몰디브 럭셔리 크루즈보다 오래 남은 한 순간

가장 값비싼 장소

by 아테냥이

(앞 에피소드와 이어집니다.)



이제, 우리 좀 쉬자..


몰디브의 오후 네시. 야외 스낵바에서 갓 튀겨낸 치킨과 칵테일로 위장은 이미 버거운 상태였다. 그런데도 우리는 멈추지 않고 먹었다. 눈앞에 펼쳐진 몰디브의 소다색 바다가 신기하게도 배부름을 행복감으로 둔갑시켰다. 마치 그 비현실적인 풍경이 천연 소화제라도 되는 것처럼.


숙제하듯 만족스럽게 스낵바를 즐기고 나니, 마흔의 내 몸은 이제 정말 숙소로 돌아가 쉬고 싶어 했다.

하지만 우리는 끝내 숙소로 돌아갈 수 없었다.

아니, 정확히는 '돌아가면 안 됐다.'


몰디브가 부리는 마법의 절정, '골든아워'가 다가오고 있었기 때문이다.

매일 오후 5시부터 해가 수평선의 입술에 닿는 6시까지, 딱 한 시간. 하늘이 핑크빛 물감을 쏟아붓는 해피아워가 되면 섬의 모든 커플은 약속이라도 한 듯 해변으로 모여들었다.






인피니티 풀 벤치에 기대앉아 수평선과 눈높이를 맞추는 이들, 모래사장 위 푹신한 소파에 몸을 파묻은 이들, 혹은 해변의 해먹에 누워 느릿하게 흔들리는 이들까지. 저마다의 방식으로 그들은 신이 공평하게 나누어주는 하루의 마지막 선물에 취해 있었다.


여보, 크루즈 예약한 사람들 모이래.


우리는 허니문 특전으로 제공된 하얀 선셋크루즈에 몸을 실었다. 뭍에서 보는 석양도 아름답지만, 바다 한가운데로 들어가 해를 배웅하는 것은 차원이 다른 경험일 거라 생각해 몰디브 신혼여행 일정 중 가장 기대한 것 중 하나였다.


배가 부두를 벗어나 수평선을 향해 미끄러지듯 나아갔다. 엔진 소리가 잦아들고 오직 파도 소리만 남은 갑판 위 올랐다. 그곳에 빼곡히 놓인 빈백 소파에 커플들이 옹기종기 모여 앉으니, 마치 바다 위에서 열리는 작은 커플 파티에 초대받은 기분이었다.



승무원들은 흔들리는 배 위에서 익숙한 몸짓으로 과일 꼬치와 주스를 건넸다. 요트는 셀카를 찍기에 가장 완벽한 각도를 찾아 거대한 몸집을 돌렸고, 어느 곳을 바라봐도 그곳은 인생의 화양연화(花樣年華)가 담기는 프레임이 되었다.


사진 찍으시겠어요?


친절한 승무원들이 능숙하게 커플 사진을 찍어주었다. 분명 환상적인 순간이었는데, 마음 한구석에는 묘한 갈증이 남았다. 모든 프레임 속에 너무 많은 타인의 로맨스가 섞여 있어서였을까, 아니면 패키지 코스를 완수하듯 바삐 움직이는 우리의 일정 때문이었을까?


그렇게 남은갈증을 해결하지 못하고, 공허한 발걸음으로 섬을 배회하던 그때

우리가 발견한 몰디브 일몰의 정점은 화려한 크루즈 위가 아니란걸 알게됐다.


그것은 해변 가장자리, 사람들의 발길이 뜸한 곳에 조용히 매달려 있던 거대한 해먹 위였다.







시간을 거슬러 몰디브에 도착한 첫날 저녁이었다.

남편과 저녁에 리조트 구경을 할 겸, 해변을 산책하고 있었다.


"저기 봐봐."

남편이 해변 끝자락을 가리켰다.


사람들이 북적이는 메인 해변에서 조금 떨어진, 야자수 숲 사이로 난 오솔길 끝. 그곳에 커다란 해먹 하나가 뜬금없이 매달려 있었다.


"뭐지? 가보자."

우리는 마치 보물찾기 쪽지의 끝부분을 발견한 아이처럼 설레는 마음으로 그곳을 향해 걸어갔다.

해먹은 예상보다 훨씬 컸다. 보통의 1인용 해먹이 아니라, 두 명의 성인을 넉넉히 품어주는 오직 연인들만을 위한 요람 같았다.



"진짜 누워도 돼?"

"당연하지, 여기도 리조트 안이잖아."

조심성이 많은 남편대신, 내가 먼저 올라갔다. 해먹이 크게 흔들렸지만 금세 균형을 잡았다. 남편도 조심스럽게 옆에 누웠다. 그리고 남편의 어깨에 머리를 기댔다.


우리는 그 그물망 위에 함께 누워 몸을 맡겼다. 세상의 소음은 파도 소리에 씻겨 내려갔고, 남편이 핸드폰을 꺼내 우리가 좋아하는 팝송을 틀었다. 작은 스피커에서 흘러나온 음악은 파도 소리와 뒤섞여 세상에서 그 순간 가장 로맨틱한 배경음악이 되었다.


우리 둘만 들릴 정도로 작게 튼 잔잔한 음악이 몰디브 해변의 공기 중에 섞여 들었다.



그때 몰디브의 하늘이 자줏빛으로 타올랐다.

구름을 뚫고 수평선 너머로 태양이 천천히 가라앉았다. 마치 마흔의 우리에게 충분한 시간을 주려는 듯.

바다와 하늘 사이에 걸린 그물에 누워 태양이 느릿하게 퇴근하는 장면을 바라보았다.


이곳에는 먹을 것을 주는 승무원도, 카메라를 들고 포즈를 요구하는 이도, 셀카를 찍으라고 크루즈를 돌려주는 친절함도 없었다.

단지 우리 둘만 있었다.


"자기야, 이게 제일 좋은 것 같아."

남편이 내 손을 꼭 쥐었다. 나는 대답 대신 그 손을 더 세게 쥐었다.

해먹의 미세한 흔들림, 바람이 야자수 잎을 스치는 소리, 파도가 모래를 쓸고 가는 소리, 그리고 우리의 규칙적인 호흡 소리. 그것이 전부였다.


그랬다, 우리가 몰디브에서 찾던 것은 화려한 크루즈가 아니라 그저 이런 고요였다.

서로의 온기를 느끼며 같은 하늘과 야자수를 보고, 같은 음악을 듣는 그 단순하고도 완전한 시간.


우연히 발견한 그 명당은 아쉽게도 딱 한 번 뿐이었다.

그 이후로는 늘 발 빠른 이들의 '낭만 사수'로 인해 빈틈이 없었다.

단 한 번의 기회였기에 그날의 노을은 더욱 애틋하고 눈부셨다.


모든 순간을 소유할 순 없다는 것.

하지만 단 한 번의 순간도 영원히 기억될 수 있다는 것.

몰디브는 그렇게, 마흔에 낭만을 찾아온 우리에게 가냘프게 속삭이고 있었다.





sticker sticker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화려한 요트 위에서 샴페인 잔을 기울이는 순간보다 우연히 발견한 해먹 위에서 남편의 어깨에 기대어 들었던 낡은 팝송 한 곡이 더 선명하게 기억납니다.

몰디브의 노을은 누구에게나 공평하지만, 그 노을을 담는 마음의 온도는 제각각인 것 같습니다.


다음화에서는 몰디브 리조트의 레스토랑에서 겪은 처절한 사투 에피소드가 이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