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숲이김 Dec 28. 2021

엄마의 신년운세


'사주'라는 것을 처음 알게된 건 친구들의 엄마 덕분이었다. 내 주변 친구들 모두는 각별히 사주에 관심 있으신 엄마를 두었다. 친구들으로부터 특정 시기—이를테면 연말, 연초, 취업, 대입—가 되면 엄마가 사주를 보러갔다는 이야기가 들려왔다. 보살들이 말한 통계적 인생 흐름을 들으며 이건 맞다 저건 그런가 일일히 되짚어보는 것이 재미있다고 느껴진 것은 20대 중반 쯤, 그러니까 내 인생도 영 계획대로 풀리지만은 않는다는 걸 발견하면서 부터다.


엄마에게서 어릴 때부터 자신의 사주를 전해들은 친구들은 사주를 보는 것에 큰 관심을 가지고 본인들이 직접 나서서 보러 다녔다. 하지만 나에겐 사주를 보는 데 거대한 장벽 하나가 있었다. 사주란 내가 태어난 시간이 언제인지를 알아야 하는데 이게 무슨 장벽이냐 싶을수도 있겠지만 우리 엄마는 내가 태어난 시간을 물었을 때 이조차도 알려주지 않으려고 했다. (나는 이 때 삶이란 정말 마음대로 되지 않는다는 인간의 운명을 실감했다. 내 인생인데 내 인생이 시작된 시간조차도 남에게 물어야만 하다니?)


태어난 시간을 알려달라고 하자 그 때부터 엄마의 취조가 시작되었다. 그런 '극비 개인정보'는 함부로 알려주면 안되는 것이라고 일장연설을 한 것이다. 하지만 극비 개인정보라고 하기엔 나는 인터넷에서 내 생년월일을 기입하면 나오는 타로라던지 별자리 운세 등은 이미 본 경험이 많았다. 이를 실토하니 엄마는 분개했다. 그런 개인정보를 함부로 자진해서 유출한다는 것이 정신머리가 없는 행동이라고 나를 탓하며 태어난 시를 알려주지 않겠다고 했다.


- 어린게 그런 걸 왜 보러 다니노?


- 그냥 궁금하잖아요.


결국 나는 아빠에게 가서 내가 태어난 시간을 물을 수 밖에 없었다. 아빠도 그걸 왜 물어보는지부터 먼저 물었다. 사주 보려고요, 라고 답하니 아빠는 웃기만 했다. 나는 그 미소를 태어난 시를 알려주겠다는 아빠의 호의적 답변으로 알아들었으나 아빠는 우리 집안에서 나와 가장 닮은 사람으로 호기심만 강할 뿐 철저함은 떨어졌기에 그도 모르는 건 마찬가지였다. 낮인지 밤인지는 알 거 아니예요? 낮이었던 것 같은데.


2018년 여름에 그런 두루뭉술한 시간대를 가지고 일생 최초로 복채까지 준비해서 운세를 보고 왔다. 친구와 함께 그 친구의 어머니가 주기적으로 찾아가는 보살의 말을 경청했다. 내가 다른 도시까지 버스를 타고 갔기에 여행을 간 줄 알았던 엄마는 내가 그 곳까지 가서 사주를 보고 왔다는 말을 듣고 구박을 시작했다.


- 난 여태까지 살면서 단 한번도 그런 거 본 적 없다.


- 궁금할 수도 있죠.


- 정해진 팔자가 어딨노? 다 자기가 하는대로 산다.


저 호기로운 멘트가 다른 사람에게서 나왔다면 믿었겠지만 그것이 엄마였기에 전혀 믿음직스럽지 않았다. 우리 엄마는 불교 신자로 적당한 날에만 절에 골라가는 라이트 신자가 아니라 절의 중대한 보살 커뮤니티에 속한 사람이다. 난 엄마가 부처님께 기도 드리면서 우리 딸 잘되게 해달라고 밑도 끝도 없는 청원을 하는 모습을 여러번 본 바 있다. 다 자기가 하는대로 사는 거라면서요? 내가 부처님 앞에서 뻣뻣하게 서서 웃으면서 말하자 엄마는 합장하고 허리를 숙이며 시끄럽다고 복화술로 내 욕을 했다.


그리고 2021년의 연말이 와버렸다. 사주 보러 다니는 어머니를 둔 친구를 여럿 둔 장점이 가장 극대화되는 시기라고나 할까? 부모님의 영향으로 어린 시절부터 사주에 조예가 깊은 친구들이 나서서 사주를 보러 다녀오고, 공부를 한 친구들이 사주를 봐주겠다고 하는 시즌이 도래한 것이다. 태어난 시를 알아오면 사주를 봐주겠다는 친구의 말에 나는 엄마에게 다시 연락했다.


- 태어난 시가 언제인지 알려달라고요.


엄마는 또 시작이라고 궁시렁거리더니 이번에 이렇게 말했다.


- 모른다.


그럼 여태까지 몰랐던 걸 마치 알고 있는 양 개인 정보라느니 천기누설이라느니 온갖 핑계를 댄 것이었냐고 내가 궁시렁거리자 엄마는 말이 없어졌다. 나는 육아수첩이든 뭐든 찾아서 빨리 태어난 시를 알려달라고 졸랐다. 그러자 엄마는 갑자기 자기가 사주 보는 법을 알려주겠다고 했다.


- 여러 개 해봐라.


- 아니 태어난 시를 알아야 한다고요. 시간마다 결과가 다르잖아.


- 여러 개 다 넣어본 다음에 제일 좋은 걸로 해라.


정말 사주의 기본도 모르는 이런 황당한 주장이 계속 되었기에 화난 척을 며 정보를 빼내보려 했지만 웃음이 터져 실패했다. 엄마는 생각 많아서 불행할 바엔 단순하고 행복한  차라리 낫다고 했는데 인생은 저렇게 살아야 하는걸까? 모든 시간대  넣어보고 가장 좋은 사주를 내키는 대로 선택하는 그런 마음으로?


하지만 엄마는 이번엔 이렇게 덧붙였다. 아침이었던 것 같다. 이 정보는 낮이냐 밤이냐만을 알고 있던 몇 년 묵은 미스터리를 한번에 해소할 만한 중대 정보였다. 이렇게 나는 내 탄생시각을 약 7년만에 알게 되었다. 아.침.이.었.던.것.같.은.데. 이런 숫자 하나 들어가지 않은 답변으로.


내가 원하는 답을 얻고 당장 가버릴 태세를 취하자 엄마는 이렇게 말했다.


- 니 인생에 사주 볼 일은 딱 한번 뿐이다.


- 언제요?


- 니 결혼할 때 궁합이나 맞춰봐야지.


- 태어난 시 모른다면서요?


- 그 땐 없는 시라도 만들어내지~


에휴. 그 때도 모든 시간대 사주 다 알려달라고 해서 제일 좋은 걸 선택하겠지. 어쨌든 덕분에 친구에게서 사주 풀이를 들을 수 있었다. 친구 피셜 내 신년 운세 중 한마디만 공개하면 이렇다.


'변화가 다가옵니다.'


왜 다 말하지 않느냐고? 그건 개인정보에 천기누설이라 그렇다.


혹시 사주를 한번도 본 적 없거나 나처럼 태어난 시를 잘 모르시는 분은 내가 사주를 봐줄 수도 있다. 그런데 배운 게 도둑질이라 나는 우리 엄마의 방법을 따를 것이다. 모든 시간대를 다 본 후에 가장 좋은 것을 선택하고 믿는 이런 방법도 당신의 근하신년을 만들 수 있다면야!





매거진의 이전글 안내견 옆의 우는 여자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