답신 3

봄밤에 쓰는 답장

by 남몰래

밤의 밤. 하루가 마무리되고 편지함을 열어볼 수 있는 이 시간을 기다렸어요.

차분히 답장을 쓸 수 있을 때 편지를 열어보고 싶었거든요. 열어둔 편지를 혼자 두고 싶진 않아요.

당신에게 편지를 받다니. 요즘 저는 손가락 일으킬 힘도 없는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지만 밤새 답장을 쓸 수 있을 것 같은 기운이 솟아요. 새벽의 새벽에 편지를 써주어서 고마워요: )


새벽의 새벽에. 편지를 쓰게 되는 마음을 떠올려봅니다.

마감의 마감에 마음은 쫒기고 몸은 무척 피곤했을 거예요. 그래도 의미 없는 일로 이 시간을 마무리하고 싶진 않습니다. 바쁘게 살면서도 종종 떠오르는 마음을 어딘가에 내보이고 싶었을 지도 몰라요. 답도 없는 이야기지만 그냥 주절주절 하고 싶은 밤도 있으니까요. 작은 일 하나도 소홀히 하지 않는 당신에게 이 시간은 얼마나 흔한 것일까 생각하니 안쓰럽고 마음이 아팠어요.


그러다 '다시 여름 광주'란 말에 그 여름밤 바람 냄새를 떠올립니다. 술에 취해 돌아오던 뒷모습을 당신이 담아줬잖아요. 잊을 수 없지요. 추억할 그 밤. 그때가 우리 처음이어서 그랬는지 그 이후에도 여름, 겨울이 있었지만 그때만큼 풋풋하고 설렜던 때는 없었어요. 다녀오고 나서도 마음이 가라앉지 않아 톡방에 여러번 노래를 보냈던 기억이 나요. 그때 우리들은 다시 생각해도 참 귀여워요. 그립고 아련해요. 그 사이 낡고 지쳤다고 느끼나요? 당신의 문장을 읽고 나니 저도 그런 기분이 드네요. 더 많은 일들을 이뤘고, 이루고 있는데 어쩐지 그때만큼 싱그럽지 못한 느낌입니다. 뭐든 더 배우고 싶어 한동안 정신없이 다녔어요. 좋은 사람들을 만나고 사랑에 빠지고 그들과 뭐든 함께 하고 싶고. 그러면서도 마음이 늘 바빴어요. 더 잘해야 한다는 생각, 어울리는 사람이 되고 싶다는 소망, 무엇으로든 나를 증명해야 한다는 조바심. 요즘 저는 좀 더 고요해지고 싶단 생각을 해요. 내가 나로 충분한 시간을 내가 내게 주고 싶다 생각해요. 너무 멋진 사람들 안에서 너무 자주 황홀하고 너무 자주 정신을 잃고 그러면서 종종 내 마음을 잃기도 했거든요.


그때의 우리가 상상할 수 있는 가장 멋진 모습으로 성장한 OO. 저는 당신을 볼때마다 참 놀라워요. 본인의 열정에 충실하며서도 주변을 하나하나 살피는 그 마음의 품은 대체 얼마나 넓어야 가능한 일일까, 하고요. 때로는 주제 넘은 걱정을 하기도 합니다. 아직 그렇게 넓지 않아도 되는데. 좀 더 자기 생각만해도 되는데 두루두루 살피는 당신이 힘들지는 않을까 하는 생각.


열정 하나만으로 정신없이 해냈던 일들은 우리 어딘가에 남아 있어요. 그게 언제 어떤 모습으로 드러날지는 아무도 알 수 없겠지만. 분명한 건 의미없는 시간은 없다는 사실이에요. 그건 앞선 우리의 과거가 증명하는 일이잖아요. 당신의 모든 시간이 지금의 당신이 되었듯. 저 역시 그런 마음으로 지난 시간의 분주함을 긍정하기로 합니다. 저는 요즘 학교 일을 열심히 해야겠단 생각을 해요. 뜬구름 잡는 마음 말고, 지금 내 앞에 이 일과 공간에 충실하겠다는 생각. 그게 비록 지긋지긋한 생활뿐인 것들이라도 그걸 첫번째로 삼으려 합니다. 생활을 단단하게 해나가다보면 제가 동경하고 사랑하는 일들도 조금씩 실천할 기회가 있지 않을까 생각해요. 단순하고 정직하게 하루하루를 살고 싶어요. 누구에게도 증명할 필요없는 나만의 작은 기쁨. 오직 그런 것에만 집중하고 싶어요.


사랑이 많다는 얘기가 저는 좀 부끄러워요. 사랑이 필요한 사람이라 사랑을 구하는 것 뿐인걸요.

제가 원하는 사랑을 상대에게 줍니다. 못 돌려받을 때도 있지만 곱으로 돌려받을 때도 있지요. 그렇게 사랑을 눈덩이처럼 불려가는 일이 즐거워요. 함박눈처럼 기쁩니다.


당신과 편지를 주고 받는 일이 제겐 사랑의 눈덩이를 굴리는 일이에요.

이 밤 사랑과 기쁨을 주셔서 고마워요.

너무나 잘 하고 있다고, 뻔한 말이지만 들어야 마음이 놓일 때 언제든 또 편지해요. 백 번이고 천 번이고 말 할 수 있어. OO은 너무 잘 하고 있다고: )

오늘밤은 푹 잘자길 바라요. 사랑해♡



_봄밤에 봄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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