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안해. 나는 나를 제대로 사랑한 적이 없었어.

치앙마이 골목길에 녹아 있는 사람과 사랑, 삶에 관한 이야기

by lovelyanna


알람 없이 눈을 뜬 지 이십 며칠째다. 몇 번의 주말을 보냈던가 떠올린다. 한국을 떠나온 시간을 세어보다 그만두기로 한다. 나는 지금 이곳에 멈춰서 있으니 그거면 충분하다.

치앙마이 님만해민 골목길
치앙마이 님만해민 골목길

호기롭게 세계여행을 외치며 회사를 멈추고 엄마 아빠를 등지고 배낭 하나 둘러메고 길을 나섰다. 180일간의 세계일주라는 그럴싸한 명칭을 붙였지만 실은 아무것도 자신이 없었다. 가보지 않은 나라는 나를 늘 설레게 만들었지만 동시에 겁도 났다. 스무몇 살 적에는 느끼지 못했던 종류의 감정인데 아마 나이와 비례한, 너무 많은 것들을 알아버린 뒤 자연스레 습득한 두려움의 종류라 생각했다.


호주와 뉴질랜드, 싱가포르를 거쳐 단 한 번도 관심 가지지 않았던 도시 치앙마이에 왔다. 그저 길고 긴 여행 중에 한 번은 들러서 주머니 사정 따지지 않고 쉼을 누리는 배낭여행자들의 도시. 단지 그 정도만 알고 있던 나라 태국 그리고 치앙마이. 이곳에서 나는, 나를 사랑하지 않은 나를 발견했다. 꽤 놀랍고 슬펐던, 그래서 제대로 나에게 용서를 구한 시간. 이곳, 치앙마이가 내게 사랑의 도시인 이유다.

치앙마이 올드타운 어느 골목길에서 만난 갤러리
치앙마이 예술인의 마을 반캉왓 스튜디오

나는 언제나 어제를 곱씹으며 살았다. 잘 해내지 못한 일들은 절대 용서되지 않았고 잘 해낸 일들은 쉬이 잊었다. 뭐든 잘하고 싶었다. 뭐라도 실패하고 싶지 않았다. 강한 자만이 살아남는 나의 사회에서 약자가 되고 싶지 않았으니깐. 스스로 용납하지 못하는 상황과 일들은 너무 많았고 후회와 체념을 반복하며 일상을 곱씹고 뱉어내는 동안 나는 삶의 쓴 맛에 익숙해졌다. 산다는 것은 원래 괴로운 거니깐. 적당한 자기반성과 괴로움쯤은 견뎌야 더 괜찮은 사람, 더 괜찮은 삶을 살아갈 수 있는 거니깐.


그 시간은 나를 성장시켰지만 행복하지 않았다. 만족이 없는 시간은 괴로웠고 채찍질을 스스로 멈추지 못하는 나는 늘 아팠다. 열심히 살고 있다는 자기 합리화에 갇혀 삶을 대충 사는 것 같아 보이는 사람들을 비하하고 업신여겼다. 살아가는 방식의 절대 기준은 없다 말하면서 그들을 이해한다 말만 하면서. 절대 이해되지 않았다.


그런 내게 삶을 일시멈춤 하고 아무것도 해야 하는 일이 없는 낯선 땅에서의 일상이 주어졌다. 타의 보다는 자의 였지만 상상조차 하지 않았던 시간. 가만히 앉아서 나의 삶을, 지나온 시절을 생각했다. 시간이 멈춘 도시 치앙마이를 침묵으로 걷자 골목이 내게 말을 걸었다.

치앙마이 올드타운 골목길 동네 카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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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앙마이 올드타운 골목길 풍경
치앙마이 올드타운 골목길에서 만난 길 냐옹이

내 마음에 귀 기울였다. 열심을 다해 살아온 시간을 떠올렸다. 삶의 이유를 스스로 물었고 모든 시간들이 진짜 내 행복의 근원인지 자문했다. 타인의 시선과 평가로부터의 자유함은 꽤 오래 누렸지만, 나는 나를 진짜 사랑하는 법을 몰랐다.


꼭 그렇게 살지 않아도 괜찮다는 말이 필요했다. 잘 못하는 일도 잘하는 일도 우리가 살아가는데 모두 필요하다고. 사람은 완벽할 수 없다는 사실을 타인을 위해서가 아니라 나 자신을 위해 해주어야 했다. 누군가를 위로하고 안아주는 역할에 책임감을 느껴온 시간만큼, 나를 더 많이 안아주어야 했다.


과거를 후회하고 눈물짓는 내게, 그럴 수도 있다고 산다는 건 다 그런 거라고 충분히 괜찮다고 말해주었어야 했지만 나는 그러지 못했다. 더 욕심을 내어 앞만 보고 달리는 나에게, 조금 멈춘다고 세상이 뒤집어지는 것은 아니라고 삶의 긴 호흡을 다듬는 방법을 배워야 한다고 누군가는 말해주었으면 했다.


내 마음을 들어 살펴보다가 안쓰러움에 코끝이 시큰거렸다. 자기 연민에 빠지는 것조차 경계하던 나였다. 그것조차 미안했다. 잘 버티고 잘 살아온 시간들이 고맙고 대견스러웠다.

치앙마이 님만해민 laboratory hotel & across the universe cafe
치앙마이 올드타운 GRAPH cafe
치앙마이 올드타운 GRAPH cafe
치앙마이 올드타운 GRAPH cafe

치앙마이. 네 번째 나라에서 나는 어제의 모든 시간이 추억이 되는 이방인의 삶을 살고 있다. 내게 더 이상 쓰게 뱉어낼 과거라는 일상은 없다. 매일 매 순간은 내게 돌아올 수 없는 가장 최고의 날이고 나는 그 시간들에 멈춰 서서 나를 듣는다.

이 여행은 계속될테고 나는 주어진 저마다의 날들에 마음을 다할 것이다. 그러하지 않아도 괜찮고 그러해도 괜찮다. 단지 떠나 온 것뿐인데, 나는 내게 충분히 너그럽고 기꺼이 사랑스러워졌다. 고맙고 사랑스러운 나를 더 많이 사랑하는 날들을 계속 이어갈 것이다.



2018 07_ 태국 치앙마이 이름 모를 시골 동네를 거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