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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숲이김 Jun 18. 2022

얘, 너넨 참 고급이다


우리 부모님은 어느 순간부터 내가 욕심이 참 많다고 말했다. 어느 때는 당황스러움에서 다른 날은 비난조에서, 최근엔 이해는 안되지만 어떻게든 이해해보려는 노력에서, 그리고 가장 최근엔 일종의 부러움에서 나왔다.


사실 욕심이라는 단어는 나를 키우는 동안 부모님이 보아온 나와는 가장 동떨어져 있었다. 오히려 부모님은 학창 시절부터 가차없는 경쟁의 쳇바퀴 속을 뛰어야 하는 이 나라의 사정을 생각하면 내 욕심은 다소 부족하다고 생각했다.


큰 일탈을 일삼지 않으며 소위 말하는 제도권 교육의 트랙을 잘 밟아왔기에 우리 부모는 앞으로의 내 인생도 그들이 예상하고 잘 이끌어준 대로 잘 굴러갈 것이라고 생각하고 안심했다. 공부와 일에 아무런 흥미가 없다는 나의 말을 들었어도 그들은 그렇게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어차피 이 세상에서 자신이 할 일에 큰 흥미를 가진 사람은 몇 안되는 소수이고 나머지는 투덜거리면서도 어쨌든 그 일을 해내고 살아가고 있기 때문이다. 먹고 사는데 큰 지장이 없다면 그 밖의 다른 문제는 순전히 마음가짐의 문제라고 치부했던 그들은 나의 불만족이 새로움을 꿈꾸는 젊은 혈기이자 갓 직장생활을 시작한 사회 초년생의 시행착오라고 생각했다. 시간이 지나면 혈기는 잠잠해지고 시행착오는 요령이 붙기 마련이므로 걱정할 일까지는 아니었던 것이다.


그리고 약 5년이 지난 지금, 나는 <데미안>을 다시 읽고 있다. 그리고 내가 이 작품에 대하여 크나큰 오해를 했고, 그 무지가 다름아닌 내가 인생을 바라보는 시각이자 내 선택의 폭이었다는 사실에 경악하고 있는 중이다.


다른 이들도 그렇겠지만 나도 <데미안>을 중고등학생 필독서로써 처음 접했다. 하지만 대학생 때 이 작품을 다시 읽었을 때 이것은 도저히 중고등학생이 읽을 만한 작품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싱클레어가 세상에 대해 가진 반항성과 양면성을 이해하기엔 적어도 자기 자유가 어느 정도는 확보된 성인이 되어야 한다고 믿었던 것이다. 하지만 30대를 바라보고 있는 지금에 와서야 다시 깨달았다. 이 이야기는 표면적으로 사춘기적 방황과 성장의 탈을 쓰고 있지만 실제로는 이 세계 전체의 본질을 파헤친 작품이라는 것을. 이것은 고난과 시련을 겪고 한층 강해지는 그런 청춘 드라마스러운 성장을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더없는 허무와 부조리 속으로 빠져들어 절망하는 이야기이다. 그것을 바로 볼 것인가, 아니면 눈을 감을 것인가하는 문제이다.


싱클레어는 어떤 차별이나 어려움 없이 안정적이고 행복한 가정에서 따스한 사랑을 먹고 자랐다. 그는 자신이 나고 자란 가정의 햇살이 누군가에게는 간절한 소망의 대상이자 더없이 감사해야하는 존재임을 알면서도 자신이 그 속에서 마냥 행복할 수 없음을 간파한다. 진짜 세상은 이 빛이 끝나는 저 그림자 너머에, 빛과 그림자가 교차해 만들어내는 수없이 다른 명도의 스펙트럼 곳곳에 있다는 것을 인식해갈수록 그는 눈을 감을 수 없었던 것이다.


그래서 <데미안>은 도무지 만족을 모르는 인간의 정신성을 구현한 작품이다. 헤르만 헤세는 표면적으로는 무엇 하나 탓할 것 없이 갖추어져 있어도 거기서 만족하지 못하고 그 이면의 본질을 보려고 하는 인간의 집요한 정신을 생애 전체에 걸쳐 탐구했고 이는 <황야의 이리>라는 작품에서도 잘 드러난다. 그는 시민 사회의 일원으로써 그 문명의 혜택을 모두 누리고 살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모든 것이 기만적이라고 느끼지만, 자신이 그로부터 벗어나 살 수도 없음에 끝없이 갈등한다.


이 시기에 내 인식이 나를 <데미안>으로 이끌고 이 이야기를 다른 차원에서 열어준 것은 지난 5년간의 내 삶 덕분이다. 우리 부모의 바램과는 다르게 나는 싱클레어처럼 내가 갖고 있는 이 생활이 안정적이고 따사롭다는 것을 머리로는 알면서도 늘 눈을 다른 곳으로 돌렸다. 보이지 않는 그림자 속으로 무엇이 있는지를 궁금해하다 못해 이젠 그 곳으로 나가기 위해 한 발자국씩 움직이다보니 내 몸에 묶인 줄이 팽팽해질 때까지 다다라 있다. 만약 당신이 현재의 상황과 선택의 결과에 그런대로 만족하고 행복하다면 괜찮다. 이는 실로 엄청난 축복이다. 하지만 내가 느끼기로 현재 젊은 세대들은 나와 같이 헤세 - 싱클레어 같은 고뇌 속에 빠져 있다. 지금 이 삶이 과거 세대의 그것과 비교했을 때 풍요롭다는 것을 분명 알고 있으나 그와 별개로 만족스럽진 못하다. 원하는 것을 찾지 못했거나 원하는 것은 저 멀리 있기 때문이다. 이것을 얼마나 강력하게 어떤 층위로 인식했느냐의 차이만 있을 뿐이다.


헤세의 딜레마처럼 이렇게 갈증을 느낄 수 있다는 것 자체가 여유의 증거이자 부산물인 것도 확실하다. 나는 착실하게 살아온 부모님의 딸로 태어나 가정에서 충분한 사랑과 경제적 지원을 받았다. 중산층에서 태어나 중산층의 삶을 유지할 수 있는 학업적, 직업적 선택 덕분에 학업과 취업, 그리고 직장 생활을 하는 동안 사회적으로 차별받거나 배제당한 적이 없다. 모두가 다른 상황에서 태어나 저마다 다른 삶의 굴레를 지고 살아가는 것을 목격해왔고 나는 감히 상상조차 할 수 없는 부조리에 맞서 싸우고 계시는 이들이 너무도 많다는 걸 알기에 내가 불필요한 자기연민에 빠지지 않는지 늘 경계한다.


하지만 내가 감사한 환경에서 태어났다고 해서 나에게 그 이상을 꿈꾸지 말라고 말할 권리는 아무에게도 없다. 살아있는 인간이라면 자기가 발붙인 현실보다 더 나은 무언가를 추구하기 마련이다. 욕망이 없는 자는 죽은 자이다. 그 욕망이 무엇을 향한 것인가는 저마다 다르지만 살아있다면 무언가를 원한다. 그 욕망이 무엇을 향한 것인지, 그리고 얼마나 간절한 것인지, 이로 말미암아 무엇을 하고 살아가는지에 따라 삶의 양상이 달라진다.


이 지점에서 부모님의 당황스러움이 시작되었다. 부모 세대가 보기엔 큰 어려움 없이 자랐고 하고 싶은 것도 다 하고 사는 것 같은데, 이 엄청난 불만은 어디서 나온 것인지 그들로서는 이해하기가 힘들었을 것이다. 정말 밥을 굶는 사람이 허다했던 시대엔 ‘생업’이 가장 중대한 가치였고 이를 운용할 수 있다면 아마 그들로서는 거기까지만으로도 대체로 만족스러웠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나는 거기다 대고 이렇게 말했다.


왜 그렇게 살아야 하죠? 사람이라면 당연히 그 정도는 먹고 살아야 하는 거고요. 그건 당연히 그래야 하고요, 사람은 자신이 원하는 것을 하기 위해 태어난 거예요. 인간은 먹고 살려고 일하기 위해서 태어난 게 아니라 저마다 생의 의미를 창조하기 위해서 태어난 거예요. 이를 위해선 자기가 진짜 좋아하는 걸 해야 한다고요.


우리 부모의 얼굴에 당혹스러운 침묵이 흘렀다. 나는 그들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 표정만 보고 알 수 있었다. 직장 생활 5년 동안 꺾일 줄만 알았던 갈증은 실로 전혀 해소되지 않았구나. 직장생활의 피로감과 독신 생활의 외로움에 깎이고 치여 사회가 거대한 가치를 부여한 돈과 가정이라는 다음 트랙으로 차선 변경을 했어야 하는데, 얘가 궤도를 이탈하고 말았구나.


그렇게 살지 않겠다는 나의 선언에 우리 부모는 배신감에 차서 그렇게 살지 않으면 넌 무엇을 하고 살아갈 것이냐고 되받아쳤다. 나는 감사하게 주어진 이 삶 동안 온전한 내 자신이 될 것이라고 말하며 문학을 하겠다고 했다. 이 세계의 본질을 탐구하는 세 가지 장르 과학, 종교, 예술 중에서 나는 예술의 가치를 절대적으로 신뢰하고 예술만이 무의미한 생을 해볼만한 싸움으로 승화시킬 수 있다고 믿는다며.


하지만 내가 이렇게 말한다고 한들 그들이 뭘 할 수 있겠는가? 마찬가지로 내가 이렇게 말한다고 한들 무슨 천지개벽할 변화가 바로 일어나겠는가? 나는 당장 생업을 무책임하게 던져버리지도 않을 것이며 꿈과 이상을 핑계삼아 무위도식하며 부모에게 손벌릴 생각도 없었다. 로맹 롤랑은 <장 크리스토프>에서 어떤 이가 자신의 삶에서 책무를 다하고 있다면, 그 삶을 실은 전혀 좋아하지 않는다고 자유롭게 말할 권리도 주어야 한다고 했다. 인간은 날 때부터 자신을 둘러싼 환경을 선택할 수도 없는 부조리 속에 던져진다. 좋아하는 것만을 하고 살아갈 수 없고, 심지어 스스로 내린 선택도 예측가능한 최선의 결과를 보장할 수 없다. 우리는 다가올 변화도 전혀 알아차리지 못한 채 한 치 앞을 못 보고 살아간다. 그건 좋은 변화든 나쁜 변화든 마찬가지다. 나는 더이상 꿈을 꿈으로 내버려두지 않기로 했다. 생의 업을 그대로 진 채 투쟁하기로 결심한 것이다. 부모는 더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나도 말없이 내 삶을 바꾸려 안간힘을 쓰기 시작했다.






시인이 되기로 결심한 이후, 나는 독서를 제대로 하기 시작했고 그로 인해 작은 변화들을 만들어냈다. 물질적 소비에 있어서는 더 검소하게 살고 있다. 나는 옷과 화장품을 최소한으로 쓰며 저축을 많이 하고 사치품을 일체 사지 않는다. 요즘에는 육식에 대한 회의가 들어 채식의 날을 며칠 정해두고 살고 있다. 엄마는 얼마 전에 남들이 명품을 너도 나도 사니 이 사회에서 잘 살아가기 위해서 나도 하나쯤은 갖춰야 한다고 말했다. 엄마가 시인이 되겠다는 내 선언을 아무래도 전혀 이해하지 못한 것 같기에 나는 코웃음을 쳤다. 바로 그런 생각때문에 너도 나도 하나씩 사는 것이라며, 내가 그것을 갖고 싶다면 모르겠지만 욕망도 필요도 없는 소비는 나에게 아무런 만족을 가져다 주지 못한다고 대답했을 뿐이다.


하지만 내가 돈을 아낌없이 쓰는 데가 하나 있는데 그것은 문화 예술이다. 우리 부모는 내가 단지 음악을 듣기 위해, 그림을 보기 위해, 그림을 그리기 위해 다른 데서 절약한 돈을 써버리는 것을 보고 내가 욕심이 없는 것이 아니라 실은 가장 사치스럽다는 것을 깨달았다. 예술은 본질적으로 어떤 대가나 보상을 바라고 하는 행위가 아니기에 무상적이다. 아무런 대가를 받을 수 없음에도 시간과 노력을 쏟는 행위 만큼 사치스러운 것이 있을까? 예술은 가치 교환을 초월하여 온전한 자기 자신이 되겠다는 표현이기에 그 자체로 사치의 절정이다. 현대의 젊은 세대들에겐 먹고 사는 문제 만큼이나, 혹은 그보다도 더 자기 개성의 탐구와 표현이 중요하다. 산업화 시대로 접어들면서 노예나 다름없던 일반 대중의 삶을 시민의 삶으로 끌어올리는 데는 이미 이전 세대에서 성공했다. 그러나 살아있는 자는 항상 더 나은 것을 열망한다는 법칙 하에 이 또한 끝이 아니다. 물질적 자유를 어느 정도 확보한 다음 세대는 그 다음 단계로, 그리고 어찌보면 최종적으로 정신적 자유를 원한다. 우리 모두는 자유롭고 싶다. 엄마는 젊은 세대의 불만족과 열망의 표출을 나뿐만이 아니라 우리 동생, 그리고 다른 엄친딸들에게서도 몇 년간 발견하고서는 결국 세상이 달라졌고 이들이 원하는 것이 달라졌다는 것을 이해했다. 그리고 이렇게 말했다.



- 얘, 너넨 참 고급이다.



나의 친구는 이 멘트를 전해듣더니 마치 배우 윤여정이 투덜거리는 젊은 사람들을 향해 하는 말 같다며 한참을 웃었다. 다시 보니 윤여정 선생님의 목소리가 귀에 맴돌면서 어떤 표정과 몸짓으로 저 말을 했을지 확연히 상상이 가 미소가 지어졌다. 자신이라면 그저 감사하고 살았을 모든 조건을 갖추고도 도무지 만족을 모르는 젊은 세대에게 우리 엄마가 가한 일격이다. 그도 그럴 것이 우리 엄마는 대한민국의 장녀가 밟아야만 하는 트랙에서 단 한번도 이탈한 적이 없다. 집안 살림, 동생들 케어, 대학 포기, 빠른 취업, 의무적 결혼, 경력 단절, 시집살이, 독박 육아...이 모든 것은 개인의 만족도와 삶의 수준과는 상관없이 그 시대 여성으로 태어난 자들에게 주어진 모든 속박들이다.


그래서 내가 욕심이 많다는 엄마의 마지막 힐난은 일종의 부러움이었다. 자신이 겪어야 했던 많은 부조리를 이제는 겪지 않아도 되거나 당당히 거부할 수 있는 위치에 있으면서도, 더 나은 삶을 쟁취하고자 하는 그 엄청난 욕망 자체가 엄마에겐 자유의 표상으로 느껴졌던 것이다. 자유를 감히 꿈꾸지도 못하는 자는 자유를 적극적으로 좇는 자를 동경한다. 어떤 이는 결과적으로는 어차피 둘 다 부자유 상태에 있으니 다를 게 없다고 생각하겠지만 적극적으로 무언가를 좇아본 이들은 안다. 결국 내가 자유인이 될 수 없다 하더라도 무언가를 추구하는 열정이 펼치는 삶의 폭이란 완전히 차원이 다르다는 것을.


인간의 위대함이자 삶의 아름다움은 미지에 도전하는 무모성, 희박한 성공률을 알면서도 시도하는 대담성, 힘든 길임을 알면서도 그것을 선택할 수 밖에 없는 싱클레어들에게 있다. 주말 아침에 일찍 일어나 공원을 걷고 책을 읽고 시적 관찰을 열심히 스케치하는 나의 나날들을 우리 부모는 여전히 말없이 지켜보고 있다. 표면적으로는 아무런 변화도 없는 것 같지만 생각해보면 엄청난 변화가 있다. 이제 그들은 더이상 옛날과 같이 세상 모든 사람들은 다 그렇게 산다, 원래 다 그렇게 사는거다, 라는 말을 하지 않는다. 가장 본질적인 변화는 그렇게 비밀스럽게 서서히 진행되는 법이다. 그리고 얼마 전 재즈 음악을 들으러 가는 내게 엄마는 언제 엄마가 이랬던 적이 있는가 싶었을 정도로 당차게 외쳤다.



- 그래, 우리 딸이 행복하다면 그게 좋은거다. 해 봐라, 청춘을 즐겨라!



나는 오늘도 시인이 되기 위해 거리로 나선다. 자세히 뜯어보면 정말 이상한 점이 셀 수도 없는 세상 속으로 파고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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