럭셔리 레스토랑에서 도망치다 세 번 붙잡히다

파인 다이닝이라는 이름의 고문

by 아테냥이

꿈결 같던 핑크빛 노을이 바다 너머로 완전히 몸을 감춘 오후 6시. 섬에는 농도 짙은 적도의 어둠이 내려앉았다. 우리는 담당버틀러가 미리 예약해 둔 레스토랑으로 향했다. 매일 다른 파인 레스토랑이어서 단 하루도 거를 수 없었다.


비단결 같은 모래를 밟으며 파인 다이닝으로 향하는 발걸음은 우아해야 했지만, 실상은 비틀거리며 졸음을 참고 있었다. 해가 완전히 지자 우리에게는 '시차'라는 참기 힘든 현실이 닥쳐왔다. 몰디브의 저녁 7시는 한국의 밤 11시. 평소라면 남편은 이미 깊은 수면의 늪에 빠져 있을 시간이었고 나도 누워 자볼까 싶은 시간이었다.



밝은 빛이 가득한 한국의 밤과는 달리 몰디브는 해가지자 사방이 깜깜했다. 그러니 체감상 더 늦은 밤 같아 졸려왔다. 우리는 리조트 내 파인 다이닝 레스토랑에서 졸음과 처절한 사투를 벌여야 했다.





첫 번째 검거


레스토랑의 은은한 조명은 로맨틱한 조도가 아니라, 의식을 흐릿하게 만드는 강력한 수면제였다. 촛불의 일렁임은 자장가가 되어 눈꺼풀을 무겁게 내리눌렀다.


메인 요리를 입에 밀어 넣듯 먹자마자 사진도 찍었고 배도 이미 채웠으니 됐다 싶었다. 30분도 채 안되어 우리는 약속이라도 한 듯 탈출을 감행했다.


하지만 입구를 향해 도망치듯 걷던 그때,

우리 테이블 담당 직원이 정색을 하며 손가락을 휘저으며 우리를 불러 세웠다.


싯다운! 싯다운!

얘기를 들어보니 아직 다음 코스가 남았다는 것이다. 우리는 선생님께 붙잡힌 죄지은 아이들처럼 다시 자리로 조용히 끌려가 앉았다. 그래도 싯다운이라니 아무리 영어를 서로 잘 못한다지만 무례한 느낌이다; (졸린 와중에.. 이렇게 생각함)






두 번째 검거


다시 시작된 포크질은 이미 식사가 아니었다.

우리는 꿈속에서 나른한 기운을 뽐내며 서서히 졸며 먹고 있었다. 테이블 조명 앞은 바다라 아무것도 보이지 않고 다른 테이블들과도 거리가 멀어 어둠 속에 우리만 갇혀 있는 느낌이었다.


접시를 비웠다! 이번에야말로 끝이라 확신하고 다시 슬그머니 일어났다. 재빠르게 주위를 확인하고 우리 둘은 빠르게 입구 쪽으로 향했고 카운터 쪽을 지나려는 찰나였다. 순간! 아까 그 직원이 마치 우리 머리 위에 GPS라도 단 듯 나타났다.


싯다운!


또한번의 외침이 들렸다.

'왜 자꾸 우리에게 명령하는 거야'라고 생각만 했다.


"잠시만요! 디저트 드셔야죠!" 그녀의 친절은 집요했고, 우리의 졸음은 절박했다. 우리는 다시 자리에 앉아 아이스크림을 입에 넣었다. 달콤했던가? 기억나지 않는다. 그저 이 차가운 기운이 뇌 속의 수면 센서를 잠시라도 마비시켜 주길 바랄 뿐이었다.




세 번째 검거


아이스크림도 빠르게 다 먹었다. 이제 정말 끝났다 싶어 일어났다. 어차피 또 잡힐 거 같아 이번에는 카운터 앞을 일부러 서성거렸다.


그녀가 나타나지 않았다.


'좋아 그럼, 가볼까?' 남편과 눈빛을 주고받으며 슬그머니 가게를 거의 빠져나가고 있었는데, 또 붙잡혔다.

'아, 정말 이번에는 또 왜!' 울고 싶은 심정이었다.

올인클루시브라 할지라도 우리가 먹은 것이 '0원'이라는 사실을 증명하는 빌즈(Bills)에 사인을 해야만 비로소 자유의 몸이 될 수 있었던 것이다.


그곳을 나가는 통행증은 단호했다.

숫자 '0'이 적힌 종이 위에 휘갈긴 서명은, 우리가 이 럭셔리한 해병대 졸음훈련 코스 같은 레스토랑에서 합법적으로 석방되었음을 알리는 마지막 절차였다.






결국 세 번의 탈출 시도 끝에 영수증에 사인을 마친 우리는 드디어 '천국의 구속'에서 풀려나 숙소로 돌아올 수 있었다. 럭셔리 레스토랑에서 도망치다 붙잡히는 부부라니... 남들은 1분이라도 더 머물지 못해 안달이라는데, 마흔의 우리는 그 황홀한 어둠이 무서워 도망치기에 바빴다.


하지만 빌라로 돌아오는 길, 밤의 몰디브는 우리에게 생각지 못한 마지막 선물을 건넸다. 데크 아래 조명 불빛이 닿는 투명한 물속에는 베이비 샤크들이 마치 밤의 축제를 즐기듯 활기차게 유영하고 있었고, 고개를 들자 쏟아질 듯 내려앉은 몰디브의 별들이 은하수처럼 흐르고 있었다. 졸음조차 잠시 잊게 만드는 그 비현실적인 아름다움 앞에서 우리는 잠시 멈춰 섰다.


자, 이제 정말 아무것도 하지 않을 완벽한 자유가 시작되는 걸까? 아니, 아직 저녁 8시다.

'아름다운 극기훈련' 공식일정이 한 발 남았다.


Whisk_69242b79ee6aa0fbd84449aea17a415fdr.jpeg 몰디브 밤하늘 AI활용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비싼 코스 요리를 앞에 두고 "제발 그냥 보내달라"고 속으로 외치던 그 밤을 떠올리면 지금도 웃음이 납니다.

자본주의가 선물한 풍요도 마흔의 생체 시계 앞에서는 무력해 지고 말았습니다.

다음 화에서는 몰디브의 파티편이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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