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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ovelyanna Jan 22. 2019

완전히 불완전한, 나의 로맨틱 로마

삶은 바로 여기, 지금


세계지도가 머릿속에 도통 그려지지 않던 나였다. 서른다섯 해를 살면서 지금껏 유럽여행을 욕심내지 않았던 이유도 그곳이 얼마나 먼지, 얼마나 오랜 시간을 돌고 돌아가야 하는지 도통 몰라 관심 영역 밖의 땅덩어리였던 까닭이었다. 누군가의 로망이라 할지라도 내겐 그저 멀고 복잡하고 어려운 나라, 그리하여 가고 싶다는 생각을 감히 해본 적 없는 대륙 그게 전부였다.

 


여행을 결심하고 세계 지도를 처음 펼쳐 들었을 때의 난감함을 아직 기억한다. 가야 할 나라들을 꼽으려는데 이 나라가 왜 이 대륙에 있는지, 이 도시는 어느 나라에 있는지, 나는 지금 지구본 어디에서 출발해 어디로 향해가는지 아무것도 알 수 없던 그 난감함과 비공감각. 무서웠다. 여기가 어딘지 이제부터 어디로 가야 하는지 어떤 방법으로 거기로 가는지 모르고 딛는 걸음은 내게 상상할 수 없는 두려움이었다.


확실하지 않으면 움직일 수 없었다. 될 대로 되라며 내버려두는 건 직무유기 같아 용납되지 않았다. 나는 그런 사람이었다. 눈 감고 어둠 속을 더듬어 걷는 기분을 180일의 시간 동안 감당할 수 있을까. 감히 해낼 수 없는 일을 덜컥 저지른 것만 같았다. 앞으로 내게 펼쳐질 날들을 이렇게 불확실함 가운데 살아야 한다는 사실이 무겁게 다가왔다. 그랬다 세계지도를 처음 들여다본 날, 여행 떠나기 30일 전.



첫 여행지는 그래서 매일이 긴장의 연속이었다. 타인의 발자취와 가는 법, 하는 법, 맛 집, 멋 집의 정보를 모두 수집해야 했다. 그것만으로 충분히 버거웠고 숙제를 해치우듯 여행지를 스쳐갔다. 한 달, 두 달 백일 즈음의 날들이 지나자 나는 진짜 여행자로 여행지를, 이 여행이라 부르는 일상을 온전히 즐기는 게 어떤 것인지 깨달았다.



지도를 펼쳐 이름이 마음에 드는 도시를 검지 손가락으로 꾹 짚어본다. 여기 갈래. 어디지 여기는. 도시 이름이 너무 예쁘다 여기 가자. 맘에 드는 사진 한 장을 보고 머물다 갈 도시를 정한다. 며칠이 될지 모를 일이다. 가고 싶다 여기. 언제 떠날지 얼마나 있을지 다음은 어느 나라 어떤 도시로 갈지 아무도 누구도 모르는 시간을 산다.



나는 철저하게 계산적인 사람이라 계획 없이 걸음을 떼는 것은 내 생에서는 불가능하다 여겼다. 직관적으로 직감적으로 그저 되는대로 살다가는 생이 망해버리거나 내 명대로 살지 못하는 큰일이 나는 줄만 알았다. 그런데 내일을 알 수 없는 오늘을 살고 보니 삶은 바로 거기 있었다. 불안정이 주는 두근거림은 나를 더 살게 했고, 결국 완전히 불완전한 생이야말로 그 어느 시절보다 완벽한 날들이었다. 나는 매일 뜨겁게 최선을 다해 떠오르는 태양을 마주하며 서 있다. 오늘이 어디서 언제 끝날지는 누구도 모를 일이다.



2018 10_ 완전히 불완전한 생의 순간 in RO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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