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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숲이김 Jun 03. 2021

국가를 위해 번식을 하세요


한국의 초등학교 선생님이라면 절대 피해갈 수 없는 질문이 있다. 몇 살이세요, 결혼 하셨어요. 결혼 유무를 어린 아이들도 그렇게 물어대는 걸 보면 그들도 그걸 중요하게 여기는 것 같다. 중고등학생만 되어도 눈치가 있어서 그 질문이 실례가 될 수도 있다는 것을 아는데 초등학생은 절대 그렇지 않다. 그들은 발달 단계상 극강의 에고를 자랑하기 때문에 본인이 궁금한 게 최우선이고, 선생님이 그 질문을 어떻게 받아들일지는 알 지도, 알고 싶지도 않다.


결혼 했냐는 질문은 사실 처음엔 나한테 고민거리조차도 되지 않았다. 어린 친구들을 만나는 공식적인 자리로 교생 실습을 맨 첫번째로 친다면 벌써 저 질문을 받은 역사도 7년 정도가 된다. 그 정도 세월이라면 저런 뻔한 질문에 이젠 코웃음을 치면서 귀지나 팔 법도 한데, 어찌된 게 저 질문은 갈수록 대답하기가 어려워진다.


대학생 초반이었던 교생 때야 '선생님은 지금 대학생인데?'라고 말하면 그 뿐이었다. 지금 생각해보니 대학생이라고 해서 무조건 미혼이라는 법도 없는데 식견이 좁았던 나와 초딩들은 대강 '결혼을 했다고 하기엔 내 나이가 너무 어리지 않느냐'의 의미로 알아듣고 유야무야 넘어갔다. 정식으로 임용되어 일을 시작한 이후 내 답변은 '선생님은 지금 20대 초반인데?'로 바뀌었다. 운좋게 23살부터 일을 시작한 덕분이었고 이 답변에 대해서도 초딩들은 더이상 이의가 없었다. 그들에게도 아는 언니, 오빠가 한명 쯤은 있는 터라 23-24살까지는 사실상 대학생에 해당되는 나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러니 저 답변에 대해서도 '결혼을 했다고 하기엔 선생님이 너무 어리다'의 의미로 알아듣고 아무도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던 것이다.


좋은 시절은 항상 짧다더니 그 시기가 꽃날인 줄도 그렇게 흘러 가버렸다. 나이가 들어가면서(?) 서서히 나는 난관에 봉착하기 시작했다. 이 질문이 이렇게 대답하기 애매한 것이었나, 내가 달라진 것인가 초딩들이 달라진 것인가 고개를 갸우뚱하면서 말이다. 이제 이 질문에 답하는 것이 너무도 어려워진 것은 두 가지 이유가 있다. 첫번째로 이제 내가 더이상 결혼하기엔 '너무' 나이가 어리다는 것을 당차게 어필하기엔 다소 애매해졌다. 올해 28살인 나는 내가 아직 '너무' 어리다고 생각하는데 사회 규범을 충실하게 따르는 이들이 모이는 교직 사회에선 나를 그렇게 생각해주지 않는다. 20대 후반이란 결혼하기 딱 좋은 나이라고 다들 생각하고 학교의 내 또래들 중 결혼한 사람들도 제법 있다. 이 직장 사람들의 결혼 상태를 차치하고서라도 애들이 아는 어른들 중에서 빠른 사람은 이 맘때에 결혼을 하니 그렇게 생각하는 것도 무리가 아니다.


하지만 더 결정적인 이유는 두번째 이유인데, 지금 초딩들이 사회시간에 교육을 너무 잘 받아서 그렇다. 무슨 말인가 하니 대한민국 사회가 맞닥뜨린 최악의 난제인 '저출산 고령화' 현상은 너무도 대대적인 문제라서 초등학생들조차도 이를 사회시간에 배운다. 나는 처음에 초등학교 5학년, 고작 12살이 배우기엔 저출산(이라고 쓰인 비혼과 딩크)이란 너무 와닿지 않는 문제라고 생각했다. 그들은 출산을 선택한 부모님의 축복과 함께 태어난지 고작 12년 밖에 되지 않았으니까.


출처 : 초등학교 사회 5-1 교과서


처음에 교재 연구를 하려고 교과서를 봤을 때는 '이런 것까지?'하면서 호기심으로 봤지만 교과서를 보면 볼수록 세상이 달라진 것이 실감난다. 내가 기억을 못하는 건진 몰라도 나는 초등학교 때 단 한번도 '저출산'이라는 단어를 들어본 적이 없다. 갈수록 사람들이 자식을 안 낳으려고 한다며 걱정스럽게 누군가가 말하는 것을 처음 들은 것도 고등학교 때였던걸로 기억한다. 사실 그 이전에도 그 기회가 있었는지도 모르나 그 때만 해도 저출산이 이렇게 심각한 쇼크상태의 문제까진 아니었던 데다 난 출산과는 거리가 먼 연령대에 있었다. 예전엔 자식을 너무 많이 낳아서 산아 제한 정책을 내세웠다는 것을 배운 기억만 있고, 그 때마다 대표적인 예시로 따라붙은 중국만을 기억했다. 그런데 바로 얼마 전에 기사를 봤더니 인구 대국 중국마저도 출생률이 급격히 감소해서 자녀 수 제한을 풀었다고 하니 말 다했다.


출처 : 초등학교 사회 5-1 교과서


그리고 교과서란 존재는 꼭 이렇게 해야만 하는 말로 결말을 내놓는 경우가 허다하다. 저 공익 광고 또한 너무도 모범 답안처럼 '내 아이를 갖는 기쁨과 나라의 미래를 함께 생각해 주세요.' 라는 문구를 적어 놓았다.  마치 출산을 하지 않는 것이 나라의 미래를 전혀 생각하지 않는 이기적인 선택이라는 듯한 뉘앙스를 풍기는 느낌을 어째 지울 수 없다. 하지만 교과서는 이 국가를 이끌어나갈 인재를 키우는 자료이기에 국가의 존립이 걸려있는 저출산 문제에 있어선 당연히 이런 입장을 취할 수 밖에 없다. 인구가 국력인 세상에서 ‘저출산을 신경쓰지 말고 모두 마음대로 사십시오! ‘라는 입장을 무척이나 공식적인 교과서에 내걸 수는 없으니까.


하지만 나는 '저출산이 국가 문제이니 나라를 위해 애를 많이 낳아야 한다' 라는 단순하고도 감화적인 결론을 도출하며 수업을 끝내고 싶은 마음은 전혀 없었다. 왜냐하면 이 저출산 문제란 앞으로 더 심해질 일만 남았고, 지금 이 초딩들이 컸을 때 대부분 어떤 선택을 할 지란 불 보듯 뻔하기 때문이다. 이미 초등학교 5학년들은 30대에 접어들어 이미 결혼할 나이가 진작된 자신들의 이모, 고모, 삼촌들을 보면서 사람들이 점점 결혼을 하지 않는다는 것을 어렴풋이 짐작하고 있다. 아직은 어려서 그 이유를 정확히 모를 뿐이다.


그리고 저출산 문제란 근본적으로 개인의 이기적인 선택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 사회 전체적인 변화가 개인으로 하여금 그런 선택을 하도록 만든 바가 크다. 연일 매스컴에서는 연애, 결혼, 출산을 포기한 청년층에 대해서 기사를 쏟아내는데 고작 그 청년들 보다 몇 년 어릴 뿐인 이 학생들은 이런 자료를 가지고 공부를 한다. 그럴 때마다 나는 현실과 너무도 동떨어진 이 교실 안을, 국가를 위해 헌신하는 모범적 어린이와 그저 바르고 아름다운 이야기만 실려있는 교과서를 보면 갑갑함을 느낀다. 나는 이런 사회 문제에 관해선 교과서적인 입장을 그다지 부각시키지 않고, 아주 드라이하고 중립적인 결말로 수업을 끝낸다. 우리 사회엔 이런 문제가 있다. 그런데 이 문제는 개인의 삶의 욕망과 많이 부딪치기 때문에 해결이 쉽지 않다. 어떤 삶을 살 것인지는 개인의 선택에 달려있다.


다시 나의 고충으로 돌아와서, 이런 상황에서 '선생님은 결혼 하셨어요 혹은 왜 안 하셨어요'에 대한 답이 어려워지는 이유는 저출산이 심각한 문제라는 것을 인식할만큼 커버린 초딩들과 결혼이 그렇게 멀지 않은 연령대에 도달한 내가 교차해버렸기 때문이다. 알 것 다 아는 초딩들 중에선 나에게 이렇게 말한 학생도 있다.   


선생님도 번식을 하셔야죠.


나는 그 날 것스러운 단어에 할 말을 잃었으나 굳이 그 단어가 부적절하다느니 예의가 없다느니 하는 말은 하지 않았다. 사람에게 쓰기엔 적절치 않을 뿐더러 선생님에 따라선 굉장히 기분 나빠할 수 있는 발언이긴 하다. 내가 그 단어를 정상참작 해준 데는 그 학생이 반려동물을 아주 애지중지하며 키우는 동물친화적인 소녀라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선생님, 원래 예쁘고 좋은 개는 번식을 시켜서 자손을 남겨야 하는 거예요. 선생님도 번식을 하세요.


계속 듣고 있다 보니 초딩은 자기 나름대로 칭찬의 의미로(?) 번식을 해야한다고 나에게 말했던 것이다. 하지만 예상치도 못한 단어 선택이 여전히 충격이라 나는 웃기만 했다. 내 웃음기가 가신 이후에도 소녀는 나의 대답을 간절히 바라고 있는 얼굴이기에 나는 무언가 대답해주어야 했다. 나는 어떤 질문이든 대답할 때 가장 솔직하게 말하는 편이다. 그럴듯한 모범 답안을 꾸며내는 것부터가 적성에 안 맞고, 그런 식으로 대화 상대를 기만하고 싶지도 않다.


난 아직 생각 없어.


왜요?


정확하게 10년만 지나 봐. 너도 알게 될거야. 아, 그 때 왜 선생님이 그렇게 말했을까 하고.


소녀는 아리송한 미소를 짓고 친구들과 못다한 이야기를 하기 위해 자리를 떴다. 지금으로부터 10년 후에 소녀는 22살이 되어있을 것이다. 아마 그 나이때 쯤이면 결혼 비율은 더 낮아지고, 출산율은 이미 더 낮아질 데도 없겠지만 지금 수준에서 크게 회복하지 못하고 있을 것이다. 사회에서 저출산을 해결한답시고 내놓는 해결책의 수준을 보면 미래가 밝다는 생각이 전혀 들지 않는다. 어쩔 수 없이 부족한 노동력을 메우기 위해서 해외에서 유입된 인구로 대한민국은 필연적으로 다문화 사회가 될 것이고, 쇼크 수준의 출산율만큼이나 다문화 사회로 변모하는 과정이 쇼크 수준으로 빨라질 수도 있겠다. 그 때가 되면 본토 출신의 국민과 이민자들 간의 갈등이 지금과는 비교도 안 될 정도로 큰 화두가 될 것이고.


왜 번식을 하지 않냐고. 번식을 할 수 있다면 좋겠지. 내가 준비가 되면 말이야. 하지만 그러기까지 나는 자유로운 상태에서 이루고 싶은 꿈이 많고, 좋은 삶이라고 간주하는 기준은 저 높이 가 있어. 무엇보다도 현대인들이 가장 원하는 가치는 '자유'야. 여성들은 결혼을 하지 않을 선택지를 가지게 되기까지도 너무 오래 걸렸어. 결혼을 할 자유와 결혼을 하지 않을 자유, 출산을 할 자유와 출산을 하지 않을 자유. 선택지를 놓고 끊임없이 비교해 봐야지. 개인의 삶에서 그건 너무 중요한 선택이니까.


20대 후반인 내가 지금 하고 있는 이런 생각을 내 어린 친구들은 10년 후에 벌써 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어느 설문 조사에서 현재 청소년들의 절반 이상이 이미 결혼을 꼭 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한다고 답했다. 세상은 달라졌지만 교과서는 저출산이 너무 문제니 아이를 낳아달라고 부르짖는다. 그 너머로 내가 진짜 소녀에게 해주고 싶은 말은 선생님이라는 이름 하에 내 입 안에서 잘근잘근히 씹어 삼키는 수 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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