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I/UX 디자이너여서 개발자들과 협업할 일이 많았다. 그중에서도 기억에 남는 안드로이드 개발자 두 명이 있다. 이 분들을 통해 배웠던 에피소드를 풀어본다
1. 내가 이해하지 못하니까 그림으로 그려준 개발자
스타트업에서 있을 때 나보다 17살이나 어린 안드로이드 개발자님과 일했던 경험이 있다. 그 개발자님은 대학 졸업 전에 그 기업에 납치(?)되어 입사한 경우였다. 나이는 어렸지만 회사 창립 멤버였고 해당 서비스에 대해서 누구보다 애정이 있고 깊게 알고 있었다. 그분은 말이 좀 많이 빠르고 끝의 억양이 올라가곤 했다. 그래서 어떨 땐 무례하고 예의 없어 보일 때도 있었다. 그분의 말은 한 60%만 이해가 가능했고 40%는 대충 느낌으로 알아채곤 했었다.
어느 날 서비스에 대해 둘이서 의논해야 할 일이 있었는데 그날은 더더욱 내가 이해하기가 어려웠다. 네? 네? 하며 되물었고 다 들었어도 뇌에서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던 것이다. 나의 거친 생각과 불안한 눈빛을 지켜보던 개발자님은 노트와 펜을 가져왔다. 그리고 하나하나 그림을 그려주기 시작했다.
다이어그램을 그리면서 차근차근히 설명을 해주었다. 그렇게 하다 보니 하나둘씩 이해되고 결국엔 해결점을 제시할 수 있었다. 보통 사람 같았으면 이해를 못 하는 내 모습에 답답해하는 제스처를 취했을 것이다.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나를 이해시킨, 그것도 나의 수준에서 이해시키려고 노력해준 그 개발자에게 크나 큰 감동을 받았다. 마치 초등 2학년 아이가 선생님의 수많은 설명을 통해 지구가 둥글다는 사실을 배웠을 때처럼 굉장한 인사이트를 얻었다.
'지식의 저주(curse of knowledge)'란 용어가 있다. 어벤저스에서도 나오는 이 용어는 어떤 개인이 다른 사람들과 의사소통을 할 때 다른 사람도 이해할 수 있는 배경을 가지고 있다고 자신도 모르게 추측하여 발생하는 인식적 편견이다.라고 위키백과에서 설명하고 있다. 한마디로 '내가 알고 있으니까 너도 알 것이다'라는 편협한 사고인 것이다.
아인슈타인은 “여섯 살 아이에게 설명할 수 없다면, 당신은 그 개념을 이해하지 못한 것입니다.”라고 했다.
내가 정말 전문가라면 상대방에게도 쉽게 이해시킬 수 있도록 소통해야 한다는 것이다.
2. 피드백 요청은 디자이너의 정당한 권리이며 좋은 소통 방법이다.
이커머스 플랫폼 서비스 메인화면에 이벤트 팝업을 띄워야 하는 업무를 받았다. 그때 입사한 지 두 달 정도 되었을 때라 아직 제품에 대해 이해하고 분석해보는 적응 기간이었다. 팝업 디자인을 하고 개발자님께 전달해 드렸는데 내가 결과물을 확인할 길이 없었다. 나도 안드로이드 개발자라면 안드로이드 스튜디오로 팝업을 적용해서 결과물을 확인했을 텐데 그 정도였으면 내가 개발자를 했을 것이다. 나는 일개 디자이너였다. 개발자님께 조심스럽게 요청드렸다
"개발자님, 팝업 적용한 화면 좀 공유해주실 수 있으세요?"
"네, 잠깐만요"
잠시 후 테스트로 적용한 화면이 메신저로 날아왔다. 시안대로 잘 나온 것 같아 기분이 좋았다. 그 후에도 결과물을 요청드리곤 했다. 어느 정도 적응 기간을 지내고 개발자님은 리소스를 적용하게 되면 자동으로 캡처 화면을 보내주시거나 불러서 안드로이드 디바이스로 결과물을 보여주셔서 같이 들여다보곤 했다. 아이콘 작업을 할 때도 적용 후 개발자님이 피드백을 주시곤 했다. 조금 크거나 작거나 잘 안 어울린다거나 하면서 말이다. 그러면 다시 수정해서 넘겨드렸다.
어느 날은 이런 얘기가 오고갔다.
"조 대리는 결과물 피드백을 요청하는 점이 좋아"
"아니 그럼 전임 디자이너님은 요청을 안 하셨어요?"
"안 봐도 되겠냐고 했더니 '알아서 잘해주시겠죠' 하던데?"
의아했다. 전임 디자이너는 본인의 작업물에 대해 대단한 확신이 있었던 것일까.
반면 내 작업물 결과가 어떻게 나오는지 궁금해하는 건 당연한 건데 의외의 포인트에서 인정받아 뿌듯했다.
결과물 확인 요청은 디자이너의 당연한 임무다. 동료든 상사이든 피드백을 받고 결과물을 확인해야 한다. 공손하고 매너 있는 태도로 동료들에게 피드백을 요청하자. 그 가운데에서 의사소통 능력이 성장하고 아웃풋도 성장할 것이다.
이 같은 인사이트를 얻게 해 준 동료 개발자님들에게 심심한 감사의 말씀을 드린다. 그분들이 아니었으면 이런 인사이트를 얻기 힘들었을 것이다. 정말 다양한 분들과 소통하면서 많은 것을 배우고 느꼈다. 그분들을 통해 배운 경험으로 더 효율적이고 건강한 의사소통을 통해 더 나은 성과와 성장을 이룰 수 있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