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힘들지_같이_이겨내자
신민혁 유니폼을 사던 때로 돌아가본다.
때는 2021년 6월, 나는 막 서른살이 되었고, 시대는 여전히 코로나로 혼란스러웠으며, 그리고
나는 도로 백수가 되었다.
갑자기 많아진 시간을 어떻게 써야할지 몰랐다.
대개는 마스크를 챙겨 쓰고 집 근처 도서관에 가서 책을 많이, 아주 많이 빌리고는 도서관 근처 <바르다 김선생>에서 콩국수나 김밥 같은 것들을 포장해서 집으로 돌아오는 것이 일상이라면 일상이었다.
문제의 그 날은 강남에서 (이직) 면접을 보기로 되어 있었던 날이다.
나의 긴긴 이력서상 공백이 같은 해 10월이 되어서야 끝난 것을 보면 그 날 면접은 그다지 잘 보지 못했었나보다. 다만 면접장 근처에 '라커디움카페'가 있었던 건 기억난다.
라커디움카페는 유니폼 제작 업체를 라커디움으로 선택한 KBO 구단들의 굿즈(MD)들을 한 곳에서 살 수 있도록 마련해 놓은 일종의 편집숍이었다.
그곳은 서울에서는 드물게 NC다이노스 굿즈를 구매할 수 있는 오프라인 공간이었으므로, 오랜만에 신은 높은 구두로 피로한 발도 애써 무시하며 골목을 뒤져 기어코 찾아냈다.
한화이글스와 기아타이거즈를 지나 작게 마련된 NC다이노스 공간 앞에서 나는 오랫동안 서성였다.
그리고.. 유니폼을 사야겠다고 생각했다. 오랜 고민 끝에 흰색 홈유니폼을 집어들자 직원이 말했다.
"마킹도 여기서 직접 해드려요."
"마킹은 누구로 하시겠어요?"
나는 여러 선수의 얼굴을 떠올렸다.
'그래 작년 한국시리즈의 초신성이었던 송명기가 있지, 프랜차이즈 선수이지만 아직 유니폼이 없는 나성범도 좋고(놀랍게도 2021년은 아직 나성범이 NC 선수였을 시절입니다), 아 김영규도 좋은데..'
그리고 그 옆에 함께 걸려있던 마킹지, 신민혁.
잠시 그 때로 돌아가보자.
2021년 6월의 NC다이노스 선발진에는 구창모도, 이재학도, 송명기도 없었다. 누구는 부상, 누군가는 부진으로 1군 라커룸을 비웠다. 김영규는 아직 영점을 찾아가는 중이었고 파슨스는 늦게 출발했다.
그 때 루친스키와 함께 선발진에 깍 버텨주고 있던 선수가 스물 두살의 신민혁이었다.
왜 신민혁 이름을 새겼는지 나는 똑똑히 기억한다.
지금 NC다이노스에서 가장 응원이 필요한 선수이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2025년 4월 22일.
비소식이 있다는 걸 알면서도 경기 예매를 했다. 출근길 가방에는 행여나 비에 젖을까봐 에코백으로 꽁꽁 감싼 신민혁 유니폼도 챙겼다.
"신민혁 대 임찬규래, 임찬규 요새 국내 투수들 중에 폼이 가장 좋아. NC가 이기는 그림이 도저히 안 그려지는데.."
남자친구의 걱정에 구태여 대답하진 않았지만 속으로는 이렇게 생각했다.
'그래서 가는 거야. 응원이 필요한 순간이잖아.'
질 걸 알면서 갔다.
져도 괜찮다고 고생했다고 박수쳐주려고 간 거였다.
근데..생각했던 것보다 사람들이 너무 많았다.
한 달 전 사건 이후로 우리는 작든 크든 각자의 트라우마에 시달리고 있었고, 최근 팀 성적까지 좋지 않아서.. 그리고 무엇보다 오늘은 화요일이잖아.
나는 정말 사람들이 한 명도 없을 줄 알았다.
그런데 기대 이상으로 많은 거야. 응원단상 앞에서 민트색 응원봉을 흔드는 사람들을 보면서 계속해서 왜? 왜를 생각했다.
왜 왔을까. 왜들 오셨지..
오늘 상대투수는 국내 투수들 중에 폼이 가장 좋다는 임찬규 선순데.
오늘은 전국에 비가 온다고 했었는데.
지금 부상자들도 너무너무 많은데.
어느 모로 보나 이길 가능성이 하나도 없는 경기인데 왜 이렇게들 와서 목청이 터지게 응원들을 하고 있지?
그리고 내린 나의 결론.
지금이 NC다이노스에게 가장 응원이 필요한 순간이니까..
그러니까 다들 저렇게 온 거야. 질 걸 알면서도 온 거야. 비 오면 맞을 각오로 온 거야. 그래서 동점이 되어도 아무렇지 않게 선수들 이름을 부른 거야. 그냥 응원하고 있다는 걸 보여주려고..
시절을 함께 견딘 이들은 동지가 된다고 했다.
어두운 시기에 서로의 존재만으로도 위로가 되던 사람들은, 비로소 어둠이 지고 빛의 시대로 접어들었을 때
서로를 동지라고 부르는 것을 나는 아주 많이 보았다.
우리는 지금 시절을 나눠 지고 있는 것이다.
사실 글을 쓰면서도 이 사진을 계속해서 들여다본다.
누군가는 팬이 적다고 비웃을지도 몰라.
그렇지만 상관없다. 우리는 그 안에 숨은 마음들을 알고 있으니까. 어떤 마음으로 여기 앉아 한 곳을 바라보고 있는지 다 아니까.
아, 이 얘기를 빠뜨릴 뻔했네.
신민혁 선수는 2025년 4월 22일 오늘 1등팀을 상대로 5.2이닝 3실점 호투했다. 특히 100구를 넘겼는데도 6회에 또 올라와 여섯 구로 두 명의 타자를 더 잡고서야 마운드를 내려갔다.
신민혁 선수가 들었는지는 모르겠다.
여기 3루 쪽에 앉아있던 (얼마간의) 팬들은 손바닥이 빨개질 때까지 박수를 쳤다. 상대팀 응원소리에 묻혀도, 그가 더그아웃으로 들어가서 더이상 시야에서 안 보일 때까지 계속 박수를 쳤다.
당신은 훌륭한 선발투수라고. 그리고 이 힘든 시기에 우리에게 위안이 되어주어서 고맙다고. 고생했다고.
이런 의미들을 담은 박수를.
질 줄 알고 갔던 경기는 연장 승부 끝 승리로 마무리 되었다.
일찍 경기장을 떠나 보지는 못했지만 수훈 선수로 꼽힌 김휘집 선수는 아주 오랫동안 3루를 쳐다보다가 자리를 떴다고 한다.
앞으로도 우리는 안 될 걸 알면서도, 계란으로 바위를 치는 날에도 계속 관중석에 앉아있을 거다.
때로는 그냥 옆에 있어주는 것만으로도 위로가 된다는 걸 알고 있기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