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엄마가 쓰는 <엄마는 되지 않기로 했습니다> 후기
결혼 후 엄마가 되었고 그것도 (육아가 이런 것인 줄도 모르고) 연년생으로 줄줄이 낳아 고생고생중인 나는 신혼때 무자녀를 꿈꾼 적이 있었다. 남들보다 조금 늦은 나이에 결혼한 것도 있고 그때만 해도 여러 경험을 쌓아 다른 방향으로 이직할 생각도 하고 있었기에 그런 내 커리어를 개발하려면 아이가 없는 편이 낫겠다고 생각을 했다. 남편 역시 나보다도 나이가 더 많고 아이가 경제적 사회적으로 독립할 때까지 경제활동을 지속적으로 할 것인가에 대한 걱정 때문에 딩크에 찬성했었다.
그러면서도 완벽한 피임을 하지도 않고 신혼을 일 년 정도 즐기며 맛있는 거 먹고 심야영화를 보고 밤늦은 시간까지 대학가 술집을 돌아다니며 지내는데 양가 부모님들과 주변 동료들은 슬슬 '아이 안 가지냐' 라고 우리에게 질문을 퍼붓기 시작했을 즈음, '그래 그러면 일단 자연피임을 멈추고 올해안에 시도해보자, 대신 낳는다면 하나만' 이라고 서로 합의를 했다. 지금 돌이켜보면 우리는 완전히 합의된 딩크부부였다기보다 그냥 철없는 신혼부부였던 것 같기도 하다. 그 결과는 이웃님들도 모두 짐작하다시피 두 달만에 점순이가 생기고, 또 연년생으로 계획에 없던 꽁꿀이까지 낳아 애둘 극한육아를 8년째 체험중이다.
이 책은 얼마전에 읽었던 '어린이라는 세계' 의 김소영 작가님이 책 속에서 언급했던 것으로 무자녀 부부로 사는 작가님과 아이를 양육하는 친구 사이의 갈등에 대해 다루는 에피소드에 등장했기에 꼭 한번 읽어보고 싶었다. 이미 엄마가 된, 더군다가 둘을 연달아 낳아 키우고 있는 내가 '엄마는 되지 않기로 했습니다' 라는 책이라니, 모순적이라고 생각할지 모르겠다.
하지만 우리는 같은 나라에서 같은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이고 사회 속에서는 내가 원하든 원하지 않든 모든 존재가 유기적으로 얽혀있다. 딩크 부부가 일해서 내는 세금의 일부는 흘러흘러 내 아이의 육아수당이 될 것이고, 나중에 내 아이들이 자라서 내는 세금은 딩크 부부의 노령연금으로 흘러들어갈 수도 있을 것이다. 작가 자신이 딩크족이며 자발적으로 자녀를 가지지 않는 열 여덟 명의 여성을 인터뷰하고 서로 대화를 하면서 책을 구성했다. 그 중에는 전업주부 무자녀 여성도 간혹 등장하긴 했지만 대부분은 일을 하는 여성이었다. 그렇다면 결혼을 하고서도 (자발적으로) 아이를 키우지 않는 사람들은 어떤 이유에서 그런 선택을 했을까. 그들의 이야기를 조금만 뒤집어서 생각해보면 한국 사회에서 아이를 키우며 일을 하고 있는 나의 위치에 대해 조금 더 객관적으로 돌아볼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고 그 예상은 적중했다.
무엇보다 부족한 것은 시간이다. 워싱턴포스트 기자 브리짓 슐트가 현대인의 시간 강박에 관해 쓴 책 《타임 푸어》에서는 성 불평등한 관습이 여성의 삶에 끼치는 영향이 잘 설명되어 있다.
삶에 대한 기대와 현실의 불일치는 여자가 아이를 낳고 나서 가장 극명하게 드러난다. 시간 연구는 엄마들, 특히 집 밖에서 직장 생활을 하는 엄마들이야말로 지구상에서 시간이 가장 부족한 사람들임을 보여준다. 엄마들의 삶이 힘든 이유는 단순한 역할 과부하' 때문만이 아니라, 사회학 용어로 노동밀도 task density가 높기 때문이다. 즉 엄마들은 여러 가지 역할을 동시에 수행하는데, 각각의 역할에서 처리해야 하는 일의 가짓수가 너무 많고 책임은 무겁다.
이 책에서는 뒤이어, 직장에 다니지 않는 전업주부들도 시간에 쫓기기는 마찬가지라고 말한다. 머릿속에서 24시간 내내 테이프가 돌아가는 것처럼 해야 하는 일들이 한꺼번에 생각나는 현상에 대해 학자들은 '오염된 시간 contaminated time'이라고 부른다. 많은 여성은 아이와 떨어져 있어도 끊임없이 가사 노동과 육아 문제를 떠올리고 서둘러 모임을 파하며 돌아가는 길에 저녁거리나 육아용품을 구매하는 노동을 수행한다.
그러니까, 내가 노키즈존을 반대하는 건 아이를 좋아해서가 아니다. 내가 아이 없는 공간을 편안해하는 사람이라는 것과, 세상이 아이를 거부해도 괜찮다는 건 전혀 다른 문제다.
나는 지금도 아이와 한 공간에 있는 게 힘들지만, 이제는 "아이가 싫다”고 말하지 않으려 노력한다. 공공장소에서 아이가 큰 소리로 말하거나 울 때는 일부러라도 그쪽을 쳐다보지 않는다. 대부분의 양육자는 아이를 조용히 시키려 노력하겠지만, 아이와의 소통은 어른의 마음 같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아이를 가진 부모는 공공장소에서의 예절을 아이에게 가르치기 위해 노력하고, 아이가 없거나 아이를 다 키운 사람들은 조금만 더 너그럽게 아이를 보아준다면 노키즈 존 논란은 의외로 쉽게 해결의 실마리를 찾을 수 있을 것이다. 결국 노키즈존이 확대가 되면 나중에는 아이뿐만 아니라 '약자' 를 혐오하게 될까봐 두려워진다.
“이 사회에서 결국 배제당하지 않고 살아남는 건 젊고 건강한 남성뿐인가 생각될 때가 있어요.”
여성을 출산의 도구로 여기고, 아이를 낳은 여성에게는 끊임없이 죄책감을 주입하며 불이익을 주는 사회에서 엄마가 되고 싶지 않은 여성이 늘어나는 것은 당연한 결과다. 어쩌면 어딘가에선 엄마가 될지 모르는 사람들도 한국에서 엄마가 된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깨달을수록 출산과 멀어진다. 심각한 여성 혐오 사회에서 출산은 물론 남성과의 연애나 결혼 자체를 거부하는 4B 비연애, 비섹스, 비혼, 비출산 세대까지 등장한 이상출생률은 더 가파르게 떨어지지 않을까? 여성이 인간으로 존중받지 못하고 약자가 평등한 권리를 누릴 수 없는 사회라면,우리가 상상하는 것보다 더 빠르게 소멸해갈지도 모른다.
이 책에서 말하는 바가 여기에 다 담겨있는 것 같다. 아이엄마에게 모성애는 당연한 것이고 아이보다 자기자신을 소중하게 생각하면 모성애가 부족한 엄마로 단정짓는 상황이 나는 너무 힘들었다.
몇 년 전 블로그에 쓴 글에도 비슷한 이야기를 한 적이 있는데 생계형 워킹맘은 '남자 보는 눈이 없어 능력없는 남편이랑 결혼한 모자란 여자' 가 되고 자아실현형 워킹맘은 '엄마가 되었는데도 아이를 생각하지 않고 자기자신만 소중하게 여기는 이기적인 여자' 이며 전업주부는 '능력도 없이 남편이 벌어다주는 돈으로 비싼 커피나 마시는 여자' 라고 규정짓는 사회라면 기꺼이 나도 그 틀 어디쯤에 속하고 싶은 여성은 없을 것이다. 물론 모든 사람들이 아이엄마를 저렇게 대상화해서 나쁘게 생각하는 것은 아니겠지만 적어도 아빠에게 씌워지는 프레임보다는 훨씬 더 강력한 프레임이 아이엄마에게만 씌워지고 모성을 강요당하는 건 사실이다.
엄마에게 모성을 강요하기 보다, 미혼인 친구에게 결혼해서 너 닮은 예쁜 아이를 낳으라고 조언하기 보다 우리사회의 생활환경이 지금보다 경제적, 사회적으로 더 나아진다면 자연스럽게 출산율은 올라가지 않을까? 주거 문제, 교육비 문제가 어느 정도 해결되고 출산과 육아로 인한 여성의 경력단절이 조금 덜 일어나며 아빠도 육아휴직을 편하게 쓰고 직장에 복귀했을 때 인사상의 불이익을 받지 않는다면 더 많은 사람들이 자발적으로 유자녀를 선택할텐데.
물론 그런 주변환경과 상관없이도 본인의 가치관으로 무자녀를 선택한다면 그 또한 존중받아야 하며 불임이라고 비웃고 조롱하거나 무책임하다는 식의 프레임을 씌워서는 안 될 것이다. (진짜 무책임한 사람은 낳아놓고 책임지지 않는 사람이지 자신의 성향을 알고 처음부터 낳지 않겠다고 생각한 사람에게 할 말은 아니라고 본다)
얼마전 여성가족부에서 발표한 새로운 건강가족기본계획에서는 현재 통상적으로 생각하는 부부와 미혼자녀로 이루어진 가족의 형태가 아닌 다양한 가족의 형태를 법과 제도의 테두리 안으로 끌어들이는 노력을 하겠다고 밝혔다. 딩크족도 그 중 하나의 가족형태로 인정받으며 아이를 양육하는 것이 아닌 다른 방식으로 충분히 사회에 기여하고 자신의 존재가치를 누리며 살 수 있는 세상이 되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