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72일 간의 출근길을 정리하며
그 때 마포는.. 그냥 모든 걸 집어 삼킬 것 같았다.
어떠한 예술성도 없이 그저 사람들을 담기 위한 건축물로만 가득한 곳. 그 중에서도 우리 회사는 어디로도 떠날 수 없는 사람들만 남은 곳이었다. 밖에서는 받아주지도 않을 사람들이 여기서는 '차장'이니 '부장'이니 직함을 달고 아랫사람들을 괴롭혔다.
그래서 나는 언제나 마포를 '언젠가 떠날 곳'이라고 생각했다. 사회생활의 시작을 마포에서 했고 또 줄곧 몇 년이나 출퇴근을 했으면서도 나는 늘 그곳이 나를 주저앉힐까봐 두려웠다. 시간이 아무리 흘러도 그 도시와 친해질 수 없다는 걸 깨달았을 때는 콘크리트의 냉기가 서서히 식어가던 어느 봄날이었다.
판교로 이직 면접을 보러가던 날.
9700번 버스 창밖으로 펼쳐진 초록색은 면접 보러 가는 길이라는 것도 잊게 할 만큼 충격적이었다.
'판교 사람들은 이렇게 근사한 풍경을 매일매일 바라보면서 출퇴근을 하는구나, 그게 얼마나 행복한 일인지 모르겠지.'
나는 유치한 질투를 했다.
면접을 그다지 잘 보지 못했음에도(NC 다이노스 찬양만 하고 돌아왔으니까) 괜찮았다.
내 일상에 이렇게 많은 초록색을 끼얹은 것만으로도 그 날 하루는 괜찮은 하루였으니까. 정말이지 그 날 받은 색채의 자극은 컸다.
꿈에 그리던 회사에 꿈 같은 합격 메일을 받고 마침내 첫 출근을 하던 날.
맞은편 버스정류장에 내려 횡단보도 신호등이 바뀌기를 기다리는 동안, 나는 내가 들어갈 건물을 가만히 올려다 보았다. 그리고 그순간 나는 단번에 알 수 있었다.
나는 결국, 이 도시를 사랑하게 될 거라는 걸
판교는 온통 푸르다.
힘든 일이 있을 때마다 뛰쳐 나가기만 하면 품어줄 풀들과 받아줄 꽃들이 곳곳에 널려있다.
판교에 입성한 지 1년이 조금 넘었을 때 나는 회사를 한 번 옮겼다.
그리고 그 옮긴 회사에서 텃세를 아주 심하게 당해야 했다.
생각해보면 처음부터 이상하긴 했다.
남자들 사이에 여자가 딱 한 명 끼어있는 팀, 첫 날부터 나를 투명인간 취급하는 여자 팀원과 그 여자 눈치를 지나치게 살피는 남자 팀원들.
딱히 대단한 일을 하는 것 같지도 않고 예쁘지도 심지어 어리지도 않은데 이상하게 남직원들은 그 여자를 공주님처럼 대했다. 주간회의에 들어가면 '스텔라가 얼마나 일을 잘하는지' 찬양을 하는 시간이 앞에 10분 정도 늘 있었다. 이유도 웃겼다. 제안서를 예쁘게 잘 만들어서, 말을 또박또박 잘해서 같은 것들. 실상 그녀가 만든 제안서는 거의 다 템플릿이었고 내용들도 챗GPT를 시켜서 긁어온 것들이었는데 말이다. 그런데도 아무튼 그녀는 사무실의 공주였다.
그녀는 나를 불편해 했다. 대체로 그녀가 나를 무시하면 충직한 그녀의 남자들이 대신 괴롭히는 식이었다.
처리해야 할 잔업이 있어 퇴근 시간을 지나치고도 책상에 앉아있던 어느날이었다.
"릴리님 먼저 퇴근하세요~"라고 하기에 나는 이것만 마치고 가겠다고 대답했다. 그런데도 누구도 일어나지 않았다.
30분 정도가 더 지났을 때 여기저기서 한숨 쉬는 소리가 들렸다.
나는.. 무언가가 잘못되었음을 느꼈다. 그건 답답해서가 아니라 눈치를 주기 위한 한숨이었기 때문이다.
뭐지? 하고 옆자리 과장님을 쳐다봤더니 그제서야 마지못해 나에게 말했다.
"사실 퇴근하고 우리끼리 치맥 먹으러 가려고 했거든요. 릴리님도 같이 가고 싶으세요?"
그래서 내가 얼른 집에 갔어야 했던 거였다.
자기들끼리 놀고는 싶고 나를 대놓고 따돌렸다는 죄책감은 갖기 싫으니까.
그 '우리'에는 차장님의 아내분까지 포함돼 있었지만 신규 팀원의 자리는 없었나보다. 나는 한차례 괜찮다고 사양하곤 서둘러 집으로 돌아왔다.
그러니까 대개 이런 식이었다.
상식적이지 못한 일들을 겪을 때마다 나는 조용히 담요를 들고 탄천으로 내려가 키 큰 나무 앞에 쪼그리고 앉았다. 거기 앉아 나무에게 왜 내 편은 아무도 없을까, 어쩌면 회사를 또다시 옮겨야 할지도 몰라. 이런 하소연들을 했다.
가끔 바람이 불어 이파리가 흔들리기라도 하면 나는 나무가 위로를 해주는 거라고 생각했다.
나무 옆 벤치에 앉으면 슬쩍 예전 회사가 보였는데 거기 앉아서 많은 시간들을.. 옛 동료들을 사무치게 그리워하면서 보냈다.
팀원들은 몇 달이 지나자 은근슬쩍 자기들 무리에 나를 끼워주었다.
자기들끼리만 하던 '노마드 워킹'을 같이 하자고 하거나, 퇴근 후 회식 자리 같은 것들에 내 의중을 물어보기 시작한 것이다. 그러나 나는 그들과 어울리고 싶지 않아 홀로 다니는 쪽을 택했다. 나중에는 점심 운동을 핑계로 점심식사조차 따로 했다. 무엇보다 그쯤해서 새로운 팀원들이 하나둘씩 충원되었다. 여왕벌과 무리의 힘은 점차 약해졌고, 나도 어울릴 사람들을 찾았으니 그럭저럭 팀은 안정을 찾은 것처럼 보였다.
물론 공주는 새로운 여성 직원이 들어올 때마다 공용 계정을 승인해주지 않는다든지, 프로젝트 진행 단계를 공유해주지 않는다든지, 외근 나가는 팀원에게 법인카드를 일부러 전달해주지 않아 사비를 쓰게 만든다든지 등의 짓을 계속 했다. 그녀의 피곤한 행동은 가장 충성스러웠던 '이 과장님'이 다른 부서로 발령 받아 층을 옮기고 나서야 끝났다.
충원된 팀원들은 대부분 여자들이었는데 공주는 그 여자 팀원 모두와 한번씩 싸움을 하더니 결국 2024년 11월 회사를 그만두었다. 그 때조차 한마디도 못한 내가 너무나 병신처럼 느껴져서 가끔씩 자다 일어나 가슴을 퍽퍽 치는 날도 있었지만 그냥..
그 모두를 카톡에서 차단하는 것으로 인연을 매듭지었다.
판교의 머리 위로는 비행기가 난다.
처음에는 그것조차 좋았다.
비행기가 조금 낮게 날아오르는 날에는 아무도 모르게 하늘을 향해 조용히 손을 흔들기도 했었다. 승객 중 한 명 정도는 내가 보이지 않을까 말도 안 되는 기대를 하면서.
신분당선이 뚫리고나서부터는 빨간버스 대신 지하철을 타고 출퇴근하기 시작했다.
도시의 성격 상 젊은이들이 대다수인 곳이라 출퇴근길마다 요즘 유행하는 옷이 뭔지, 어떤 색깔이 인기인지 구경하는 재미가 있었다. 퍼석거리는 소재의 바지도, 스탠드오일 가방도, 은색 아이템들도 다 지하철에서 보고 따라 구매한 거였다.
또 겨울이 오면 탄천에 두루미떼들이 몰려드는 시기가 있다.
한두마리가 아니라 정말 수십마리가 개천을 채우고 앉아있는데 그러면 사람들이 출근하다말고 개나리교에 멈춰서 그 장면을 꼭 휴대폰에 담아간다. 매년 같은 시기인데, 매년 똑같이 사람들이 거기 서서 사진을 찍는다. 그럴 땐 인간들이 별수없이 좀 귀엽게 느껴지기도 한다.
봄이 되면 탄천이며 운중천이 온통 노란 금계국으로 물든다. 그게 판교의 절경이다.
양옆으로 금계국이 만개한 길은 마치 레드카펫처럼 어쩐지 초대받아 걷는 길같이 느껴진다. 중요한 사람이 된 것 같다. 죽지 말고 살아서 이 광경은 꼭 보라고 세상이 말해주는 것 같다.
이 찰나의 위안을 주기 위해 얘들도 혹독한 겨울을 견뎠겠지 괜히 고마워지기도 하고.
돌이켜보면 그 때 버스정류장에서 건물을 올려다보던 그 순간부터 나는 판교의 모든 것이 좋았던 것 같다.
맡겨놓은 곳마냥 달려가도 위안을 주던 아름드리 나무나, 유독 다른 지역보다 더 선명했던 철쭉 꽃들, 어쩐지 반가운 소식을 가져다 줄 것만 같던 성남시 시조(市鳥) 까치의 울음소리와, 단언컨대 대한민국에서 가장 맛있는 커피라고 자신할 수 있는 우드진 카페까지.
퇴근하고 동료들과 종종 모여 야구 이야기를 했던 수많은 솥뚜껑 삼겹살집과 양꼬치집들.
상쾌한 마음으로 건너던 개나리교, 나를 거쳐간 팀들 중에서 내가 가장 좋아했던-그 모든 시간을 거쳐서도 내가 유일하게 '우리 팀'이라고 부르는-야구 비즈실 팀원들과 점심 시간에 종종 걸었던 작은 산책길 같은 것들.
언제부터였을까 그런 판교가 귀찮아진 게.
30분을 일찍 퇴근해도 붐비는 지하철에 미간이 찌푸려지고, 머리 위로 비행기 소리가 들려도 더이상 올려다 보지 않게 되었을 때였나. 차창 밖의 꽃과 풀에도 더이상 아무 감흥이 느껴지지 않았을 때였었나.
내가 사랑해 마지않는 판교의 푸른 이파리 사이에서 아무렇게나 모여 담배를 피우고 있는 남자들과 눈이 마주쳤을 때였을까. 아니면 판교역에 내려 횡단보도 신호등을 기다리면서 무심코 ‘나 여기 너무 오래 있었다’ 라는 생각이 들었을 때였던가. 보행자를 기다려주지 않는 조급한 신호등과 버스들이 너무해도 정말 너무하다고 분노했을 때였을지도 모르지.
언제부터인지 정확히 짚어낼 순 없지만 그 즈음 했을 때. 그 때.
나는 여기가 더 싫어지기 전에 얼른 떠나야겠다고 생각했다.
사실 퇴사 결심을 한 건 작년 겨울께 쯤이었는데, 다정도 병이라고 머뭇거리는 사이에 반 년이 갔다.
'이것까지만 하고 가자', '이 프로젝트만 마무리하고 나가자' 하다보니 어느덧 나이 한 살을 더 먹게 된 것이다. 때마침 내년 결혼을 앞두고 이사를 하기도 했고 오랜 고민과 망설임 끝에 집 근처 직장을 찾아 다음 달부터 그 곳으로 출근을 한다.
그렇게 내 인생의 판교가 막을 내린다.
아, 판교.
회사 안에서나 밖에서나 많이 배운 곳.
많은 인연들을 얻었고 또 그만큼 잃기도 한 곳. 그렇지만 시간이 지나면 다 괜찮아진다는 것을 가르쳐주기도 한 곳.
꿈을 꾸고 목표를 세울 수 있게 해준 곳(사실 아직 창원에 대한 미련을 완전히 버리지는 못했지만..)
더 괜찮은 사람이 될 수 있도록 만들어 준 곳, 어쨌든.
내게 새로운 이닝을 선물해 준 곳이지만, 내가 그 이닝을 잘 막고 내려가는지는 아직..잘 모르겠는 곳
아무튼 잊고 싶어도 도무지 잊히지는 않을 것 같은
판교, 안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