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에미치다] 부부가 운영하는 브랜드에 대한 꿈, 그리고 확증편향
부부가 함께 쓰는 다큐에세이
지난 이야기
3화
퇴사하면 뭐 하고 싶어?
성산대교를 바라보며 아내에게 물었다.
뭔가에 미쳐서 몰입할 수 있는 거.
돌아온 대답은 참으로 추상적이었다.
뭔가에 미쳤다는 말. 이것은 흡사 김연아 선수가 피겨 스케이팅에 미쳐있던 것처럼 뭔가에 홀렸다는 말일 것이다. 허나 나이 먹고 아는 게 많아진 상태에서 그렇게 순수하게 뭔가에 미치기란 사실 상 쉽지가 않았다. 더군다나 현실에 눈이 멀어야만 뭔가에 쉽게 미칠 수가 있었는데, 결혼까지 하기로 한 마당에 현실을 마냥 무시할 수만도 없는 노릇이었다.
“일단 우리가 그나마 잘 아는 실체 있는 제품이어야 해.”
두 사람 모두에게 공통적으로 살아오면서 관심이 가던 분야에서 뭔가를 찾아야만 했다. 생판 모르는 분야에 도전하는 건 너무나 무모한 일이었기 때문이다. 거기에 다량의 제품 생산, 공정이 많이 들어가는 제품에 대해선 심리적으로 많은 부담을 느꼈다. 또한 너무 트렌디하다거나 금방 소모되는 것들에는 둘 다 그다지 관심 없었다. 예를 들어 뷰티 시장이 아직 성장 중이라고 해서 마스크팩을 만들어 본다거나 유행 따라 흑당 버블티를 만든다거나 등등. 기술이 들어간 전자 제품도 마찬가지였다. 이를 테면 피지제거기, 소형 녹음기 등엔 아는 바가 없어 제외 대상이었다.
소규모더라도 지속 가능한 장인 정신을 담을 수 있는 제품. 여기까지 좁혀지니 ‘브랜드’라는 개념이 보였다. 사람들이 왜 자기 브랜드를 갖고 싶어 하고 또 운영하고 싶어 하는지를 조금은 알게 된 것. 접근이 용이하면서 결국, 실체 있는 브랜드 제품을 오랫동안 운영하고 싶은 건 나나 아내나 다른 사람들이나 다들 비슷하게 하는 생각인 것 같았다.
그래서 결론적으로 우린, 스카프 사업을 해보려 했다. 아직 시장에 대해 제대로 파악하기 전이었지만, 논의의 결과가 스카프라는 점엔 둘 다 크나큰 만족감을 느꼈다. 그 아이템이 가지고 있는 특성을 잘 활용한다면 우리가 담고 싶은 이야기와 의미들을 잘 풀어낼 수 있을 것 같았다. 왜냐하면 우리는 일차적으로 여성, 특히 엄마들을 위한 뭔가를 하고 싶었다. 거기에 제품이라는 실체가 있으면서 브랜드 및 장인의 세계를 꿈꿨다. 세계관이 일치하면서 제작에 많은 공정이 들어가지 않는 제품. 그렇게 스카프는 우리의 일차적인 사업 아이템이 되었다.
더군다나 스카프 사업의 경우, 우리를 도와줄 주변에 인적 인프라도 있었다. 외삼촌이 과거에 남성 브랜드를 운영한 적 있어 큰 성공을 거둔 바 있었고, 삼촌의 딸인 사촌 누나가 현재 또 다른 브랜드 제품을 운영 중이었다. 여기에 친구가 넥타이 브랜드를 직접 운영하면서 이탈리아 원단을 다루고 있었고 우리를 적극 도와줄 의향도 내비쳤다. 유통도 마찬가지로 선뜻 도와주겠다고 했다. 그 결과 우린 브랜드 이름까지도 탄생시켰다.
마테르니타 : maternita 라틴어로 모성이라는 뜻이다. 이름을 짓고 난 속으로 유레카를 외쳤다. (산부인과라는 뜻으로도 쓰여 브랜드 명으로 쓰기엔 무리가 있었다)
명분도 생겼고 주변에 우릴 도와주겠다는 사람들도 있었겠다, 결과적으로 이제 우리 부부의 결단만이 남아 있었다. 이 모든 과정을 준비하던 시절은 둘 다 아직 회사를 다니던 시절로, 결혼 준비를 할 시기와 맞물린다. 결혼식을 마치고 같이 살게 되면 둘 다 회사를 그만두고 곧바로 스타트 업 할 계획이었다. 그래서 신혼여행도 이탈리아로 갔다. 피렌체와 꼬모 지역에 들러 원단 업자도 만났다. 열심히 시장 조사를 하고 다녔다. 정말이지 당장이라도 회사를 때려치우고 시작하 자라고 하면 할 수 있었던 게 바로 스카프 사업이었다. 망하든 어쩌든지 간에.
하지만 그럼에도 선뜻 원단을 구매할 용기가 나질 않았다. 시장 조사를 하면 할수록 도무지 확신이 서질 않았던 것이다. 왜 우린 그 지점에서 자신이 생겨나질 않았을까.
일단 대충 봐도 적잖은 시간이 소요될 일이었다. 못해도 3년. 그 3년 동안은 아무래도 무일푼 아니 오히려 빚을 져서 쫒기 듯 생활해야 할 모습이 눈에 훤했다. 우리가 가지고 있던 자본금 5000만 원으로 우리가 원하는 이탈리아 원단을 구매하고 제작하고 마케팅, 유통 비용을 쓰고 나면 1년도 채 버티기 힘들어 보였다. 상투적이지만 현실의 벽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과는 비교가 안 될 정도로 항상 높은 곳에 존재한다.
더군다나 처음부터 우린 모든 것을 완벽하게 하고 싶단 욕심에 사로 잡혀있었다. 우린 우리 스스로 모든 것을 완벽하게 해낼 수 있다고 생각했다. 이를 테면 제품을 기획하고 원단을 수입하여 제작하고 마케팅 및 유통까지도 모든 것을 우리 둘이서 핸들링하려고 했다. 신이 아니고서야 사실상 이 모든 과정을 완벽하게 하기란 불가능한데도 우린 신이 되려고 했다. 설사 중간에 막혔을 때 이를 도와줄 인프라를 구축해놓은 것도 아니었다. 그냥 말 그대로 무대포식의 준비였던 셈이다.
무엇보다도 사업을 영유하기 위한 일련의 과정들에서 철두철미한 계획과 빈틈없는 행동력은 그리 중요한 것이 아님을 깨달았다. 제 아무리 하버드 경영학과 출신이라도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어떤 세계든지 그 세계에 발을 들이고 생존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선, 그 세계의 룰과 법칙을 먼저 익혀야 할 시간이 필요했다. 이것은 결코 지식이나 머리로 해결되지 않는 것들이다. 머리가 아닌 몸이 그것들을 체득해낼 동안 지치지 않고 버텨낼 수 있는 멘탈을 길러내는 시간과도 같다. 실물의 현실 세계엔 그런 게 존재했다.
한 번에 완벽하게 그리고 성공을 확신하며 성공만을 바라본 채로 일을 시작했다면, 그래서 중간에 무너져 내렸다면 어땠을까. 우린 아마도 쉽게 일어나기 어려웠을 것이다. 그 이유는 두 가지로 설명해볼 수 있다. 첫째, 만약 우리가 대학을 안 다니고 20대 초반부터 그 바닥에서 굴렀다면 그러한 역경이 크게 문제 되지 않았을 수 있었다. 20대 초반의 넘치는 활력은 우리가 넘어져도 다시 일으켜 세워줬을 것이다. 회복할 수 있는 충분한 시간도 있다. 하지만 그 시간에 우린 온실에 앉아 지나치게 사회화된 교육을 받아 온 부부에 불과했다. 학교라는 혹은 회사라는 틀에서 보호받고 교육받은 사람들은 그래서 기본적으로 그들과 생각하는 방식이 다르다. 예를 들어 우리는 잃는 걸 두려워한다거나 가진 걸 지키고 싶어 한다. 그래서 뭔가를 준비할 때 우리 같은 사람들은 자꾸 대안을 생각해내려 한다거나 빠져나갈 구멍에 대해 미리 생각한다. 이는 작은 울타리 안에서 서로 눈치를 보며 생존해온 결과라고 볼 수 있다. 그러나 한 세계의 밑바닥에서 굴러 오른 사람들은 우리처럼 보험을 생각하지 않는다. 그게 삶이고 직장이고 업이다. 한 마디로 그게 아니면 안 되는 것이다. 그래서 절박하다. 그들은 그래서 일반 직장인들과는 생각하는 방식이 아예 다르다. 절체절명의 위기 속에서 그것들을 견뎌 내며 체득해온 그들의 내공을 한가로이 대학교 강의실에 앉아 공부만 하던 우리 같은 사람들이 쉽게 체득하기 힘든 대상이었다.
둘째 호기심에 잠깐 울타리를 넘어가 봤더라도 거기가 무서우면 다시 울타리로 들어오려는 습성이 우리에게 아직 남아 있었다. 이런 습성은 결과적으로 절체절명의 위기를 견뎌낼 역치를 만들어 주지 못했다. 잃는 게 두려워 차선을 생각하는 등의 생각. 그래서 무너질 가능성을 굳이 만들려고 하지 않는다거나 무너졌을 때를 대비한 대안책을 준비하려는 습성. 결과적으로 이게 아니면 안 되는 절체절명의 절박함이 일반 직장을 다녔던 사람들에게 쉽사리 생기기가 어렵다.
생각해보면 주변에서 사업으로 빛을 본 친구들은 대학교 때부터 강의실에 앉아 공부를 하던 친구들이 아니다. 그 시간에 밖에서 거래처와 실랑이하고 부딪치고 돈도 다 잃어보고 하면서 실물 내공을 쌓아온 그들이다. 그 과정에서 빚도 져보고 도망갈 까 생각도 하고 그걸 견뎌내고 이겨내면서 온갖 못볼꼴을 다 본 사람들이다. 심지어 그들 중엔 취직에 전혀 걱정 없는 좋은 대학의 공대생들도 다수 포함되어 있다. 취업이 목적이 아니었던 그들은 대학교 때 이미 강의실이 아닌 곳에서 실패와 도전을 반복하며 세상을 알아버린, 철이 들어버린 것이다. 그래서 그냥 앉아서 공부만 한 친구들은 그들과의 거친 경쟁에서 쉽게 살아남을 수 없다. 쟤 아무리 머리가 똑똑해도 마찬가지. 이건 아이큐 200이라고 될 일이 아니었다.
어쨌든 우리도 마찬가지로 적어도 3년, 그 시간 동안 그 세계의 룰을 익혀가며 한 마디로 계속 마이너스, 빚쟁이로 살아야 하는 게 눈에 훤했다. 그걸 감당해낼 자신이 있었느냐. 그 배고픔과 굶주림을 감당해낼 자신이 있었느냐. 없었다. 도무지 확신이 서질 않았다. 울타리에서 보호받기 위해 살아온 우리 인생에 그런 마음가짐이 있을 리가 만무했다.
애초에 사업을 시작해서 돈을 벌겠다는 생각을 하는 것 자체가 문제였던 것 같다. 사업은 돈을 벌기 위해서 시작하는 게 아닌 것 같았다. 내가 다루려는 제품에 대한 사랑과 확신을 가질 때까지 버티고 그것이 세상에 알려질 때까지 또다시 버티는 한 마디로 존버 정신이 가장 중요한 것 같았다. 스카프가 아니면 죽느냐? 그것도 아니었다.
포기해야만 하나란 생각이 그 세상을 알면 알수록 절로 들어왔다.
좌충우돌 부부 성장기, 결혼에 미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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