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만의 안식처 양산타워

양산이야기2

by 오늘

양산에는 양산타워가 있다. 마음 편히 쉬고 싶을 때 종종 찾는 곳이다. 한 번쯤은 여행자의 마음으로 찾아와도 좋겠지만, 사실 이곳은 여행지라기보다 일상의 연장선이라 할 수 있다. 퇴근 후 잠깐 들러 북카페 창가에 앉아 책 한 권을 펼쳐도 좋고, 주말 오후 아이와 함께 홍보관을 돌며 “옛날 양산은 이랬대” 하고 이야기를 나누어도 좋다. 애써 거창한 계획을 세우지 않아도, 가볍게 산책 나온 발걸음이 자연스레 향할 수 있는 곳, 도시가 시민에게 건네는 조용한 쉼표 같은 장소다.

예전에는 생활 쓰레기를 처리하기 위한 자원회수시설의 굴뚝이었다고 한다. 도시의 가장 현실적인 뒷모습을 떠안고 서 있던 구조물이었는데, 양산의 가장 높은 곳으로 만들기로 기획한 뒤, 쓰레기를 태워 없애는 연기 대신 사람들의 발길과 눈길이 모여드는 전망 타워로 다시 세운 것이다. 삶의 가장 밑바닥 같은 자리가 도시를 가장 멀리 내다보는 창이 되는 역전이 숨어 있는 곳, 어쩌면 누구에게나 하나쯤 있을 법한 숨기고 싶은 과거를 품은 채 오늘의 얼굴로 우뚝 서 있는 양산타워다.

양산타워는 높이가 160m이며, 평지에 있어서 그리 위압감이 들지 않는다. 입구를 지나 엘리베이터를 타면 도시의 바닥이 조용히 멀어진다. 바깥 풍경은 순식간에 변해 가는데, 사람들의 대화 소리는 의외로 소박하다. “오늘 구름 와 이리 마이 꼈노.” “밤에 또 슬슬 와볼라카노. 우리!” 같은 말들이 층수 표시등 사이를 오간다.

전망대에 내리면, 가장 먼저 맞는 것은 공기다. 실내인데도 묘하게 넓게 느껴지는, 바닥에서 천장까지 시원하게 뚫린 유리창 너머로 양산의 전부가 한 바퀴 둘러 서 있다. 발 아래로는 신도시의 네모난 아파트들이 장난감처럼 줄지어 있고, 그 사이를 비집고 흐르는 양산천이 얇은 은빛 리본처럼 도시를 감싸 안는다. 눈을 더 멀리 밀어붙이면 낙동강이 수평선을 그리며 누워 있고, 반대편으로는 울주 쪽 산세가 포개져 먼 청색으로 번진다.

이곳은 흔한 ‘전망대’와는 조금 다르다. 탑의 정상부는 두 개의 층으로 나뉘어, 5층은 북카페, 6층은 양산의 역사를 담은 홍보관이 자리하고 있다. 책 냄새와 도시의 풍경이 한 공간에 섞여 있는 모습은 이상하게도 ‘관광지’보다는 ‘동네 사랑방’을 떠올리게 만든다. 벽면을 따라 놓인 책장 속에는 아이들을 위한 그림책부터 어른들이 잠시 멈춰 읽어볼 법한 인문서까지, 각자의 속도로 읽히기를 기다리는 책들이 가지런히 서 있다.

창가에 자리를 잡고 앉아 커피 한 잔을 내려놓으면 시간을 잊기 쉽다. 유리창 너머로는 차들이 개미 같고 사람들은 점처럼 움직인다. 카페에서 자신이 살아가는 하루를 내려다보고 있노라면 문득 묘한 위안이 차오른다. 늘 정신없이 쫓기며 살았다고 생각했는데, 높은 곳에서 바라본 하루는 생각보다 차분하고 단단하다.

홍보관 쪽으로 발길을 향하면, 양산의 과거와 현재가 한 공간에 나란히 놓여 있다. 유물과 사진, 그래픽 패널들이 이 도시가 어떻게 지금의 모습이 되었는지를 조용히 들려준다. 한때는 작은 마을 이었던 곳이 산업단지와 신도시, 문화공간으로 채워진 지금의 양산으로 자라오기까지의 시간들이, 빛바랜 사진과 새하얀 설명문 사이를 잇는다.

양산타워의 유리창 앞에서는 누구나 잠시 말이 줄어든다. 아이들은 “저기 우리 동네다!” 하고 손가락으로 창을 두드리고, 어른들은 저 멀리 낙동강 방향을 가만히 바라보며 침묵에 잠긴다. 모두가 각자의 마음속 좌표를 다시 찍어보는 것처럼 보인다. 특히 해가 서쪽으로 기울기 시작하면 양산의 건물들은 금빛 테두리를 두른다. 파아란 하늘에 붉은 노을이 번지면서 환상적인 풍경이 통유리로 비친다.

밤이 깊어지면 양산타워는 또 다른 얼굴을 드러낸다. 어둠이 내려앉은 뒤, 타워 자체가 하나의 빛기둥이 되어 도시의 한가운데에서 조용히 빛을 쏟아낸다. 전망대에서 내려다보면, 양산천과 낙동강 쪽으로 이어지는 불빛들이 길게 줄을 잇고, 구름다리와 영대교의 야경이 수면 위에 반사되어 또 하나의 도시를 만든다. 그 풍경 앞에서는 굳이 멀리 서울의 야경이나 해외의 화려한 스카이라인을 떠올릴 필요가 없다. 지금 이곳에서, 자신이 살아가는 도시의 밤이 충분히 아름답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기 때문이다.

양산을 한 번이라도 스쳐 간다면, 양산타워에 올라가 보기를 권하고 싶다. 단지 높은 곳에서 사진 몇 장 찍고 내려오는 경험이 아니라, 자신이 딛고 서 있는 도시를 한 번쯤 ‘전체’로 바라보는 체험을 위해서다. 발밑으로 펼쳐진 양산의 거리와 강, 산과 다리를 내려다보며, 그 속 어딘가에 있을 자신의 집과 직장, 그리고 수많은 이름 없는 하루들을 떠올려보는 것. 그러면 평소에는 잘 보이지 않던 것들이 조금은 다르게 보이기 시작할 것이다.

양산타워의 유리창 앞에 서서 도시의 불빛이 하나둘 켜지는 모습을 보고 있으면, 문득 이런 생각이 든다. 상처처럼 느껴졌던 시간들도, 쓰레기 굴뚝처럼 숨기고 싶었던 흔적들도, 언젠가 이렇게 새로운 이름을 얻을 수 있을지 모른다고. 굴뚝이 타워가 되었듯, 하루하루를 버티며 쌓아 올린 시간들이 누군가를 다시 일어서게 해 주는 응원이자, 또 다른 이에게는 ‘올라가 보고 싶은 곳’이 될 수 있을지 모른다고. (1936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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