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간의 발행인 1]

by 남몰래

1. 젖은 우산

우산꽂이함에 젖은 채로 돌돌 말려있는 우산. 비 맞은 물기를 동여매고 구겨져있다. 활짝 펴서 바싹 말린 다음 결을 따라 잘 펴서 묶어주었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남의 젖은 우산을 선뜻 펼칠 용기는 없고 볼 때마다 마음이 눅눅해지는 기분이다. 가장자리부터 무질서하게 물기를 털어냈을 우산의 날개. 가장 마지막까지 젖어있을 묶인 자국 아래에는 습하고 시큼한 자국이 남을까. 다음 비오는 날까지 우산은 제 몸을 견디며 묶여 있을 수밖에 없다. 우산은 쓰이는 날보다 접혀있는 날이 더 많은데. 접혀서 기다리는 순간이 훨씬 더 길어도 활짝 펼쳐져 비를 맞는게 우산의 일. 대부분의 시간 생활을 하느라 바쁘지만 잠시 글을 쓰고 시를 배우러 가는 시간이 나의 일이라고 할 수 있을까. 그렇다면 나의 생활이란 것도 활짝 펴서 잘 말린 다음 결을 따라 잘 묶어주어야겠지.


2. 새

딸아이와 길을 걷다 도로 한가운데 납작하게 눌려 죽은 새를 보았다. 몸은 이미 아스팔트에 눌러 붙었는데 마지막까지 퍼덕였을 날개깃만이 그것이 새라는 것을 알게 했다. 엄마, 새는 날 수 있는데 저 새는 왜 차에 치였을까. 그러게 어째서 날지 못했을까. 천천히 걷고 있는데 차가 치고 지나갔나봐. 그 위로 얼마나 많은 바퀴들이 지나가야 저렇게 납작해질 수 있을까. 죽음에 기여하고 싶지 않은 차들은 조금씩 핸들을 틀어 그 자리를 비껴간다. 우리도 걸어가며 이야기 나눌 뿐 그 새를 어찌하지 못한다. 그럼 우리 여기 서서 잠깐 기도해주자. 손을 모아 새의 명복을 짧게 빈다. 죽은 몸을 온전히 안아볼 수 있는 것, 흙을 파고 그 안에 고이 눕힐 수 있는 것, 다시 흙을 덮고 언제든 그곳을 찾아가 그리워할 수 있는 건 평범한 일이라 생각했는데 그렇지 않을 수 있겠단 생각이 든다. 바닷속에서 흩어져버린 아이들의 몸이나 기계에 깔려 시신을 제대로 수습하지 못했던 아이의 몸을 생각하면.


3. 비

비를 좋아한다. 빗방울이 닿을 때마다 보이는 작은 점, 동그라미로 퍼져가는 무늬가 좋다. 흙을 톡톡 건드리면 흙이 살살 제 향기를 풍기는 것도 좋다. 나뭇잎을 더 짙어지게 하는 싱그러운 물방울, 게으른 나 대신 내 차를 깨끗하게 씻어주는 것도 좋다. 우산을 쓰고 걸으면 투두두둑 떨어지는 빗소리가 잠시도 쉬지 않는 심장박동 같아서 좋다. 누군가 끝없이 노크를 한다. 투두두둑 투두두둑. 내내 지치지 않고 내리는게 좋다. 닿는 곳마다 다른 소리를 내는 것도 좋다. 정해진 소리가 없는 유연함. 내가 있는 곳에 내리는 이 비가 네가 있는 곳에도 내리는 게 좋다. 아무리 멀리 있어도 함께 있는 것 같은 기분이 좋다. 혼자 빗속을 걸어도 몸을 작게 웅크려 큰 품 속에 안겨 있는 것 같은 기분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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