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1 정서행동발달검사 결과를 듣고
어머니, 저 **이 담임입니다. 얼마전에 했던 정서행동발달검사에서 **이가 관심군으로 나와서요. 관심군으로 나오면 학교 위클래스에 가서 상담을 받고 교육청과 연계된 기관에 가서 추후 관리를 받도록 되어있어요. 저 그런데... 제가 봤을 때 **이는 전혀 정서적으로 문제가 없거든요? 너무 밝고 친구들과도 잘 지내고 정서적으로 육체적으로 건강한데 결과가 너무 의아해서요.
아... 제가 너무 엄격하게 설문에 응답한 걸까요?
네 어머니. 1학년은 학생이 아니라 부모님이 작성하다보니 어머니께서 너무 점수를 낮게 매기신 것 같아요. 그래서 말인데 제가 설문지를 아이 편에 보낼테니 다시 체크해서 보내주실 수 있을까요?
네, 그렇게 할게요. 선생님이 보시기에도 정서적으로 괜찮아 보이는 거죠?
그럼요, 오히려 너무 마음이 단단하고 안정되어 있습니다. 학교에 처음 입학해서 겪는 낯선 느낌과 두려움은 아이라면 누구나 다 있는 것이고요 어머님이 그걸 잘 알고 계시고 있으니 옆에서 잘 도와주실 거고 저도 더 잘 살펴보겠습니다.
네 선생님 매번 감사드립니다.
정서행동발달검사 결과 우리 아이가 관심군이라니 깜짝 놀랐다. 저 검사지에 체크를 한 건 아이가 2주간 등교중지되었다가 학교에 간 지 얼마 지나지 않은 시점이었고 영어학원에 적응하고 학교에 재적응하느라 홍역을 앓고 있던 시점이었다. 덩달아 엄마인 나의 마음에도 우울감과 초조함이 밀려왔고 처음 해보는 학부모 노릇에 승부욕 강한 아이와 치맛바람이 센 주변 분위기 사이에서 엄마인 나 자신이 균형을 잡지 못하고 괴로워했던 때였다. (아직도 이어지고 있지만 그때가 최고조에 달해 있었다.)
선생님께 점수의 세부영역을 물어봤더니 학습 스트레스, 양육자와의 관계, 불암감 등이 높았고 반면 아이의 내적 외적 활동점수는 아주 양호했다고 말씀해주셨다. 결국 아이가 관심군이 아니라 엄마인 내가 관심군이라는 결론에 이르렀다.
육아휴직 이후로 나 자신의 공간과 시간이 사라지는 걸 경험했다. 코로나로 인해 외출은 제한되었고 매일의 일과는 무미건조했으며 내가 주도적으로 할 수 있는 일이 별로 없었다. 아침에 점순이 등교를 마치고 (꽁꿀이는 아빠와 함께 어린이집까지 간다) 돌아와서 널부러져 있는 옷가지와 식탁을 치우고 내 아침을 챙겨먹고 숨 좀 돌리면 금새 11시가 되고 한 시간 정도 청소든 정리든 스마트폰 삼매경이든 하고 나면 곧 아이가 올 시간이 가까워진다.
어린이집에서 자유롭게 뛰어놀던 아이는 학교에 가서 앉아서 수업을 들어야 하는 게 고역이었고 풍부한 독서량과 남다른 어휘력을 자랑하지만 그것이 현실세계와 정확히 맞닿아있지 않다보니 인지의 부조화가 일어났는지 친구들이 하는 건 시시하고 유치해 보이고 혼자 책을 읽는 게 좋다고 말했다. 아이가 책을 좋아하는 건 부모로서 기쁜 일이지만 한편으로 또래 친구들과 잘 어울리지 못하고 겉돌면 어떡하나 걱정이 한 가득이었다. 어린이집에서는 친구들과 밀도있는 상호작용을 하며 깊이 있는 관계를 맺어 왔기에 학교생활이 그와 비교되어 더더욱 염려스럽기도 했다. 그리고 어린이집 5년 동안 늘 칭찬만 듣고 지냈던 아이가 좌절감과 실패를 겪었을 때 어떻게 그것을 극복할 수 있게 도와줘야 하는지 부모인 나도 알지 못해 낑낑거렸다.
정서행동발달검사의 결과는 아이의 내적 갈등, 적응 스트레스, 엄마인 나와 아이의 관계 갈등, 주양육자인 엄마의 스트레스 등 모든 상황이 만들어낸 종합적인 것일 확률이 매우 높고 그 문제점이 지금도 진행중이다.
시간이 지나면 아이는 학교에 다니는 것에 조금 더 적응하게 될 것이고 어린이집에서처럼 마음을 터놓는 친구가 생길 수도 있고 설령 지금과 같은 상태가 지속되더라도 수업시간에 늘 눈을 반짝거리며 지낸다고 하니 옆에서 묵묵히 응원만 해주기로 했다. 거기에 하루 중 다섯 시간 정도를 함께 보내는 담임선생님이 아이의 상태가 지극히 정상범위에 있다고 얘기해주시고 같이 도와주시겠다고 하니 힘이 났다.
아이의 성장은 아이가 스스로 이겨내야 할 과제라면 나는 그 동안 나의 몸과 마음을 가꾸려고 한다. 출근할 때에 느꼈던 성취감과 보람, 나 자신의 주도로 이루어지는 일과 그 일의 결과물을 통해 채워지는 사회적 인정욕구 등을 내 내면의 만족감으로 대체해야 할 시점이 왔다. 하루에 조금이라도 책을 읽고 글을 쓰고 음악을 들으며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하는 시간을 가지고자 한다.
내 스트레스의 주요 원인은 4년간 빡빡하게 이어온 워킹맘 생활에서 '번아웃' 된 것도 있지만 전업주부로서의 역할에 충실하게 지내면서 '내 시간' '내 공간' 이 사라졌기 때문인 게 가장 컸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가족을 위한 삶을 사는 게 뭐 그리 힘든 일이냐고 반문할지 모르겠지만 나는 엄마나 아내이기 이전에 나 자신이기 때문에 그런 나 자신이 사라지는 게 너무나 두렵고 무섭고 힘들었다.
좋은 엄마가 되려면 우선 좋은 사람이 되어야 한다. 맑은 공기를 마시고 주변을 정돈하면서 내 삶에 불필요한 것들은 버리고 소중한 것들로만 채우려는 노력을 조금씩 조금씩 해나가고 싶다.
*주변 초등교사 지인들에게 물어보니 부모가 너무 엄격하게 답하는 경우 정서행동발달검사에서 관심군으로 나오는 경우가 종종 있으며 그런 경우 담임교사 판단 하에 설문지를 재작성할 수 있도록 되어 있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