한다고. 집에 도착해서, 비밀번호를 누르고 문을 열었다. 이제 진짜 퇴근이다.
다녀왔습니다!
아주 오랜만에 집에 돌아온 기분이 든다.
웹진 취향껏에서 발행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