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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원 Feb 04. 2017

모녀 4대


너도 나처럼 이가 하나도 없구나



엄마에게는 얼마간의 규칙이 있다. 3일간은 자식들을 알아보시고 과거로 돌아가 옛날 일을 비교적 소상히 기억하신다. 그러나 3일 밤낮을 깨어계신다는 것... 그런 후에는 온 하루를 꼬박 주무시고 난 후 이틀 동안은 자식을 몰라보는 일이 발생한다. 그래도 참으로 다행인 것은 그 정신없음에도 옷에 실수를 안 하시려 애를 쓰신다. 이제 4개월이 넘어가는 나의 손녀는 곧 배변하는 방법을 알게 될 것이고 엄마는 머지않아 배변하는 방법을 잊어버릴 것이다.  엄마가 무거운 몸을 일으켜 배변을 하려는 동작을 보이시면 우리는 응원과 독려를 아끼지 않는데 성공을 할 때는 뽀뽀세례를 퍼붓는다. 소변기가 가까이 있지만 엄마에겐 그 거리는 너무 멀게만 느껴져 그만 옷에 실수를 할 때도 있지만 말이다.           


30여 년 전, 휘영청 달이 밝던 가을밤에 창호지문을 뚫고 들어온 달을 등불 삼아 외할머니와 엄마와 나, 그리고 이제는 아이의 엄마가 된 큰딸 그렇게 모녀 4대가 나란히 누워 옛이야기와 어린아이가 살아갈 먼 미래에 대한 이야기로 밤을 새우던 때가 있었다. 세월은 빨리도 흘러 엄마는 이제 아기가 되셨고 나는 모녀 4대 나란히 한 방에 누울 수 있기를 간절히 소망했다.      


사람은 귀한 것이여          

엄마가 증손녀를 알아볼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오빠들과 얘기를 나누며 비교적 일정한 규칙을 보이시는 엄마를 아기와 만날 날짜를 계산해보며 좋은 정신이시길 바랐다. 

명절날 오후 엄마의 상태는 중간 정도... 여동생이 조카와 함께 키우던 강아지를 데리고 왔다. 엄마는 막내딸을 몰라보았지만 강아지를 보시자 눈을 반짝이며 얼마나 좋아하시던지 품에서 놓질 않으셨고 강아지 사료를 사야겠다고 용돈으로 받은 돈을 손에 꼭 쥐고 계셨다. 그런가 하면 조카에게 강아지를 키워서 새끼를 내어 주겠다고 욕심까지 부리시는 거다. 정말 흔치 않은 일이라 신기하기까지 했다. “엄마, 나와 강아지 중에 누가 더 예뻐?” 투정 부리듯 물어보니 (엄마의 눈에는 내가 아는 여자 정도일 것... ) “강아지와 사람을 비교해서 쓰가니? 사람은 귀한 것이여. 강아지 백 마리를 줘도 어찌 사람과 바꿀 수 있겠냐. 암만~!”      


그랬다. 엄마에게 사람은 정말 귀한 존재인 것이다. 우리는 엄마의 기억을 놓치지 않기 위해 번갈아가며 말을 시켰다. “엄마, 지선이가 딸 낳았다고 했지?! 내일 애기 데리고 올 거야. 애기가 강아지보다 더 예쁜데 그럼 아기 키워줄 거야?" 묻자 엄마는 “애기는 밥도 줘야 하고 기저귀도 갈아줘야 하고 손이 많이 들어가서 내가 못 키워” 한다. '강아지는 사료만 줘도 잘 크니까 강아지는 키울 만하다' 하시니 나는 그만 눈시울이 붉어진다. 그도 그럴 것이 엄마와 오늘같이 대화가 되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니다. 큰오빠는 엄마를 위해 MP3에 옛날 노래를 많이도 저장을 해놓아서 하루 종일 노래가 돌아간다. 그래서 노래는 잘 따라 하시지만 TV 시청은 불가능하다. 보기는 하지만 이해가 안 되기 때문인 데다 대부분의 대화가 옛날 기억을 반복해서 묻는 정도이니 현실 파악을 할 정도의 대화는 거의 기적에 가깝다.     


드디어 딸이 왔다. “엄마, 애기가 왔네. 엄마 손녀 지선이가 낳은 딸이야. 엄마한테는 증손녀가 되는 거야.” 나는 감격에 겨워 목이 메었고 딸에게서 손녀를 받아 엄마 품에 안겨 드렸다. 이제 막 낯가림을 시작한 손녀는 엄마를 보고 방긋 웃었는데 엄마는 증손녀를 보자  “너도 나처럼 이가 하나도 없구나.” 하시며 활짝 웃으셨다. 


 “엄마, 강아지하고 아기 하고 둘 중에서 누가 더 예뻐?”어제 한 말을 잊어버리셨을 것 같아 다시 물었는데 엄마는 비교할 바가 아니라는 표정을 지으시고는 “강아지는 강아지고 애기는 애기여~!” 나는 또 짓궂게 묻는다. “강아지가 애기보다 훨씬 예쁜데?” “애기는 사람이여, 사람은 귀한 것이제~!!” 엄마는 애를 보듬고 계시는 내내 증손녀의 얼굴에서 눈을 떼지 못하셨다.  당신의 핏줄인 줄 본능으로 느끼셨던 것일까... ㅠㅜ  딸과 사위가 돌아가고 난 후 엄마는 다시 온 하루를 깊이 잠드셨다.     

   


엄마는 보이지 않는 끈으로 우리 형제를 묶어놓으셨고 나와 내 딸과 손녀를 이 세상에 태어나게 하셨으니 그저 감사한 마음뿐... 가끔 “엄마는 아무것도 안 해도 돼. 빨래도 밥도 설거지도 아~~~~ 무 것도 안 해도 돼. 맛난 것 많이 드시고 화장실 가는 것만 잊지 마. 아셨죠?!” 이렇게 각인을 시키곤 하지만 언젠가는 이 모든 것을 까마득히 다 잊을 날이 올 것이다. 모든 생물체는 처음이 있으면 끝이 있으니, 너무 많은 욕심은 부리지 않기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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