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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민경 Jul 29. 2018

우리에게도 일어날 수 있는 일 <1>

올해로 서른인 젊은 남성 한 분이 입원 예정에 있었다. 그는 얼마 전 다른 병원에서 이미 암을 진단받았고, '오진은 아닐까' 하는 심정에 병원을 바꿔 재검사를 하기로 되어있었다. 내게 주어진 그날 업무는 그를 병동에서 첫 번째로 맞이하여 입원 수속을 돕고 설명드리는 일이다. 나와 비슷한 또래라는 것 때문이었을까. 다른 환자들을 맞이할 때와는 사뭇 다른 기분이 느껴졌다. 이른 나이에 암 선고를 받은 그의 지금 심정이 어떨지, 나로선 감히 상상할 수 없는 일이었다. 이렇게 큰 병원에 입원하는 것은 처음이겠다는 생각 정도는 할 수 있었기에, 최대한 편하게 해 주자는 마음으로 그를 맞이할 준비를 했다.



정말 암 환자가 맞는 걸까?


첫인상을 통해 든 의문이다. 겉보기엔 누가 봐도 암 환자로 생각할 수 없을 만큼 혈색이 붉고, 건장한 청년이었다. 아직까지는 특별히 호소하는 증상 또한 없다는 그였지만, 이미 폐와 간에도 전이가 의심된다는 검사 결과를 들고 왔으니, 나 또한 그의 암 판정을 믿고 싶지 않았다. 


"안녕하세요, 혈압 측정하고 입원 생활 안내 도와드리려고 왔어요." 

환자복으로 갈아입은 그의 모습이 너무 어색해 보였다. 내가 다가가자, 그가 분주하게 침상 위에 올려놓았던 옷가지들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간호사가 편히 혈압을 측정할 수 있도록 자리를 마련해주고자 하는 배려처럼 느껴졌다. 한껏 긴장해서인지 그의 움직임 하나하나가 굳어 있었고, 그런 그를 지켜보는 내내 나는 안쓰러웠다.

 

그는 입술에 살짝 힘을 준 채, 긴장한 티를 내지 않으려고 애쓰고 있었다. 그에게서는 병원이라는 낯선 공간이 주는 경계심과 자신이 어쩌면 정말 암 환자가 맞을지도 모른다는 절망감, 그렇지 않기를 바라는 희망 등이 뒤섞인 듯 오묘한 감정이 느껴졌다. 나는 천천히 하셔도 된다는 말을 최대한 다정하게 전했고, 그가 차분히 침대에 앉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런 그를 보고 있자니 문득, 얼마 전 내가 느꼈던 병에 대한 불안감이 떠올랐다. 며칠간 목 주편의 임파선이 심하게 부어오르고, 바이러스가 코 점막까지 침범해 심하게 헐어서 힘들었다. 평소와 다른 몸의 변화에, '혹시 심한 병에 걸린 거 아닐까.'라는 두려움이 엄습했다. 물론 암병동 간호사로서 오랜 시간 죽음을 가까이에서 지켜보다 보니 생긴 예민함도 한몫했다. 곧바로 병원 진료 예약을 했고, '별거 아니라는' 식의 의사의 눈빛을 확인하기 전까지 나는 혼자 별별 상상을 다 하면서 걱정 속에서 하루를 보내기도 했다. 그때 내가 느낀 병에 대한 불안감 정도를 가지고, 현재 암 선고를 받고 입원을 앞둔 눈앞에 환자의 그것과 감히 비교를 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럼에도 병에 대해 갖게 되는 인간의 공포감은, 우리 모두의 무의식에 존재하는 본질적인 두려움임에 틀림없다. 특히나 암과 같이 생사의 경계에 서게 될지 모를 병에 대한 두려움은 가히 상상할 수 없을 두려움일 것이다. 그러한 맥락에서 그는 정말이지 얼마나 두렵고 불안할지에 대해 나로선 도저히 알 수 없는 일이었다. 


그가 드디어 침대에 앉았고, 나는 차분히 병동 환경과 입원생활에 대한 설명을 시작했다.

그는 내가 하는 말이 끝날 때마다 "네, 네." 하며 몇 번이고 힘주어 대답했다. 그 모습에서조차 부자연스러움이 느껴졌다. 괜찮아 보이려는 것처럼 애쓰는 모습이 표정에서도 역력했다. 교육은 계속되었다. 누가 봐도 낙상할 가능성이 없는 환자에게 낙상예방 동영상은 꼭 시청해야 한다는 이야기를 전했다. 그때서야 그는 어이가 없다는 듯 웃음을 터뜨렸다. 그땐 나도 편하게 같이 웃어버렸고, 극도로 차분하던 공기가 그 웃음으로 조금은 가벼워졌다.

 

환자의 기본적인 상태를 파악하기 위해 몇 가지 질문을 이어갔다. 현재 그가 불편하게 느끼는 증상은 간헐적인 변비와 소변을 자주 보는 것 정도였다. 그는 스스로 증상에 대해 말하며 그다지 심하지 않다고 했다. 

그의 표정과 말투에는, 자신이 생각하기에 큰 문제가 없는데 정말 암이 맞는 건지 하는 의구심이 가득 섞여 있었다. 다른 암 환자들에게서도 볼 수 있는 모습이다. 돌이켜봤을 때, 누구나 앓고 지나갈 수 있는 정도의 증상에서 암은 시작되었다. 입맛이 없다거나, 배가 살살 아프다거나, 기침이 자주 난다거나, 소화가 잘 안 된다는 등의 살면서 누구나 한 번쯤 겪을 수 있는 불편한 증상들 말이다. 


물론 당장 생명에는 위협이 되지 않는 그저 작은 증상인 건 맞지만, 그렇게 시작된 악성 종양은 아주 빈번하게 환자를 생사의 기로에 세우곤 했다. 그는 정말 암 환자가 맞는 걸까. 여러 곳에 전이가 된 것은 사실일까. 수술로 암을 절제해서 완치될 수는 없는 걸까. 비슷한 또래라는 점에, 나는 그에게서 남다른 연민을 느끼고 있었던 게 분명하다. 그런 그를 보고 있자니, 언젠가 다른 환자에게서 이와 비슷한 감정을 품었던 기억이 떠올랐다. 그리고 그 기억의 당사자에게서 나는 사실, 적잖은 충격을 받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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