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스트레일리아, 청춘을 던지기에 어쩌면 매우 충분한
오스트레일리아. 이 낯선 땅에서 나는 너를 떠올린다. 나도 처음인, 너는 와본 적도 없는(아마도) 이 곳에서 네가 생각난다니 놀라운 일이다. 창밖을 지나쳐가는 광활한 들판을 바라보며 눈을 감았다 뜨기를 반복하니 그곳에 네가 서 있다.
서른 살이 시작되기 한참 전이니 난 여전히 어렸을 테고 너도 그랬을 터. 우린 얼마나 많은 시간을 서로 모른 척 지냈는지 아직도 모른다. 내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네가 무엇을 꿈꾸는지 우리는 알지 못했다.
지금 떠올려보면 어설픈 네가 나의 위로가 되었고 불안한 내가 너의 안도가 되었던 것뿐. 그저 온통 버겁고 어려운 세상에서 연약한 외다리로 서로를 지탱하며 서 있었던 것 그뿐이다.
그때, 머나먼 나라 오스트리아인지 오스트레일리아인지 지구 어디에 있는지도 알 수 없는 어려운 이름의 어느 나라에 영영 살러갔다는 네 친구가 있었다. 워킹과 놀이를 배우러 갔다가 눌러앉겠다는 호기를 부려 친구 엄마가 눈물의 호소를 했다는 외아들 친구 이야기를 전하며 너는, 한국을 떠나 살고 싶어 하는 삶을 이해할 수 없다 말했다.
어렴풋한 기억 속에 선명하게 내게 남아 있는 건, 이해할 수 없다고 말하며 고개를 갸우뚱거리던 네 표정. 아 그래 그래서였나. 처음 와 본 이 나라에서 네가 생각난 이유. 실은 우리는 그 어떤 무엇의 관계도 아니었으므로 나는 너를 비난도 설득도 하지 않았지만, 조금 위험하게 살아도 괜찮을 것 같다는 말로 대화를 마무리 지었던 것 같다.
내가 어떤 모습으로 사는지 네가 어디서 어떻게 살고 있는지 우리는 여전히 모른다. 나는 네게 그 친구가(어쩌면 아직) 살고 있을지 모를 이곳이, 참 멋지고 놀랍고 어마어마한 세계라는 사실을 그저 알려주고 싶었던 것 같다.
너와 네 친구들이 걱정하던 외아들 친구는 아마 아주 멋진 어른이 되어 살아가고 있을 것이다. 스무몇 살 즈음에 이 멋진 세상을 가슴에 담았다면 분명 그러할 것이다. 그때 우리는 타인의 미래가 아닌 우리 각자의 서른다섯을 고민했어야 했다. 오스트레일리아는 그의 뜨거운 젊음을 던지기에 충분한, 곳이니깐.
그때의 우리는 생의 유한함이 와 닿지 않던 너무나 젊고 젊은 시절이었으므로. 타인의 삶을 안타까워할 시간이 없다는 걸 몰랐다. 조금 더 당돌하고 위험하게 살아도 충분히 괜찮은 때, 라는 걸 우리는 알 수 없었다.
네 친구가 (어쩌면) 살고 있는 이곳은 세상을 품고 사람을 배우고 사랑을 알아가기에 더없이 좋은 나라였다. 우리 세월을 아끼자. 언제쯤 어디에서 마주치더라도 멋들어진 우리의 서른다섯을 서로 대견스러워해 주기로 하자. 굿 럭.
2018 07_ 오스트레일리아 멜버른 어느 카페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