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시, 나의 그림
다시 집어 든 이력서가 무겁다
십 년 빈칸이 너무 넓어
한 줄을 채우기도 버겁다
매일 걷던 길인데 오늘은 유난히 낯설다
남편의 다리처럼 휘어진 도로
거리를 가로지르던 나무도 입을 다물고
낯선 구두에 보도블록이 움찔거린다
문 닫은 상점 유리에 나를 비춰본다
두꺼운 먹구름 아래 뿌옇게 바랜 블라우스
눈썹 끝에 매달린 이슬
누군가 내게 오는 빛을 다 써버려
남은 건 찢어진 바람뿐이다
날 뭐라고 소개할지 혓바닥을 달싹이다
아무렇지 않은 척 입꼬리를 올린다
숨과 숨 사이 끼어있는 사람이
내가 아니어도 상관없다
접어놓은 이름을 다시 펼친다
주름마다 채워진 수많은 낙서
그보다 많은 그림자
반쯤 지워진 얼굴을 넘기며
남은 빈칸을 채우기 위해
립스틱으로 웃음을 그리고
누군가 써준 자기소개서대로
가짜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