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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민경 Aug 10. 2018

간호사가 드리는 글.

말기암환자 그리고 가족분들께.



종양내과에서 간호사로 일하면서, 수많은 암환자와 그의 가족 분들을 만났습니다.


누워서 밥을 먹어야 하는 아들에게 정성스레 밥에 김을 싸서 먹여주던 노모,

서로 교대하며 밤을 지새우고 엄마를 간병하던 두 따님,

아픈 아내 앞에서는 누구보다 씩씩한 척을 하며 힘을 주고 싶어 했던 남편,

의식이 온전치 않은 아내를 위해 기꺼이 손과 발이 되어주던 할아버님,

치료에 협조적이지 않은 아들에게 거의 울다시피 애원하던 엄마,

아무것도 먹지 못하고 있는 아버지 곁에서 미안한 마음에 함께 밥을 굶고 있던 아드님,

예민해져서 남편이 모질게 뱉는 말에도 끝까지 곁을 지키고 있는 아내.


이렇듯 여러 암환자 분들과 그의 가족 분들께서 제게 남긴 잔상은 아직도 눈에 선하기만 합니다.


Photo by Cristian Newman on Unsplash



그들은 제게 단순한 환자와 보호자가 아니었습니다.

이따금씩 환자와 보호자로부터 제 엄마의 모습, 할머니의 모습, 삼촌의 모습을 발견하곤 했습니다.

아마도 이 생각을 하게 된 이후부터 태도가 달라졌던 것 같습니다.



만약 내 눈 앞에 고통스러워 하는 이들이 나의 가족이라면...



가능하다면, 사람과 사람으로 마주하여 아픔을 들어주고 도와드리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실제 임상 환경에서 그럴 시간적, 심리적 여유를 찾기가 쉽지 않았던 것 또한 사실입니다.


언젠가 한 번은 한 환자분의 아드님이 급히 제게 어머니의 장루 교환을 부탁하셨습니다.

그의 어머니는 오늘, 내일 중으로 임종할 가능성이 높은 말기암환자셨습니다.

저는 그 때 다른 담당 환자의 응급 상황 때문에 너무 바빠서 그 병실에 들어가질 못하고 있었습니다.

장루를 교환하는 일은 응급도에 따른 우선 순위에 밀리는 일이었기에, 제게 십여분의 여유 시간이 생겨야만 그녀를 도와드리는 게 가능했죠.

미처 제가 그 병실에 들어가기도 전에 그녀는 생을 마감했습니다.

저는 아직도 그 날이 너무 죄송스럽습니다.


이렇게 몸과 마음이 따로일 수밖에 없는 병원 환경입니다.

 

저는 간호사이기 전에 한 사람이었고, 유독 마음이 여린 편이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암환자 분들과 가족 분들의 마음이 어떨지 자꾸만 감정이 이입 되곤 하였습니다.

누군가의 죽음에 반복적으로 노출될 수밖에 없는 환경이 부담스럽기도 하고,

죽음에 대한 두려움에서 벗어나기까지 한참을 걸렸습니다.

무엇보다 저와 교감을 하며 지냈던 환자의 사망은 제게도 큰 슬픔이었습니다.

그 슬픔에 무뎌져야만 한다는 것도 간호사인 제게 정말 힘든 일이었습니다.


하지만, 일을 하기 싫다가도 막상 시작해서 환자들을 직접 마주하고, 눈을 맞추고, 이야기를 듣고 전하다 보면 그리고 서서히 나아지는 것을 볼 때면 힘이 났습니다.

또한, 언젠가 제 자신이 너무 싫고 삶에 무기력해졌던 때, 제게 환히 웃으며 ‘고맙습니다. 수고하셨어요.’ 인사해주신 덕분에 조금씩 극복할 수 있었습니다.


또한, 내가 죽는 순간 곁에 있어줄 존재는 오직 가족뿐이라는 걸 배웠습니다.
사랑의 소중함을 눈으로 볼 수 있었습니다.  


이렇게 누군가를 간호하는 일을 하면서, 저는 오히려 많은 것을 배우게 되었습니다.


Photo by Janko Ferlič on Unsplash





감히 제가 이런 이야기를 건넬 자격이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아무리 열악한 상황일지라도 그 앞에서 눈물만 지을 것이 아니라 작은 의미와 재미를 찾는 것을

끝까지 놓치지 않길 바랍니다.

어쩌면 눈 딱 감고 생각을 전환시키는 게 필요할 지도 모릅니다.

비록, 암환자이더라도 부디 살아있는 동안 누릴 수 있는 많은 행복을 느끼실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우리는 그 어떤 상황에 놓여도 어느 순간엔 행복할 수 있는 존재입니다.

오히려 죽음이 가까이 있어서 살아있다는 것의 가치를 누구보다 제대로 느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슬픔과 좌절에는 잠시만 머물다가, 살아 있는 지금 이 순간 맞이할 수 있는

넓은 삶의 세계로 다시 나아갈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부족한 글 솜씨지만, 여러분들에게서 느꼈던 감정과 생각들을 한 권의 책으로 엮게 되었습니다.

제가 간호했던 수 많은 환자 분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제게 '고맙다, 수고했다' 늘 인사 전해주셨던 보호자 분들께도 감사드립니다.







책 자세히 보기 -> www.aeterni.co.kr/nightinga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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