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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웃집 루시 Sep 29. 2022

경기도민이 강남으로 출퇴근할 때 생기는 일

나의 해방 일지는 역시 현실이었네


강남으로 이직을 한 이유는 단순했다. 강남 쪽이 채용공고가 많았기 때문이다.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사실 판교도 좋았지만 테헤란밸리에서도 일해보고 싶었다. 직장인의 메카라는 느낌적인 느낌 때문이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느낌적인 느낌이 얼마나 위험한 생각인지 절실히 느끼게 되었다.


 판교를 떠나 강남에 정착한 지 어언 6개월째.

 이제 좀 적응을 할까 싶다가도 간간히 밀려오는 현타 때문에 다음 직장은 꼭 다시 판교로 돌아가겠어하는 다짐을 한다. 다음은 내가 현타 오게 만드는 강남 출퇴근 리스크들이다.






1. 회식하고 집에 들어갈 때쯤 술이 다 깬다

 이게 무슨 소리야 싶겠지만 취하려고 마시는 술인데 집에 갈 때쯤 깨버리는 게 참 허무하다.

 잡코리아가 최근 조사한 결과 경기권에 사는 직장인들의 출퇴근 소요 시간이 평균 1시간 42분으로 가장 길었다. 그래서 제일 비효율적인 게 회식할 때이다(순전히 내 기준). 취해서 퇴근해야 기분이가 좋은데 1시간 30분이 지남에 따라 나는 원상태로 돌아오고 만다. 이 기분을 그대로 유지하고 싶은데 방법이 없다. 너무 슬픈 일이다


2. 여기가 뭐하는데야?


응 여기 버스정류장

사실 이 광경 하나 때문에 이 글을 쓰게 됐다.

아마 많이들 보셨을 거다. 신논현역과 강남역 사이를 지나다니다 보면 긴 줄이 늘어선 게 많이 보인다. 출근 시간대에는 물론이고 퇴근 시간엔 길을 다니기 힘들 정도로 사람들이 빽빽하게 줄을 서 있다. 비라도 올라치면 헬게이트가 따로 없다. 우산 들고 있는 직장인들과 그 길을 지나가려는 행인들로 인구밀도가 급격히 상승해버린다.


3. 신데렐라는 12시였지만 우린 11시다!

 신데렐라도 통금시간이 12시가 넘는데(역시 유럽)경기도민은 그것보다 더 빠르게 출발해야 한다.

 나의 해방 일지에선 막차를 놓치면 남매들이 만원씩 걷어 3만 원짜리 택시를 타고 퇴근하던데 용인은 4만 원이어서 택시도 못탄다.하하

 강남에서 친구들을 만나도 막차 시간에 맞춰서 버스를 기다려야 한다. 우리도 맘 놓고 놀고 싶다. 택시로 퇴근할 수 있는 거리에 살고 싶다.


4. 지하철에서 부산행 직관해 본 적 있어??

공유 일행이 대전역에서 잠시 정차했을 때 군인 좀비들이 유리문을 터뜨리듯 깨면서 나오는 장면을 잊을 수가 없다. 그 장면이 신논현역에서 그대로 재연되고 있다. 믿기 힘들겠지만 진짜다. 지하철에서 터져 나오는 그 수많은 직장인들을 보면 정말로 현실 자각 타임이 온다. 당신들도 고생이고 나도 고생이구나. 서울시민과 경기도민이 섞여있겠지만 저들과 나는 이 서울 바닥에서 얼마나 고생이 막심한지 모른다.


5. 야근 자체가 불가

 입사하고 나서 제일 충격적이었던 건 평택에서도 출퇴근을 하는 동료가 계셨다는 것이었다. 수원이나 용인이 제일 먼 줄 알았더니 평택에서도 출퇴근하시는 분이 계셨던 것이었다. 그분에 비하면 우리는 꽤나 가까운 편이었다. 그분은 야근 자체가 허용이 안되었다. 그분은 회식을 하면 9시 30분으로 알람을 맞춰놓으셨다. 야근이라도 있는 날은 그냥 사무실 소파에서 주무셨단다. 남들은 택시라도 타고 집에 가지면 강남에서 평택까지 택시비는... 말하지 않아도 알 것이다.





출근하는 광역 버스에서 버스기사님 빼고 다들 쪽잠을 자고 있는 이 기괴한 현실이 참 슬프게 한다.



오죽하면 이런 아이디어 상품도 있을까


 수도권이고 서울이고 인구밀도 높은 곳에서 꾸역꾸역 살아가고 있다. 한편으로는 답답한데 한편으로는 존경심이 올라온다. 그러면서 생기는 묘한 동질감들. 나약한 서울 사람은 견딜 수 없다는 경기도민 출퇴근이 나만 힘든게 아니구나. 다같이 힘들구나 하는 위로를 받는다.


 나의 해방 일지를 보면서 경기도민들이 많은 치유를 받았다고 한다. 공감에서 비롯된 위로일 것이다.

 인생의 20%를 출퇴근에 쏟아부어야 하는 경기도민들. 그리고 만만치 않은 인천시민분들. 모두들 고생이 많다. 그래도 어쩌겠는가. 현생 살려면 짊어지고 가야 할 몫이거늘. 그러니 다들 힘내자. 서로서로 격려하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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