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오늘 Dec 18. 2022

미니멀리스트의 세탁기

미니세탁기를 사용해요


나는 3kg 미니 세탁기를 사용한다.


 결혼 초에는 대용량 통돌이 세탁기를 구매했었다. 결혼 경험으로는 선배이신 엄마의 주장이 그랬다. 이불 빨래도 해야 하니 신혼살림은 무조건 큰 것으로 사는 것이 기본이라고. 그 의견이 정답인 줄 알았던 (너무 어렸던) 그때 나는 둘이서 대용량 세탁기로 사는 것에 대해 특별한 의식 없이 생활했다. 그러다 아이가 태어나고는 ‘아기사랑 세탁기’를 샀다. 아이 옷을 삶아서 빨아 잘 말려 입혀야 한다는 시어머니의 말씀에 나는 삶음 기능이 있는 아기사랑 세탁기를 검색했다. 요즘 아기 옷도 잘 나와서 굳이 삶을 필요가 없는데도 어머니는 예전 본인이 아이 키우시던 때, 그렇게 해 오셨던 대로 해야 한다며 은근히 나에게 자신의 방법대로 하기를 강요하셨다. 나는 남편에게 아기사랑 세탁기를 사야 하는 이유로 ‘시어머니가 요구하시는 삶음 기능이 있기 때문’이니 사달라고 했다. 나는 매일 나오는 아이 옷을 삶아서 빨 마음이 전혀 없었기 때문에. 그래서 세탁기가 두 대가 되었다. 서울에 살다 양산에 이사 올 때 큰 세탁기는 지인에게 주고 아기사랑 세탁기만 가져왔다. 그리고 6년 동안 잘 쓰고 있다. 한번 모터를 갈아 본 적이 있는데 그 후로도 가끔 기사님을 불러 세탁기 청소도 해주고 잘 유지하며 사용하고 있다. 


“우리 집에 세탁기는 3kg 짜리예요.”라고 말하면 사람들은 꽤 놀란다. 속마음으로 ‘이 여자 살림은 할 줄 아는가?’ 할지도 모르겠다. 살림도 그렇고 모든 것에 있어 ‘완벽하게 잘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조금씩 나아지는 것에 더 집중한다. 요즘 신혼살림은 세탁기에 건조기가 딸린 제품이 필수로 여겨지더라. 세탁실에 두 제품이 나란히 있는 것을 여러 번 봤다. 대형 전자마트에 구경 가서 보아도 실제 그 용량이 굉장히 컸다. 그 큰 용량을 보면서 생각한다. ‘이게 우리 집에 있으면 집에서 빨래만 해야 할 것만 같아.’ 건조기를 사용한 분들은 그 편리함이 정말 크다고 강력히 추천한다. 그렇지만 나는 햇볕에 말리는 것도 뽀송하고 좋다. 크게 불편하지도 않고.


 사실 나는 살림을 좋아하지 않는다. 해야 할 일이니까 최소한의 에너지를 쓰며 할 뿐이지. 용량 3kg 세탁기를 사용하며 살아보니 이렇게 편할 수가 없다. 한번 세탁할 때 수건 8개를 넣고 돌린다. 시간도 딱 38분 걸린다. 겉옷 모아 둔 세탁 바구니에서 8~9개 나오면 한번 돌린다. 2단으로 된 세탁 건조기에 빨래를 다 널어도 공간이 널찍하다. 빨래 개는 시간은 5분이면 충분하다. 물건이 없으면 살림하는 시간도 줄어든다. 일주에 2번 정도 빨래를 한다. 한번 할 때 수건과 겉옷. 또는 겉옷과 양말. 이렇게 두 번씩 하기도 한다. 아주 간편하다. 이불 빨래는 동네 코인 빨래방을 이용한다. 계절에 한 번씩 아이와 빨래방 가서 세탁하고 건조하고 기다리는 시간에 커피 한잔하며 이야기를 한다. 이렇게 살아 보니 굳이 큰 세탁기가 집에 있어야 할 필요를 못 느낀다. 남향 집 베란다에서 들어오는 따스한 해가 빨래를 금방 마르게 한다.


 명절 때면 5인 가구 사는 큰집에 가서 우리 집과 상당히 다른 생활 방식을 보게 된다. 일단 어마어마한 빨래 양에 놀란다. 아이 2 어른 3명이 사는데 수건을 빨아 너는 과정을 보면 일반 가정집이 아닌 것 같다. 사용한 수건을 아주 많이 모아 놨다가 빠는데 적어도 50개가 넘는다. 세탁 건조대는 2단으로 된 것이 3개나 있다. 그러니 빨래하고 널고 개는데 오전 한나절이 다 지나간다. 세탁기도 대용량이라서 한번 빨래하고 기다리는데 1시간이 든다. 사람이 많아서 쓰는 양도 많아서 어쩔 수 없다고 말하지만, 내가 볼 때는 수건 양이 너무 많다. 집에 50개가 넘는 수건이 필요할까? 정확히 세어 보지 않았지만 50개가 훨씬 넘을 것이다. 수건만 건조대에 두 줄씩 널어도 공간이 빠듯했다. 수건만 줄여도 많은 시간을 자신을 위해 쓸 수 있지 않을까. 수건이 많으니까 시간도 많이 쓰게 된다. 수건을 사용하고 모아 두는 바구니가 가득 쌓일 때까지 두었다가 세탁기를 돌리는 것도 일이 많아질 때까지 미루는 것은 아닐까. 4인 가구든 5인 가구든 물건을 줄이면 본인이 그렇게 힘들지 않아도 될 텐데, 정작 본인인 형님은 그런 환경에 대해 전혀 바꿔 볼 생각이 없으시다. 수건이 세탁기에 너무 돌려서 뻣뻣해져도 몇 년 동안 그대로 쓴다. 뽀송하고 도톰하고 부드러운 수건을 사용하면 씻을 때마다 기분이 좋을 텐데, 그런데는 전혀 관심이 없으시다. 무엇이든 본인이 바꿀 의지가 있어야 하고 행동력이 있어야 변화되는 것이니까. 나와 라이프 스타일이 다른 것뿐이지 사실 본인이 그 익숙한 패턴에 일부분 만족한다면 굳이 바꿀 필요는 없는 거니까. 


 간소함을 추구하다 보면 스스로 개선하기 쉽다. 잡동사니, 빚, 스트레스, 지저분한 옷장으로부터 벗어나 훨씬 느긋해질 수 있다. 미니멀한 삶을 통해 완벽해질 수도 없지만, 소박한 삶을 사는 아름다움이 있어 좋다. 또 어떤 날은 정리가 안된 엉망인 채로 지내기도 하는 날이 공존하기도 한다. 적게 소유하고 나다운 자신을 잘 돌보는 게 중요하다. 날마다 조금씩 더 단순하게 산다. 나 자신에게 무엇이 가장 소중한지 잊지 않고 따뜻하고 사랑 넘치고 우아하게 사는 것이 좋다. 완벽한 것이 아니라 조금씩 나아지는 삶을 지향한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