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 회식 때 내 바로 옆에 앉아 계셨던 이든님이 연거푸 말씀하셨다.
"나 그래도 이 회사 다니는 동안 너무 감사했어."
'왜 어디 떠날 사람처럼 그러세요?' 했더니 '나 떠나.' 하시는 게 아닌가.
"왜요?"
"짤렸어. 회사 어렵다구 나가래."
"언제까지요?"
"광복절 전까지만 나와."
갑자기 이게 무슨 말인가 싶었다. 이든님은 저번 주 금요일에 권고사직을 통보받았단다. 다행히 이직하는 곳은 요즘 유니콘 기업이라 불리는 곳으로 정해졌고 한숨은 돌릴 수 있었다. 다만 계약직이라는 게 걸렸다.
"살이 많이 빠지셨어요."
"그게 티가 나?"
그는 나이가 많았다.
다른 개발자분들이 맨날 전우 세대(들어는 봤나, 전우 세대)라고 장난스럽게 놀리곤 했으니까 말이다.
그래도 그의 열정과 회사에 대한 애정만큼은 남 달랐다. 항상 제품 개선을 위해 이리 뛰고 저리 뛰셨다. 다른 고인물 월급 루팡의 동료들과는 달랐다. 동료 개발자들한테 달려가서 '이거 안된다 저거 안된다.' 하며 의논하고 협업하곤 하셨다. 그는 항상 씩씩하고 활기찼다. 그런 이든님은 나의 롤모델이었다. 나도 저분 나이가 될 때까지 현역으로 뛰고 싶다, 라는 생각이 들게 하셨던 분이다.
회식 내내 이든님은 슬퍼 보였다. 초기 멤버였다는데 권고사직이라니...
연거푸 감사하다는 말만 되풀이하셨다. 안에 있는 억울함과 원통함을 감사하다는 말로 계속 끄집어내는 것 같았다. 그래야 이 현실을 인정할 수 있을 것 같아 보였다. 그런 그에게서 '의연함이 이런 거구나'라는 걸 느꼈다. 마지막 날까지 최선을 다해 마무리하며 한 명 한 명 감사함을 표현하는 그는 무척이나 아름다웠다.
어제 탕비실에서 에이미 님을 만났다.
"얘기 들으셨죠?"
"네 어떤 얘기요?"
"저 이번 달까지만 일하고 퇴사해요."
대충 느낌은 왔었다. 특별한 프로젝트가 없는데 CTO랑 회의실을 자주 들어간다 했다.
얼핏 인수인계 단어가 들리길래 예상은 했었는데 본인 입으로 들으니 적잖이 타격감이 느껴졌다.
"그래서 저번 주에 브라이언 님하고 밥 먹었어요."
"아니 왜 다들 퇴사한다고나 해야 밥을 사준대. 다닐 때 좀 사주시지!"
"그러게 말이에요. 그동안 밥 한 번을 안 사주시더니(웃음)"
참 사회생활이라는 게 이상하다. 퇴사나 한다고 해야 여기저기서 밥 한 끼 먹자, 티 타임 좀 갖자고 줄을 선다. 같이 회사 잘 다닐 땐 밥 한 끼, 티타임 한번 갖지를 않더니 말이다. 있을 때 좀 챙기지. 잘 다닐 때 힘든 것 좀 들어주시지. 퇴사한다고 해야 애정이 생기나? '있을 때 잘해'란 노래가 그냥 나온 것이 아닌가 보다.
나는 후배들, 특히 인턴들한텐 커피를 자주 사주곤 한다. 동료들과 라포를 형성할 때 함께 먹는 것만큼 빠르고 효과적인 게 없다고 생각해서다. 제발 회사 같이 잘 다닐 때 그런 라포를 형성하고 하소연도 들어줬으면 좋겠다.
물론 어려운 가운데 밥 한 끼 사준다고, 커피 한잔 사준다고 그들의 퇴사를 막긴 어려울 것이다. 하지만 안타까운 건 그 조차 라포 형성도 안되어있으면서 동료애, 애사심을 강요하는 것이다. 옆에 있을 때 더 관심 가져 주고 함께 한다면 퇴사하고 싶은 마음이 조금은 누그러지지 않을까. 동료들 덕분에 조금은 더 견디면서 다닐 수 있지 않을까.
만남이 있으면 언젠가는 이별이 있다.
그것이 이사든 퇴사든 죽음이든 졸업이든 말이다.
이별 원데이 투데이 하는 것도 아닌데 이별 앞에선 언제나 씁쓸하고 많은 생각을 하게 된다.
그것이 가족보다 더 많은 시간을 보내는 동료들이기 때문에 더욱 그런 것 같다.
떠나면서 떠나보내면서 어떻게 해야 잘 살고 잘 헤어지는 건지 다시 한번 또 뒤돌아본다.
과연 나는 어떤 동료인가. 동료들에게 잘하고 있나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