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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리 May 30. 2023

검진 결과 : 유능함


정신과 병원 방문

정신과 병원을 예약해 둔 날, 정확한 검사를 위해 카페인 섭취를 자제하라는 문자를 받았다. 커피를 마시지 않아서일까 하루종일 머리가 깨질 듯 아팠다. 조금 일찍 퇴근하고 병원을 찾았다.


개원한 지 일주일정도 된 병원. 화이트와 우드톤으로 세련되고 모든 것이 단정했다. 태블릿으로 백여 개의 질문에 체크하고 진료실로 향했다. 진료실도 아주 단정하고 책상에 큰 모니터와 무선 키보드만 있었다.


저 성인 ADHD일까요?


무슨 문제로 왔는지 묻는 질문에 성인 ADHD가 의심되어서 왔다고 했다. 의사는 구체적인 증상을 물었고 이후 자연스럽게 어린 시절, 학교 생활, 부모님과의 관계로 이야기가 이어졌다.


문진결과상으로도 ADHD 점수가 높고 본인도 어려움을 호소해서 ADHD 소견이 있으나 특정 상황(혼자 있을 때)에만 증상이 발현되고 평소 성취가 높은 점으로 보아 ADHD라고 확진할 수 없다고 했다. 보통 이런 경우 주의집중력 검사를 해보는데 원하면 해보자 했다.


면담 중 자각된 바가 있다. 주의집중력 문제가 아니라 전체적인 불안도가 높은데 다른 사람들과 같이 있으면 자제가 되는데 혼자 있으면 불안이 폭주하는 것이구나. 그래도 더 확신하고 싶어 검사를 받았다.


혼자 방 안에서 컴퓨터 앞에 앉아 프로그램의 지시에 따랐다. 몇 가지 단어를 보여주고 보여준 단어인지 아닌지, 도형을 보여주고 보여준 도형인지 아닌지 등 테스트를 하며 정답여부와 속도를 반영해 검사결과를 내었다.


당신은 유능합니다


검사 결과 의사는 주의집중력에 이상이 없으며, 이상이 없는 수준이 아니라 아주 높은 수준이라 하였다. 불안도가 높아 학습 및 업무수행에 어려움이 있어 보이나 우수한 주의집중력으로 성취들을 해온 것으로 보인다 했다.


병원 방문 때부터 머리가 너무 아프고 면담 중에도 멍하고 눈을 뜨기 어려웠다. 의사의 말들이 둔하게 들려서 당일에는 진료로 인한 어떤 변화를 느끼기 어려웠다. 혼자 있을 때 너무 불안하면 먹으라고 약 처방을 받아 나왔다.


다음날, 출근해 책상 앞에 앉았는데 전에 없던 자신감이 넘쳤다. 뭐지? 컴퓨터가 복구되어 밀려있던 데이터를 처리하듯 전날의 진료 내용이 내 안에서 처리되었다.


나의 불안은 유능함을 인정받고 싶은데 스스로 유능하지 못하다고 생각하고 매번 프로젝트마다 뭔가 보여줘야 한다고 생각하는구나. 안타까운 건 남들은 인정하는데 스스로 높은 기준을 세워두고 다그치고 있었구나. 주의집중력 검사를 통해 스스로에게 증명서를 제출한 기분이다.


저 유능하답니다


일의 결과물마다 채점하며 유능함을 평가하고 있었는데, 일을 하는 내가 유능하다고 스스로 인정하니 일로 보여주지 않아도 괜찮다는 생각이 들었다. 참 웃겼다. 자기를 검사해서 성적표를 받아내야 인정하다니.


병원에 다녀오고 일주일이 넘은 지금 전체적인 불안도가 내려갔다. 일하는 데 자신감이 생겨서 더 빠르게 잘 처리해내고 있다. 약은 아직 안 먹어봤다.


잘 다녀온 것 같다. 앞으로도 갈지는 고민. 비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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