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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블루마운틴 May 08. 2020

어린이날, 가족이 함께한 하루

지난 2주간 격리생활을 하며 아이들도 집에 갇혀 있었기에 이번 어린이날은 온전히 아이들과 함께 하는 시간을 보내고 싶었다. 이런 엄마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점꽁자매는 어린이날 선물을 기대하며 하루하루를 카운트다운하고, 마침 5월 4일에 몇 주만에 어린이집 긴급보육에 보내게 되었는데 그 날 어린이집에서도 어린이날 행사를 한다며 평소에 숲 활동을 하느라 잘 입지 못하는 드레스를 입고 와도 좋다는 소식이 왔다.


그래서 어린이날 개봉하려고 미리 사둔 겨울왕국2 버전의 엘사드레스와 안나드레스를 일요일에 개봉했더니 툭 하면 싸우던 점꽁자매는 시련을 헤쳐나가며 서로를 보듬어주는 엘사와 안나가 되어 집안 곳곳을 누비기 시작했다. 심지어 겨울왕국2의 스틸컷에 나오는 요술봉을 들고 진격하는 엘사-안나의 포즈까지 취하며 공주가 되어 모험을 떠나기도 했다.


숲어린이집에 다녀서 아무리 예쁜 옷을 사도 몇일이 지나면 누런 황토색물이 들고 운동화를 아무리 자주 빨아도 하루만 지나면 흙으로 도배되기에 좋은 옷, 좋은 신발을 자주 사주지 않는 편이다. (라고 하지만 사실 모자라지 않게 매 계절 사는 것 같기도 하다... 기준이 너무나 주관적임) 특히나 저렇게 길이가 발목까지 오는 원피스나 스커트는 정말 특별한 날이 아니면 입을 일이 없어서 이제껏 거의 사준 적이 없었는데 작년 12월에 겨울왕국2를 본 점꽁자매는 매번 겨울왕국2 드레스를 갖고 싶다고 졸랐다. 아이들은 너무나 갖고 싶어했지만 엄마 입장에서는 생활에 꼭 필요한 것도 아닌 데다가 반짝이가루가 떨어지고 옷감의 재질도 별로인, 예쁘지만 무쓸모인 (어른 눈에는) 옷을 비싼 돈을 주고 사려니 고민스러웠다.


그런데 몇 달 간 엘사드레스와 안나드레스를 갖고 싶어하는 아이들의 모습을 보니, 환상의 세계와 실제의 세계가 점꽁자매의 상상 속에서는 함께 존재하며 그래서 엘사와 안나의 옷을 입으면 정말 아렌델왕국의 여왕, 공주가 되어 스토리를 이끌어나갈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 느껴졌다.             


"옷 한 벌 입고 상상만으로 공주가, 여왕이 될 수 있다고 믿을 나이에 실컷 공주, 여왕이 되게 해주자. 이것도 지나가는 거니까."


드디어 월요일, 둘은 드레스를 입고 2주만에 어린이집에 가서 어린이날 행사를 하고 유기농 과자 파티도 하고, 어린이날이라고 80색 마카펜 세트를 선물로 받아와서 입이 함지박만해져 있었다.


그래서 점순이와 꽁꿀이는 드레스를 입고 실제 그들의 성격과도 비슷한 엘사와 안나가 되어 상상의 나래를 실컷 펼쳐본다.           


드디어 월요일, 둘은 드레스를 입고 2주만에 어린이집에 가서 어린이날 행사를 하고 유기농 과자 파티도 하고, 어린이날이라고 80색 마카펜 세트를 선물로 받아와서 입이 함지박만해져 있었다. 저녁에는 어린이집에서 받은 마카펜으로 쓱싹쓱싹 신나서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꽁꿀이 그림(좌) 과 점순이 그림(우)

꽁꿀이는 드레스 입고 있는 라푼젤을 그렸는데 첫 번째 그림의 여자아이가 내 눈에는 꼭 뽀로로와 친구들 중 루피 캐릭터처럼 보였다. 점순이는 엄마와 아빠를 그려주더니 자기 얼굴도 그려야겠다며 저렇게 액자 속 자기 사진을 그려주었다. 아빠를 둘러싼 저 노란 색 선은 무엇이냐고 물으니 아빠는 반짝반짝 빛나는 사람이고 그림책에서 멋진 사람이 등장할 때처럼 저렇게 "짠" 하고 장식이 붙어있다고 설명해준다. 물론 내 모습도 실제보다 훨씬 예쁘게 그리긴 했지만 아빠에게만 후광을 입혀준 게 조금 섭섭(?) 했지만 아빠와의 애착이 잘 형성된 것이라고 좋게 받아들였다.             



"아빠와 사랑을 듬뿍 주고 받아서 우리 딸들은 참 행복하겠구나."



순간 스치는 생각이었다. 그런데 다시 곰곰히 생각해보니 부모와의 원만한 관계, 부모와 아이가 주고받는 사랑이 아이의 무의식에는 매우 긍정적인 영향을 주겠지만 실제로 '참 행복하겠구나' 라고 느끼는 건 엄마인 나의 감정이었다. 내 속의 내면아이가 어릴 적 충분히 받지 못한 사랑을, 우리 딸이 아빠에게 사랑받는 모습을 보며 대리만족고 있는 건 아닐까, 그래서 남편이 아이들에게 무한애정을 쏟을 때면 별 거 없이 평범한 그 남자가 세상 멋진 백마탄 왕장님으로 보이는 마법이 생긴다.  



아이가 좋아하면 아이도 좋겠지만 그 모습을 보는 부모도 함께 기쁨을 느낀다. 우리는 흔히 '아이를 위해서' 라는 이유로 아이에게 좋다는 것을 해주지만 사실은 그렇게 하고 있는 자기자신의 만족감과 행복감도 동시에 충족된다. 그러니 '내가 네게 좋은 걸 해주려고 얼마나 애썼는데' 라며 아이 핑계로 자신의 행동을 보상받으려 하지말자. 네가 행복할 때 나도 충분히 행복했으니까... 내가 지금 행복한 걸로 아이는 이미 자신의 역할을 다 했다.


점순이의 그림 속 파란색 동그라미는 갑자기 잘못 그린 거였는데 자연스럽게 만들기 위해서 다른 곳에도 몇 개 더 그렸다고 했다. 실수를 실패로 끝내지 않고 그것을 이용해서 새로운 형체를 만들어내다니, 아이가 또 한 단계 성장했다는 것을 느끼며 작년 그림책 모임에서 읽었던 '아름다운 실수' 라는 그림책이 떠올랐다.


http://book.naver.com/bookdb/book_detail.nhn?bid=13271042

어린이날에는 오랜만에 친정엄마가 집에 오셔서 아침부터 나들이용 김밥을 쌌다. 점순이는 할머니랑 같이 직접 싸보겠다고 나섰고 디딤대 위에 올라가서 재료를 차곡차곡 담고 김밥을 말았다.



그전 날까지는 차를 타고 공원에 가려했는데 아무래도 주차도 힘들고 사람들도 많을 것 같아서 집에서 걸어갈 수 있는 캠퍼스 내 숲으로 장소를 정했다. 남편은 돗자리와 물통이 든 배낭을, 나는 그외 작은 짐을 들고, 친정엄마는 손녀들과 함께 걸어갔다. 어른들은 짐도 무겁고 얼른 앉아서 쉬고 싶은 마음에 집에서 가까운 쪽을 고집했으나 평소 어린이집에서 친구들과 캠퍼스에 자주 오는 점순이는 처음부터 끝까지 '바위공원' (무지개문쪽에 바위가 많은 숲인데 어린이집 아이들이 지은 이름이다) 을 고집했다.


드디어 바위공원에 도착했고, 우리는 김밥을 꺼내서 먹고 디저트로 과자, 과일, 주스, 커피까지 맛있게 끝냈고 아이들은 비눗방울 놀이를 시작했다. 원래는 손가락으로 누르면 비눗방울이 나오는 반자동 비눗방울기를 준비해왔는데 이런... 건전지를 안 끼워오는 바람에 작동이 되지 않았고 그 순간 점꽁대디는 빨대가 있으며 비눗방울을 불 수 있다는 아이디어를 내서 아이들이 빨대를 이용해서 비눗방울 놀이를 할 수 있었다.



점순이는 비눗방울 놀이에 집중했고 꽁꿀이는 자기가 좋아하는 돌멩이, 흙, 나뭇잎을 모아모아 케익도 만들고 국수도 만드느라 바빴다. 특별한 것 없이도, 부모가 같이 놀아주지 않아도 혼자 앉아서 몇 시간이라도 놀 기세인 꽁꿀이를 보니 역시 자연이 제일 좋은 놀잇감이라는 걸 다시끔 느꼈다.



넉넉한 터에 가서 달려달려를 하고 싶다는 점순이의 요청에 (왠 요구사항이 이렇게나 많은지 참... 오늘은 어린이날이니까 그래 순순히 들어준다 ㅋㅋ) 온 식구가 넉터로 내려와 역시 꽁꿀이는 모래놀이를 하고 점순이는 여기저기 뛰어다니며 놀았다.


집에 돌아와서 책모임 이번달 공통서인 '책읽는 뇌' 를 끝까지 읽었다. 뇌과학, 언어학, 역사학 등 다양한 분야의 연구결과를 근거로 독서의 중요성을 이야기하는데 내용의 무게가 무거웠지만 책 자체는 참 좋았다. 진도가 더디 나가는 책이어서 힘들게 읽고 있는데 꽁꿀이가 와서 색 테이프를 달라고 졸라서 그냥 줬더니 저렇게 손등에 핑크 색 테이프 두 개를 붙이더니 'X(엑스)야, 엑스' 라며 즐거워한다.

요즘은 매일매일이 어린이날이라고 할 정도로, 많은 아이들이 물질적으로 부족함 없이 생활한다. 아이들이 필요한 게 있으면 부모가 충족시켜주고 어린이날이나 명절 같은 특별한 날에는 조부모들까지 합세하며 특별한 날이 아니더라도 갖고 싶은 게 없어서 부족함을 느끼는 경험을 하지 않고 자란다. 지금의 어린이들에게 어린이날 필요한 건 TV나 장난감이 보육을 대신하지 않고, 부모를 전자기기에 뺏기지 않으며 가족 전체가 온전히 함께 하는 '시간' 이 아닐까 싶다.


나 역시도 폭주하는 업무로 저녁에는 노트북 앞에 앉아서 다 못한 업무를 하고 아이들은 아빠와 시간을 보냈지만 내가 할 수 있는 한에서는 아이들에게 최선을 다한 하루였다. 어린이날에 어디를 놀러가고, 맛있는 것을 먹고, 멋진 장난감을 사주는 것도 좋지만 '그저 가족끼리 많은 시간을 함께하며 함께 논 휴일' 이기만 하면 그 형태가 무엇이 되었든 행복한 날이었을 거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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