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웃집 루시 Nov 02. 2022

저보고 팀장을 하라구요?

얼마 전 면접을 볼 때 이런 질문을 받았다.


"회사가 관리자 트랙을 권유하면 어떻게 하실 생각이신가요?"

"관리자 트랙가 전문가 트랙 중 하나만 선택해야 한다면,
본인은 지금 당장 어떤 트랙을 선택하실 건가요?"


잠시 고민했다.

언젠가는 관리자 포지션을 맡아야 하는 게 직장이라는 걸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아직은 아니다 싶었다.

무엇인가 실력이 있어야 후배들을 가르치지 경험만 많다고 후배들을 가르칠 수 있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했다.

워낙 실력 없는 팀장을 까내리는 글들을 많이 봐왔다. 디자인도 본인보다 못하는데 팀장 꿰고 있다는 블라인드 글들이 심장을 후벼 파곤 했다. 나는 저런 무능력한 팀장이 되지 말아야지. 후배들이 믿고 따를만한 팀장이 되어야지라고 항상 되뇌었었다. 그래서 그 질문이 훅 들어왔을 때 주저했다. 내가? 감히 내가 팀장을?



팀장 돼서 짜증 난 박혜진 팀장님;



책임지기 싫어서 거절한 건 아니다

책임을 지기 싫어서 실무를 하는 게 아니다. 정확히 말하자면 떳떳하게 팀을 이끌고 싶어서 일단 실무자 트랙을 선택했다. 좀 더 전문가다워지고 싶어서 말이다. 커뮤니티마다 '실력도 안되면서 자리만 꿰차고 있는 팀장'을 까는 글이 너무나도 많다. 나는 저러지 말아야지. 나는 그래도 믿고 따라와 줄 수 있는 팀장이 되어야지라고 생각했다. 그러기 위해선 실력은 당연 기본이 되어야 생각한다. 설득의 3요소 중에 에토스라는 요소가 있다. 설득하는 사람의 고유한 인격, 성품, 매력도, 진실성 등이 설득력을 높인다는 것이다. 도둑이 자기 자식들에게 도둑질하지 말라면 어느 자식이 듣겠냐는 거랑 똑같은 이치다.


 나도 그렇다. '나를 믿고 따라와' 했는데 그 믿음이 어디서 나오겠냐는 거다. 나의 능력, 인격, 진실성 등이 아직은 서투르고 미숙한 단계였다. 아직은 아니었다.


묘하게 인정받았다는 우쭐함

그런 제의나 질문을 받았다는 건 자질은 어느 정도 있다는 반증이니 인정받은 기분이 들었다. 아직 5년 차에 그것도 면접장에서 처음 뵌 인사팀장님께 들었으니 우쭐해질 만도 하지 않은가. 나의 어떤 부분을 보고 관리자 트랙 말씀을 꺼내셨던 걸까. 엄마의 눈으로 세상을 바라봐서 좋다는 예전 동료의 에피소드 때문이었을까. 긍정적인 나의 제스처 때문이었을까. 묘한 우쭐함을 느끼면서 과연 어떤 면 때문에 그런 말씀을 꺼내신 건지 궁금했다. 팀장의 자질은 무엇인가란 생각이 다시 든다. 드라마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로 본 팀장이 가져야 할 자질 이란 글을 쓰긴 했지만 내가 그런 상사를 겪여 본 바가 없으니 피부로 느껴지지도 않는다. 나의 어떤 면이 그런 자질로 나타난 건지 확인받고 싶은 마음도 들었다.


자리가 과연 사람을 만들까?

'자리가 사람을 만든다'라는 말이 있다. 책임을 져야 할 위치가 되면 그에 걸맞도록 성장한다는 뜻이다. 감투가 주는 에너지, 책임감 등이 그 사람을 뭔가 위로 이끌어 올려줄 수도 있다. 하지만 모두가 그런 건 아니다. 그 직책이 그 사람의 자질을 드러 내게 할 때도 있다.

 

동아리 선배 중 S라는 선배가 있었다. 동아리 전(前) 회장이었다. 그는 항상 자리가 사람을 만든다고 했다. 졸업하고도 S선배는 20대 후반에 팀장을 맡았었고 한 도메인에 18년간 몸담았었다. 본인도 리더였고 또 많은 리더들을 만났었다.

 

 그가 첫 리더를 맡았던 것은 동아리 회장을 하면서였다. 그때 동아리는 구멤버와 신멤버의 융화가 잘 안 되던 때여서 선배에겐 화합이 제일 큰 과제였었다. 그가 제일 먼저 했었던 건 매일매일 자신의 선배들을 찾아가는 일이었다. 매일 양쪽 주머니에 소주 한 병씩을 끼고 선배들 자취방을 찾아가 호소하는 것이었다. 선배들은 그 새내기 회장의 노력에 감동했고 동아리 방에는 사람들이 가득 채워졌다, 는 훈훈한 감동 스토리다.

 이 얘길 하면서 자신은 원래 숫기가 없고 내성적이었던 사람이었는데 회장을 맡게 되면서 바뀌어졌다고 했다. 필요에 의해 스스로를 변화시켰다고 했다. 사실 난 여기에 공감하지 못한다.

 

 좋은 리더는 본래 좋은 팀원이었을 것이다. 분명  선배는  전에도 성실하고 책임감 있는 사람이었을 거다. 그런 사람이 리더가 되었을 에도 역량이 발휘되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좋은 리더만이 살아 남고 좋은 팀이 살아남는다고   있을 것이다.




면접 결과는 어떻게 되었을까.

아쉽게도 결과는 불합격이었다. 하지만 나의 긍정적이고 적극적인 태도 덕분에 나중에 TO가 나게 되면 꼭 같이 일하고 싶다는 피드백을 받았다. 더불어 그렇게 해도 괜찮냐는 동의를 구하셨는데 그 점에 대해 감사하게 생각한다.


아직 1인분도 못하는 디자이너지만 언젠가 조직을 올바른 길로 이끌어 나갈 수 있는 준비된 팀장이 되고 싶다. 물론 나도 팀장이 되면 박혜진 팀장님처럼 짜증은 나겠지만 겸허히 받아들여야지. 그날을 위해 오늘도 실력과 인격을 쌓아가는 중이다. 일단 1인분 몫이나 하자.

매거진의 이전글 퇴사하는 동료들을 떠나보내며 느낀 점 두 가지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