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환자를 간호했던 기억 그 한편에서.
기억 속 환자는 30대 여성이었다. 내성적이지만 온화해 보였고 피부가 새하얀, 미모가 빼어난 환자였다.
누군가의 아내이자, 꼬마 아이의 엄마였던 그녀는, 췌장에서 떼어낸 조직 검사의 결과를 기다리며 며칠 동안 입원해 있었다. 그녀는 늘 침상 사이에 있는 커튼을 완전히 쳐놓은 채 항상 근심 가득한 표정이거나 무표정이었다. 묻는 질문에 답을 하는 것 말고는 어떤 이야기도 먼저 하는 법이 없었다. 눈을 맞추고 대화하려고 시도해보기도 했지만, 다가서기에 쉽지 않았다. 그녀의 큰 키와 붉은 혈색은 결코 그녀를 아픈 사람처럼 보이지 않게 해 주었다. 그런 그녀에게도 도무지 환자복은 어울리지 않았다.
며칠이 지났고, 애석하게도 그녀의 조직 검사 결과는 '췌장암'이었다. '항암치료'를 받고 난 후 그녀가 퇴원하는 것까지를 지켜봤다. 몇 개월이나 지났을까, 우연히 다시 입원한 '그녀'를 복도에서 발견했다. 놀랍게도 몇 달 전 내가 봤던 그 모습과는 완전히 달라진 모습이었다. 혈색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졌고, 큰 키와는 이질적으로 느껴지는 쇠약함이 이제 그녀를 영락없이 '환자'처럼 보이게 했다. 넘어지지 않도록 조심스레 발걸음을 옮기고 있는 모습에, 이제는 더 이상 환자복도 어색해 보이지 않았다.
악성 종양은 뼈로 전이되어, 그녀는 어깨 통증을 심하게 호소했다. 간호사와 말 섞기를 꺼려하던 그녀였는데, 이제 간호사에게 자신의 통증과 진통제 효과에 대해 가감 없이 적극적으로 의사 표현을 했다. 외형적인 모습뿐만 아니라 내성적이고 말 없던 그녀의 성격도 이제 적극성과 심지어 공격성마저 느껴질 정도로 돌변해있었다. 불과 몇 달 전에 봤던 그녀와는 이젠 너무도 달라져버린 것이다. 몇 달 사이에 사람이 이렇게나 통째로 바뀔 만큼 '암'은 정말 두려운 존재인 걸까. 그런 그녀를 보면서, 나는 그녀의 옆에 있는 가족들에게도 자꾸만 시선이 갔다. 남과 다름없는 나조차도 갑자기 돌변해버린 그녀가 무척 당황스러운데, 이렇게 변해가는 그녀를 옆에서 계속 지켜봐야 했던 가족들의 마음은 또 어땠을지 괜한 걱정마저 들게 만든 그녀의 모습이었다.
모든 것을 낯설어하고 어색해하는 지금 내 눈앞에 이 청년을 보고 있자니, 문득 그녀가 떠올라 잠깐 회상에 잠겼다. 이 건강하고 생명력 넘치는 모습이, 언제 그랬었느냐는 듯, 아주 갑작스레 시들어가는 걸
지켜봐야 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그래, 아직은 모르는 일이야.
솔직히... 차라리 모르고 싶은 마음이야.
"오늘은 추가로 특별한 검사는 없을 거예요. 혹시 궁금한 게 있으면 언제든지 말씀 하시구요. 편히 쉬세요." 환히 웃으며 그에게 마지막 인사를 건넸다. 다행히 처음 봤던 모습과 달리 그는 조금은 긴장이 풀린 것 같았다. 그가 아프지 않기를, 덜 고통스럽기를, 부디 치료 가능한 수준이기를. 그렇게 바라며 나는 병실을 떠났다.
서른 살 환자는, 며칠 후 악성 종양 확진 판정을 받았다.
프로이트는 전쟁과 죽음에 대한 고찰에서 ‘마음속 깊은 곳에서는 아무도 자신의 죽음을 믿지 않는다.’라고 했다. 우리는 ‘죽음’ 이전에 자신에게 ‘암’과 같은 질병도 우리에게 찾아오지 않으리라 믿고 사는지 모르겠다. 나 또한 어딘가가 불편하거나 아프면 ‘설마’라는 걱정을 하면서도 왠지 모르게 ‘나는 아니겠지.’라는 믿음이 그 걱정을 눌러 내려주곤 했으니까. 하지만 내게도 일어날 수 있는 일이고, 언제든 일어날 수 있는 일이다. 언제나 ‘나는 괜찮을 거야.’라는 근거 없는 확신은 되려 아픈 타인을 두고 막연한 동정심만을 일으키게 되는 것 같다. '병원에 입원하는 환자들은 언제든 내가 될 수 있고, 나의 가족이 될 수 있다는 점을 잊지 말아야지.' 하는 진부한 이야기는 어쩌면 실제로는 진부하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