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루할 틈 없는 몰디브 극기훈련

뽕 뽑는 민족의 비애

by 아테냥이
'이상하다, 왜 삭신이 쑤시지?'


남편은 옆에서 세상모르고 잠들어 있는데, 나는 용수철처럼 튀어 일어났다. 알람이 울린 것도 아니었고 누군가 흔들어 깨운 것도 아니었다. 나를 일으켜 세운건 '리조트의 숙박비'였다. 1박에 얼마짜리 리조트인데 잠이 오냐고, 그 비싼 시간에 눈을 감고 있을 거냐며 자본주의가 내 등짝을 스매싱하는 기분이었다.


'그래, 본전은 뽑아야지. 떠오르는 해라도 찍자.'


비치빌라 앞 해돋이

나는 천근만근 무거운 눈꺼풀을 비비며 객실과 이어진 해변으로 느적느적 걸어 나갔다. 몰디브의 투명한 물살 아래엔 나보다 부지런한 생명들이 있었다. 얕은 물가를 배회하는 베이비 샤크와 은비늘을 반짝이며 군무를 추는 물고기들. 그 비현실적인 평화로움을 마주하고서야 비로소 실감이 났다.


'아, 나 진짜 몰디브에 와 있구나.'


사방은 찰박거리는 물소리 외엔 완벽한 고요 속에 잠겨 있었다. 이 거대한 섬에서 오직 나만 깨어 있는 듯했다. 그런데 참 이상한 일이다. 분명 '지상 낙원'에 도착했는데, 남들은 몰디브가 할 게 없어 지루하다던데, 대체 왜 나는 단 1분도 쉴 수가 없는 걸까.



곰곰이 생각해 보니 답은 간단했다. 우리는 '배달의 민족'이기 이전에 '뽕을 뽑는 민족'이 아니던가. 천만원이 넘는 거금을 들여 당도한 이 적도의 섬에서, 게다가 평생 다시 못 올 것이 명백한 이 섬에서 1분 1초라도 허투루 흘려보내는 것은 명백한 직무 유기였다. 그리하여 우리의 신혼여행은 낭만적인 휴양을 넘어, 치열하고 성스러운 극기훈련으로 변모하고 말았다. 물론 우리의 체력의 한계까지만.


조식뷔페 뷰


시차로 한국은 벌써 아침 10시가 넘었을 것이다. 허기가 밀려왔다. 남편을 깨워 얼른 조식 뷔페로 진격했다. 갓 구운 페이스트리와 주문 즉시 맞춤식으로 만들어주는 오믈렛, 총천연색 열대과일들. 배가 고프기도 했지만 한 끼에 얼마나 비싼가 생각하며 가득 먹었다.


우리는 의무감으로 접시를 채우고 사명감으로 위장을 채웠다. 몰디브의 본전 하면 생각나는게 모히또 아니겠는가. 하지만 오전에 술은 팔지 않는다. 논알코올도 마찬가지다. 이번에 안 사실은, 몰디브는 이슬람국가라서 관광객에게만 특별허가로 음주가 가능한 것이고 오전에는 먹을 수 없다.


개인 스노클링 장비


식후 커피의 여유? 그런 건 사치다. 해가 중천에 떠서 살갗이 익어버리기 전에 바다로 나가야 했다. 전신을 감싸는 래시가드로 무장하고 구명조끼를 입고 오리발을 꽉 조여 맸다. 스노쿨링은 겉보기엔 우아한 유영 같지만, 실상은 파도와의 처절한 레슬링이었다.


니모와 거북이를 보겠다는 집념 하나로 숨을 참고 오리발을 차댈 때마다, 평소 운동 부족이었던 종아리 근육은 비명을 질렀다. 그러나 물속 세상의 황홀함에 취해 통증조차 잊고 말았다.


그게 화근이었다. 형형색색의 물고기떼에 정신이 팔려 거리조절에 실패한 것이다. 날카로운 산호초에 팔다리를 긁히고 짠 바닷물이 상처에 스미는 쓰라림을 느끼고서야 정신이 번쩍 들었다. 결말은 안타깝게도 둘 다 다리와 팔에 방수밴드를 덕지덕지 붙인 부상자 커플이 되고 말았다.


물 밖으로 나와 빌라로 와서 소금기를 씻어내자마자 점심 뷔페 시간이 도래했다. "여보, 점심엔 랍스터가 무제한이래." 그 말 한마디에 뇌의 포만감 중추가 마비되었다. 이것은 식사가 아니라 자본주의가 제공하는 달콤한 사육이었다.



오후가 되면 좀 쉴 수 있을까? 천만의 말씀.


허니문 특전 일정들이 촘촘한 그물처럼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몰디브바다 위에서 커플 마사지를 받으며 잠시 노곤해지려는 찰나, 웨딩 스냅 촬영 시간이 다가왔다. 작가의 지시에 따라 너무 뜨거운 모래밭을 구르고, 서로를 그윽하게 (사실은 더위에 지쳐 흐릿하게) 바라보고 남편이 나를 들어 올리며 인생샷을 남겼다.

사진 속 우리는 세상에서 가장 행복해 보였지만 프레임 밖의 우리는 땀범벅에 팔다리는 후들거리고 있었다.




이제, 우리 좀 쉬자..


방으로 돌아가는 길, 악마의 유혹이 우리에게 우습다는 듯 가볍게 이리오라 손짓했다.

우리가 도착한 곳은 '올인클루시브 스낵바'였다. 치킨, 햄버거, 감자튀김, 그리고 다양한 커피와 칵테일들이 무제한인 곳이다.


"아, 첫날 스낵바를 깜빡하다니!"

남편은 도착 첫날 이곳의 존재를 깜빡했다는 사실을 마치 천추의 한처럼 지금도 곱씹고 있다.


나의 체력과 위장은 항복을 선언했지만 내 손은 이미 자석에 이끌리듯 갓 튀긴 치킨 윙을 집어 들고 있었다. 포기라니, 그것은 '뽕을 뽑는 민족'인 한국인의 도리가 아니었으니까.


이제 오후 4시 . . 이미 너무 지쳤고 쉬고싶다. 근데 쉴 수가 없다.

누가 몰디브를 지루하다고 했던가. 할 게 없어서 심심하다는 말은 새빨간 거짓말이었다.

이곳은 천국을 가장한, 세상에서 가장 아름답고 배부른 극기훈련소였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오후 4시 이후부터는, 다음화에 계속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