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짜를 대하는 자세

by cream

내가 대학을 다니던 90년대 말에는 한강을 기준으로 강남과 강북을 나누어 조롱하듯 서로의 패션을 비교하는 게 유행이었다.

서울 변두리 그 어디쯤에 살면서 강남이란 동네는 가 보적도 없었던 나는 이런 유행이 나와는 전혀 상관이 없다고 느꼈었다.

이런 내가 대학을 들어가서 우연찮게 강남 토박이들 무리에 끼게 되었다.

그리고 하체 비만이라는 내 체형을 정말 찰떡같이 커버해 주는 소위 강남스타일의 세미힙합에 야호를 외치며 강남이라는 동네에서 밥을 먹고, 닥터페퍼를 마시며 커피숍에 죽치고 앉아 있었다.


그리고 그때 명품이란 걸 처음 알게 되었다.

먹고살기 바빴던 우리 집, 엄마의 장롱에서는 구경조차 못해봤던 것들이었다.

그 당시 그걸 들고 다니는 친구들을 보면 드라마에 나오는 부잣집 딸들 같아 보여 부러웠다.

하지만 40대가 된 지금도 못 사는 고가의 명품가방을 대학생인 내가 살 수 있을 리가 없지 않은가.

빤닥빤닥 검정천에 삼각 은색 로고가 붙은 백팩도 갖고 싶었고 로고가 가방 전체에 마구 프린팅 되어 있던 가방도 갖고 싶었다.

그러던 차에 소위 짭퉁의 세계를 알게 되었다.

난 점원에게 미에로화이바를 건네받으며 A급이라 불리는 가방을 적지 않은 금액을 지불하고 샀었다.

이제는 나도 좀 있는 집 딸내미처럼 보일 수 있겠다는 철없는 생각을 하며 그 가방을 메고 나가 괜히 주변을 쓱 훑어보았다.


그렇다면 날 부잣집 딸처럼 보이게 해 줄 거라 믿었던 그 가짜 명품 가방을 난 잘 매고 다녔을까?

결론부터 말하면 노!이다.

아무도 너 이거 가짜지?라고 물어보지 않았고 내 가방에 관심조차 없었지만 난 그 가방을 들고나갈 때면 괜스레 움츠려 들었다.

아무도 관심두지 않았지만 모든 이가 다 내 가방만 보는 것 같았다.

결국 대리만족이라도 얻을 거라 생각했던 그 가짜는 타인의 시선을 의식한 내 마음 때문에 옷장 한구석에 처박히게 되었다. 남들 시선을 느끼고 싶어 샀지만 남들 시선에 부끄러워 처박아두고.

가짜는 진짜가 될 수 없었다.

진짜가 더 갖고 싶어 졌고 그 진짜를 갖지 못한 내 처지가 더 초라해지는 느낌이었다.

처음 그 가방을 샀을 때의 좋았던 그 기분은 눈곱만큼도 남아있지 않았다.


그 뒤로 나이가 들고 결혼하고 애들 키우고 살림하느라 내 물건 하나 선뜻 사지 못하고 많은 고민을 하게 되는 아줌마가 되었다.

하루하루 먹고살게 걱정되어 한숨 쉬는 살림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비싼 물건을 턱 하고 살만큼의 풍족하고 여유가 넘치는 살림살이도 아니다.

이젠 가짜냐 진짜냐가 아닌 그냥 내 물건 자체를 사는데 고민을 한다.

내가 생각했던 40대의 삶과는 동떨어진 삶이다.

하루를 마감하며 혼자 티브이를 보며 맥주 한잔 하는 게 유일한 낙인가 싶어 서글퍼지는 그런 40대가 되었다.

애들이 말을 안 들어서, 남편은 정말 남의 편이란 말이 딱 맞는 것 같아서, 갖가지 이유를 대고 맥주캔을 딴다.

그러면서 자꾸만 살이 찐다고 툴툴대며 살찐 모습에 또 스트레스를 받는다.

반복되는 그 모습이 너무도 싫다 느껴지는 어떤 날이었다.

난 빡빡한 삶에 소확행이라 믿었던 맥주 한 캔의 위로를 잠시 멀리하기로 하였고 내친김에 다이어트도 시작하였다.

다이어트는 꽤 성공적으로 진행되고 있었다.

그러던 차에 너무 더워 들어간 편의점 냉장고에서 무알콜 맥주를 발견하게 되었다.

이건 뭐지? 가짜 맥주라고?

이걸 마시면 분명 진짜 맥주가 더 먹고 싶어 질 텐데.

호기심에 난 그 가짜맥주를 사 왔다.


오랜만에 마신 맥주맛의 탄산음료로 표기된 무알콜 맥주는 생각보다 꽤나 만족스러웠다.

더운 여름날이어서 그랬는지 한동안 멀리했던 머리 깨지게 시원한 캬~하는 그 느낌이 그리웠던 것인지 가짜맥주는 완전 대만족이었다.

물론 진짜와 똑같은 그 맛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꽤 나이스한 가짜의 맛이었다.

가짜를 가지면 분명 진짜가 가지고 싶어질 줄 알았는데 이번에는 과거의 그 가방과 달리 난 가짜에 만족했다.

난 그 이후에도 시원한 맥주맛이 생각날 때, 하지만 벌게진 내 얼굴은 보기 싫을 때 종종 무알콜 맥주를 찾았다.

분명 가짜가 진짜가 될 수는 없다.

그래서 더욱 진짜를 가지고 싶어지고 못 갖는 그 아쉬움은 이루 말할 수 없다.

하지만 맘만 먹으면 아무 때나 진짜를 손에 넣을 수 있을 때의 상황은 다르다.

또한 내가 무엇을 사서 마시던지 간에 다른 이의 시선을 전혀 의식할 필요가 없으니

내 옆에 있는 가짜에 대한 가심비는 진짜 못지않았다.

20대의 그 가방은 나에게 초라함만 안겼지만 우연히 마신 무알콜 맥주는 지친 나에게 큰 위안이 되었다.

하지만 누군가 넌 그걸 왜 마시고 있니?라고 아는 척을 했다면 어땠을까?

나이 40넘은 아줌마가 맥주 없이는 못 사는 사람 같아 보일까 싶어 괜히 민망했을 것 같다.

너무 큰 비약인 걸까.

타인의 시선 안에서 가짜라고 의식하는 순간 그것은 초라함이 되어버리고 만족도는 바닥을 친다.




오랜만에 컴퓨터 앞에 앉아 뭐라도 쓰고 싶지만 도무지 뭘 써야 할지 모르겠는 오늘도 역시나 맥주맛의 탄산음료를 마시며 뭐라도 쓰고 싶어 아무거라도 써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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