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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민경 Jul 10. 2019

용감했던 부부 동반 퇴사, 1년후기

[결혼에미치다] 부부가 함께 쓰는 다큐에세이

'결혼에 미치다' 


 이전 이야기



 2화

부부 동반 퇴사의 이유를 물으신다면


(남편) 같은 경우, 주관이 뚜렷한 편인 데다가 맹목적인 일을 반복하는 것에 대해 개인적으로 숨이 막혀 오는 성격이다. 주장이 강한 가족 구성원들 사이에서 자란 덕에 생긴 기질이다 보니 쉽게 달라질 수 있는 대상이 아니었다. 그러다 보니 할 말은 되도록이면 해야 했고 불합리한 것은 바로잡아야 하는 피곤한 성격 탓에 회사 생활이 내겐 쉽지 않았다. 그럼에도 나에 대해 있는 그대로를 드러내지 않은 채 나를 나 이상으로 포장하는 법을 잘 알고 있어 회사 입사는 어떻게 할 수가 있었다. 하지만 어느 곳엘 가도 1년을 버티는 게 힘들어 여러 번 입사와 퇴사를 반복했다.


나와 달리 아내는 책임감이 강하고 겉으로 속마음을 쉽게 드러내지 않는 편이다. 묵묵히 자신에게 주어진 일을 끝까지 해내는 성격이여서 어딜 가나 예쁨 받는 스타일이었다. 어딜 가도 사랑받던 와이프는 그렇다면 왜 회사를 그만두었을까.


아내는 대형병원에서 말기암환자를 간호했다. 직업의 특성상 많은 환자들이 죽어가는 모습을 눈으로 직접 지켜봐야만 했다. 어느 날, 우리와 비슷한 또래 젊은 친구가 말기 암 판정을 받고 입원했고, 그는 자신의 처지를 비관하여 자살을 시도했다. 그의 모습을 아내가 직접 목격했는데 그 뒤로 아내는 우리들 삶이 가진 불완전성을 인지하게 되었다. 삶의 위기감에 휩싸인 와이프는 한 번 사는 인생 죽음이 찾아들기 전까지 제대로 살아내고 싶은 간절한 마음으로 미련 없이 병원을 나온 케이스다.


계기도 성격도 달랐지만 우린 결국  살기 위해 퇴사했다. 그렇다고 나침반과 등대도 없이 무작정 표류를 결정한 건 아니다. 다른 이들처럼 나름대로 비장한 계획과 믿는 구석 또한 있었다. 열의도 가득 차 있었다(‘우린 달라.’라는 안일한 생각도 마찬가지). 회사 밖을 나가게 되면 둘 다 막연하게나마 세상에 선한 영향력을 주는 일을 하고 싶었다. 이 추상적인 말들이 구체적이 될 때까지 지치지 않을 준비도 열심히 했다. 죽이 되든 밥이 되든 아니면 죽도 밥도 안 되더라도 우리 선택대로의 삶을 살고 책임지기로 마음먹었다.


그렇게 1년.

현실은 진부하리만큼 냉혹했다. ‘적당히’란 말이 통용되지 않는 현실 앞에 존재의 무력감을 거듭 느껴야만 했다. 세상을 향한 나름대로의 결의에 찬 날갯짓은 피차 파리의 날갯짓과 흡사했다. 선한 영향력이라는 막연한 생각들도 이 사회에 그저 무영향을 줄 뿐이었다. 그래서 곧 있으면 탈탈 털어 땡전 한 푼 안 나올 지경에까지 이르렀다. 좋은 영향력은커녕 세상엔 무영향 우리에겐 악영향을 줄 지경에 다다랐다.


결국 돈 문제들 때문에 위기상황이 찾아들 때면, 본능적으로 ‘사업은 무슨 사업이냐 다시 회사나 들어가자.’라는 생각이 먼저 든다는 것을 고백하지 않을 수 없다. 더군다나 나이가 들면서 주변 친구들이 회사 생활로 높은 연봉을 받고 아이를 낳아 안정적으로 가정생활을 해나가는 모습을 보게 될 때면 마음이 더욱 싱숭생숭해졌다. 현실과 동떨어진 삶 속에서 ‘삶’과 ‘이상’ ‘선한 영향력’ 이런 추상적인 단어들에 중독되어 가는 우리는 점점 더 위태로워졌다. 굶주림 앞에 그러한 단어들이 도대체 무슨 소용이더란 말이냐.


그러나 그렇다고 이대로 쉽게 물러설 수만도 없었다. 이렇게 죽도 안 되고 밥도 안 된 채로, 스스로 패배자가 되어 다시 울타리를 복귀할 생각은 우릴 정말 힘들게 했다. ‘거봐라, 내 그럴 줄 알았다. 잘난 척, 남 다른 척하더니만 꼴좋네.’라며 사람들이 우리를 비웃을 것만 같았다. 그렇게 생긴 패배의식을 가진 채로 여생을 산다는 건 정말이지 너무나도 끔찍한 일이었다. 더군다나 고기도 먹어본 놈이 더 잘 먹는 법인데 자유의 맛을 알아버린 이상 다시 돌아가는 게 쉽지만은 않았다. 다시 마음을 고쳐먹기 위해 주문을 걸어야 했다. 회사 밖을 나와 좋은 점이 뭐더라?


울타리 밖에서의 장점.


첫째도 자유, 둘째도 자유다.


아침에 일어나는 것서부터 자는 것까지를 모두 내가 결정한다는 것의 희열. 그러다 보니 회사를 다닐 때는 새벽 수영 가는 게 힘든데, 퇴사 후엔 새벽 수영도 갈 수 있을 만큼 열의가 가득 찬 나날들을 만들어 갈 수 있었다.

무엇보다도 가장 만족스러운 장점 중에 하나가 성수기, 주말 등을 피해 좋은 장소에 평일 언제든 갈 수 있다는 점이었다. 그래서 어딜 가나 그곳의 분위기와 정취를 있는 그대로 자유롭게 만끽할 수가 있었다. 그래서 인파에 섞이는 바람에 받아야 할 스트레스가 우리에겐 없었다. 또 그래서 우리는 자유로운 분위기 속에서 마음껏 생산적인 생각을 할 수가 있었다.

두 번째 눈치 안 보기. 정신 건강 영역. 이것 역시 결국 자유의 영역인데, 누가 정해놓은 기준, 회사로 치면 회사 내규, 상사의 판단 등 남의 판단 기준이 내 판단을 가로막지 않았다. 맞든 틀리든 내가 스스로 기준을 세워 판단하고 실행에 옮길 수 있었다. 그게 틀렸다고 해서 나 대신 책임져야 할 누군가에게 욕을 먹지 않아도 되었다. 내가 책임지고 다시 수정하고 보완하면 됐다. 이 과정을 통해 세상을 배워나갈 수 있었다. 이 과정이 정말이지 참 행복했다.


울타리 밖에 서보니 남들이 세워 놓은 기준이란 게 얼마나 나를 옭아매고 있던 것들인지를 알게 되었다. 그리고 그것들이 내 정신 건강에 얼마나 해로운 것이었는지도 말이다. 물론 울타리 안에 갇혀 있는 동안엔 그게 얼마나 나에게 해로운 것인지조차 자각하지 못한다. 경주마는 자기 시야에 걸맞게 앞만 보고 달려 나갈 뿐이니까.

결론적으로, 울타리 밖에서는 정서적으로 가장 행복하다. 놓치고 살았던 것들, 우물 안에서는 결코 볼 수 없었던 것들을 보며 행복이 뭔지를 배우고 느낀다. 아무리 강조해도 부족하지 않다. 백 번 천 번 이 능동적 삶은 참으로 행복하다.


세상에 공짜가 어디 있겠는가. 일장일단. 단점도 있다.


첫째도 돈이요, 둘째도 역시 돈이다. 신은 참 가혹한 것 같았다. 행복을 주는 대신 우리에게 배고픔을 줬다(물론 여기서 말하는 배고픔이 진짜 그 배고픈 걸 말하는 건 아니고, 먹고 싶은 거 사 먹을 때 돈 때문에 망설이게 된다거나, 사고 싶은 거 잘 못 사는 그 배고픔이다). 반대로 회사 다니는 동안 먹고 싶은 거 다 사 먹고 사고 싶은 거 웬만큼 사고 싶은 건 다 살 수가 있었는데도, 결코 행복하지 않았다. 직장 생활이야 열심히 시키는 일하면서 어떻게든 버티기만 하면 먹고살게는 해주는데 반에 회사 밖은 절대로 그렇지가 않다. 전쟁터도 이런 전쟁터가 없다. 승자가 독식하는 구조이다. 그래서 적당이란 말이 통용되지 않는다. 적당히 하다가는 굶어 죽는 게 가능하다.


둘째, 불확실성이 주는 불안감과 막막함이다.


정말 막막하다. 한 치 앞도 내다볼 수가 없다. 직장 다니는 친구들처럼 5년, 10년 계획 이런 걸 함부로 세울 수가 없다. 당장 내일을 1년 뒤를 그려보는 게 불가능하다. 이 불투명한 미래가 주는 불안감을 이겨내는 게 솔직히 쉽지가 않다. 그래서 늘 깨어있게 된다. 그래서 지금 이 순간에 살고 있다는 느낌을 강하게 받는다. 그래서 이 불안감이 단점인지는 사실 잘 모르겠다. 늘 깨어있기에 매번 심장이 쫄깃쫄깃할 따름이다. 무엇보다도 회사를 다닐 때 우린 공통적으로 1년 후 내 모습이 지금과 별 반 다를 게 없다는 점이 우리를 더 막막하게 만들었다. 5년 뒤 10년 뒤 지금보다 나아질 것도 달라질 것도 없이 내 인생이 여기서 끝날 것만 같아 하루하루가 서글펐다. 결국 이러나, 저러나 막막한 건 마찬가지였다. 회사에서 답을 못 찾았던 우린, 그래서 세상에 뛰어든 것이다.


그렇다면 굶어 죽지 않기 위해 그리고 이 불투명한 미래가 주는 불안감과 막막함을 극복하기 위해 우리 부부가 뭔가를 하긴 해야 할 텐데, 무슨 일을 해야만 할까. 이 전쟁 같은 삶 속에서 도대체 어떻게 먹고살아야 하지!? 통장 잔고는 이제 곧 있으면 바닥을 드러낼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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